[강석기의 과학카페] 제임스 왓슨이 감추고 싶었던 유전자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2. 11. 2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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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제임스 왓슨은 2008년 자신의 게놈을 해독한 뒤 APOE 유전자 정보는 빼는 조건으로 데이터를 공개했다.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 제공

1953년 프랜시스 크릭과 함께 DNA 이중나선구조를 밝힌 제임스 왓슨은 1980년대 인간게놈해독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힘을 보탰고 2008년에는 자신의 게놈을 해독해 공개했다. 개인 게놈으로는 셀레라의 크레이그 벤터에 이어 두 번째였다. 

그런데 정보를 공개하면서 조건을 하나 달았다. 19번 염색체에 있는 APOE 유전자의 염기서열은 비밀로 해달라는 것이고 심지어 자신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부탁했다. 자신의 유전형 정보에서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 후자의 경우 식단, 운동, 약물 등 적절한 대응으로 위험성을 최소화한다는 게 개인 게놈 시대의 비전임에도 APOE 유전형은 ‘모르는 게 약’이라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APOE는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유전자다. 지난 2017년 학술지 ‘네이처’에는 ‘인간 게놈에서 가장 인기 있는 유전자’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인기의 기준은 논문에 인용된 수로 암억제 유전자 TP53이 영예의 1위를 차지했고 2~4위도 암 관련 유전자였다. 그다음 5위가 바로 APOE 유전자로 알츠하이머병과 관련돼 있다.

APOE는 2형, 3형, 4형 이렇게 세 가지 변이형이 있는데, 분포 비율은 APOE3(3형)이 77%로 가장 많고 APOE4가 15%, APOE2가 8%를 차지한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성이 부모 양쪽에서 APOE3을 받은 것을 기준으로 부모 한쪽에서 APOE4를 받으면 3~4배이고 부모 양쪽에서 APOE4를 받으면 8~12배에 이른다. 반면 AOE2는 오히려 발병 위험성이 낮다. 2008년 80세의 왓슨은 자신이 혹시라도 APOE4 변이형을 지니는 것으로 나오면 치매에 걸릴까 걱정하며 여생을 보내야 할 것 같아 덮기로 한 것이다. 

○ 뉴런 신호 통로 부실해져

APOE4 변이형 단백질이 알츠하이머병 위험성을 높이는 메커니즘이 최근 밝혀졌다. 뇌의 희소돌기아교세포가 뉴런 축삭(axon)의 미엘린을 만드는 과정에서 APOE3 변이형은 콜레스테롤을 원활히 공급한다(왼쪽). 그런데 APOE4 변이형은 대신 세포 안에 콜레스테롤이 쌓여 미엘린이 부실해져 뉴런이 쉽게 손상된다(오른쪽). 네이처 제공

APOE 유전자의 산물인 APOE 단백질은 지방의 대사에 관여하는데, 유전형에 따라 아미노산 한두 개가 달라 단백질 구조가 달라진다. APOE3을 기준으로 112번째 아미노산이 시스테인에서 아르기닌으로 바뀐 게 APOE4이고 158번째 아미노산이 아르기닌에서 시스테인으로 바뀐 게 APOE2이다. 따라서 APOE2와 APOE4는 아미노산 두 곳이 다르다.

아미노산 299개 가운데 불과 한두 개가 다름에도 단백질 구조가 많이 바뀌어 활성에도 큰 차이를 보이고 그 결과 알츠하이머병이나 심혈관질환 등 여러 질병에 걸릴 위험성에 차이를 보인다. 그럼에도 구체적인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몰라 불리한 유전형을 지녔을 때 대응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네이처’ 24일자에는 이런 상태를 타개할 실마리를 주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APOE4 변이형이 알츠하이머병 위험성을 크게 높이는 이유를 밝혀낸 것이다. 미국 MIT 연구자들은 뇌에서 APOE 유전자가 발현되는 세포들을 조사한 결과 희소돌기아교세포에서 유전형에 따라 큰 차이를 보이는 걸 발견했다.

