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 호주의 마트 봉지는 크리스마스 포장지로 재탄생 한다

황덕현 기자 2022. 11. 29.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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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북부준주 다윈의 한 마트에서 받은 종이봉투가 크리스마스 포장지로 사용할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왼쪽) 뉴 사우스 웨일즈 시드니에는 물병과 캔, 우유갑을 반납하고 환급할 수 있는 반납기가 곳곳에 설치돼 있어서 환경 보호 참여에 대한 시민 편의성을 높이고 있었다. ⓒ 뉴스1 황덕현 기자

(시드니=뉴스1) 황덕현 기자 = 탄소중립과 친환경 에너지를 취재하고자 호주 여러 주(洲)를 헤맨 지 어느덧 1주일째다. 호주는 우리나라 78배 면적에, 니켈과 리튬 등 미래 핵심 광물 보유량이 세계 수위권이다. 탈탄소 경제나 에너지를 전환하기에 그 어느 국가보다 유리한 조건을 갖췄다.

그러나 자원 전략이나 탄소중립 계획보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생활 속에서 자원 절약을 실천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책이었다.

우연히 한 마트에 들렀다가 재활용 종이봉지 한 장에 놀랐다.

이 종이봉지는 국제 산림인증 연합 프로그램(PEFC)에 따라 지속가능성 인증을 받았다. 재생지는 전체 중 70%에 사용됐다. 여기까진 국내 마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인쇄된 내용이다.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를 반기듯 별과 트리로 장식된 표면에는 절취선도 함께 그려져 있었다. 불필요한 부분만 잘라내고 나머지는 포장지로 사용할 수 있게 한 배려다. 이 마트는 소비자들이 보다 다용도로 봉지를 활용할 수 있도록 자사의 로고나 이름도 생략했다.

호주는 지난 2018년 남동부 뉴사우스웨일스주를 제외한 전국에서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규제하는 '플라스틱 감소 및 순환 경제법'을 통해 규제를 시행했다. 뉴사우스웨일스주는 올해 6월부터 일회용 비닐봉지 사용을 규제해 사실상 호주의 모든 마트가 비닐봉지 사용을 멈췄다.

호주 내 마트는 이 과정에서 지난 2018년 우리나라의 '쓰레기 대란'처럼 비닐 대란을 겪기도 했다. 일부 마트들은 이달 초까지 플라스틱 재활용 전문업체 레드사이클(REDcycle)과 협력했으나 이 업체가 지난 9일부터 수거를 잠정 중단한 것이다.

이런 사달을 겪은 마트들은 봉지를 재생용지를 활용한 종이봉지로 '즉시' 바꿨다. 나아가 "2023년까지 봉지를 100% 재생지나 분해 가능한 것으로 바꿀 것"이라고 약속했다.

소비자들은 이내 적응한 듯하다. 북부준주에서 만난 한 주민에게 '종이봉지로 대체돼서 불편한 게 있느냐'고 묻자 "마트에 갈 때는 장바구니를 가지고 다니고, 비닐봉지는 오래 전부터 사용하지 않아서 모르겠다"고 답했다. 우유 서너 팩에 바나나 한 송이 정도는 봉지가 필요 없다는 듯 두 손에 쥐고 가는 이도 있었다.

사회정책부 황덕현 기자 ⓒ 뉴스1

우리나라도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다. 지난해 12월 31일 개정·공포된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라 지난 24일부터 편의점에서 비닐봉지가 제한되기 시작했다. 고객이 원해서 돈을 지불하더라도 팔지 않는다. 이를 어기면 300만원 이하 과태료가 부과된다.

다만 환경부는 뒤늦게 계도기