희소돌기아교세포는 뉴런의 축삭을 지지하고 이를 감싸는 절연체인 미엘린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축삭이 미엘린으로 잘 싸여있어야 전기 신호가 새지 않고 빠르게 전달될 수 있다. 희소돌기아교세포의 APOE 단백질은 미엘린의 구성성분인 콜레스테롤을 축삭으로 가져가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APOE4 변이형을 지닌 희소돌기아교세포에서는 축삭으로 운반되는 양이 적었고 대신 내부에 콜레스테롤이 잔뜩 쌓여 있었다. 그 결과 미엘린이 부실하게 만들어져 뉴런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알츠하이머병 위험성이 커지는 것이다.

연구자들은 사이클로덱스트린을 투입해 세포 안에 쌓여 있는 콜레스테롤을 흩트렸다. 사이클로덱스트린은 바구니처럼 생긴 분자로 콜레스테롤 분자를 담을 수 있다. 사이클로덱스트린에 담긴 콜레스테롤은 확산 과정에서 빠져나와 미엘린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사이클로덱스트린 자체는 부작용이 커 약으로 쓸 수 없지만, 희소돌기아교세포가 미엘린을 만들 때 콜레스테롤이 원활히 공급되게 도와주는 약물을 개발하면 APOE4의 영향을 최소화해 알츠하이머병 위험성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 APOE4가 원형?

APOE 유전자의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계통도다. 인류와 유인원의 공통조상은 APOE4 변이형을 지니고 있었는데, 약 700만 년 전 유인권과 갈라진 인류에서 61번 아미노산이 바뀌며(T61R) 인간형 APOE4가 나왔다. 그 뒤 현생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112번째 아미노산이 바뀐(R112C) APOE3 변이형이 나왔고 이어 APOE3에서 158번째 아미노산이 바뀐(R158C) APOE2 변이형이 나왔다. Plos One 제공

‘그런데 APOE4 변이형이 왜 사라지지 않았지?’ 논문을 읽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치매에 심혈관질환 위험성까지 높아 기대수명을 줄이는 변이형이라면 돌연변이로 나오더라도 바로 솎아졌을 텐데 여전히 15%나 차지하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 그렇다면 이 변이형을 지녔을 때 생존에 유리한 다른 측면이 있는 게 아닐까. 인터넷에서 검색하다 보니 2019년 학술지 ‘진스(genes)’에 실린 리뷰 논문이 눈을 끌었다.

인구 집단에 따른 APOE 변이형 비율의 차이와 수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를 소개하고 있는데, APOE 유전자의 진화 과정이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라 놀랐다. APOE3에서 변이가 일어나 APOE4와 APOE2가 나온 게 아니라 APOE4가 원형이고 여기서 112번째 아미노산이 바뀐 게 APOE3이고 그 뒤 APOE3에서 158번째 아미노산이 바뀐 게 APOE2이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APOE 유전자 변이로 기능이 향상된 변이형들이 나와 지금은 원형보다 비율이 더 높아진 것이다. 

APOE4가 원형이라는 사실은 가까운 종과 비교한 결과 밝혀졌다. 인류와 약 700만 년 전 갈라진 침팬지가 APOE4이고 심지어 약 60만 년 전 갈라진 데니소바인도 APOE4다(네안데르탈인의 APOE 유전자 데이터는 아직 없다). 흥미롭게도 침팬지는 늙어도 알츠하이머병에 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침팬지의 APOE4는 사람의 APOE4와 다르다는 말인가. 실제 61번째 아미노산이 유인원은 트레오닌인 반면 사람은 아르기닌으로 차이가 있다. 

APOE 유전자가 고장난 생쥐를 세 그룹을 나눠 각각 사람의 APOE3와 사람과 침팬지의 APOE4 유전자를 넣어준 결과 침팬지의 APOE4는 사람의 APOE4가 아니라 APOE3와 비슷하게 기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APOE 유전자의 61번째 아미노산이 바뀌어 활성이 달라진 인간형 APOE4가 나왔고 20~30만 년 전 현생인류 계열에서 112번 아미노산이 바뀌며 유인원 APOE4의 기능을 복원한 APOE3 변이형이 등장했다는 시나리오다. 부모 양쪽에서 APOE4 변이형을 받은 사람들(지구촌 인구의 2%)은 고인류의 버전을 간직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인류 진화 과정에서 왜 지금은 생존에 불리한 인간형 APOE4 변이가 일어났고 정작 오늘날 사람의 APOE3와 기능적으로 비슷한 유인원 버전은 솎아진 거일까. 이에 대한 명쾌한 설명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몇 가지 가설은 나와있다.

먼저 식단의 변화로 사냥을 통한 육식이 늘며 각종 미생물에 감염될 가능성이 커진 결과다. APOE 단백질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표면 지방 분자를 인식해 처리하는 과정에서 면역계에 영향을 미치는데, 유인원 APOE4에서 변이로 나온 인간형 APOE4가 전반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했을 것이라는 가설이다. 실제 오늘날에도 각종 감염에 취약한 지역일수록 APOE4 변이형을 지닌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

다른 하나는 비타민D 가설로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몸에 털이 사라진 대신 피부색이 짙어지면서 비타민D 합성 효율이 떨어진 데 대한 적응이라는 것이다. 실제 APOE4 변이형을 지닌 사람은 장에서 비타민D를 더 잘 흡수하고 신장에서 재흡수율도 높다. 흥미롭게도 위도에 따른 APOE4 변이형 비율을 보면 ‘U’자 곡선을 보인다. 피부색이 짙은 저위도에서 높고 피부색이 옅어 햇빛으로 비타민D를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중위도에서는 낮고 햇빛이 약한 고위도에서는 다시 올라가는 패턴이다. 저위도에서는 APOE4 변이형 비율이 40~50%에 이르는 지역도 있는 반면, 우리나라를 포함해 중위도가 다수인 동아시아는 9%로 지구촌 평균 15%보다 낮다.

○ 한국인은 APOE4에 특히 취약

APOE 변이형의 분포를 보여주는 지도다. 원형인 APOE4는 현생인류의 고향인 아프리카 중부에서 여전히 비율이 높은 반면 우리나라가 포함된 중위도 지역에서는 10% 미만으로 낮다. 반면 20~30만 년 전 APOE4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APOE3는 오늘날 주류이고 특히 중위도에서 비율이 높다. Genes 제공

그렇다면 왜 현생인류의 초기 단계에서 유인원 유전자의 기능으로 돌아가는 변이형인 APOE3가 나와 오늘날 주류가 됐을까. 이 역시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몇 가지 가설이 나와 있다. 불의 사용이 보편화되면서 음식을 통한 감염 위험성이 줄어들며 인간형 APOE4의 빛이 바랬다. 

다음으로 인지 능력이 나아지는 방향으로 뇌가 복잡하게 진화하면서 그 부작용으로 나타난 신경퇴행성질환을 억제하는 변이가 일어난 게 APOE3이고 그 뒤 그 기능이 더 강화된 APOE2 변이형이 나왔다는 시나리오다. 앞서 언급했지만 침팬지는 늙어도 알츠하이머병이 생기지 않는다. 결국 APOE3이나 APOE2을 지닌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도 인지력의 저하가 심각하지 않았고 그 결과 손주들을 돌보며 생존에 도움을 준 결과 점차 비율이 늘어나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 

그런데 논문을 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APOE4 변이형이 알츠하이머병 위험성에 미치는 영향이 지역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나이지리아인의 경우 유전자 쌍 모두 APOE4이더라도 위험성이 2배가 채 안 되고 튀지니도 5배인 반면 우리나라는 무려 17배에 이른다(일본은 22배). 흥미롭게도 아프리카의 APOE2 변이형 비율은 27%에 이르는 반면 동아시아는 9%다. 

10만 년 전 인류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새로운 환경에 맞게 진화하면서 APOE4 변이형의 부정적 영향력의 정도가 대체로 점점 심해졌다는 말이다. 그 결과 동아시아의 경우 이미 꽤 솎아져 현생인류의 고향인 아프리카에 비해 비율이 훨씬 낮아졌다. APOE4 변이형의 비율이 낮은 집단일수록 이 변이형을 지녔을 때 부작용은 더 크다는 뜻이다.

획기적인 예방법이나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 정작 우리나라 사람들이야말로 자신의 APOE 변이형을 ‘모르는 게 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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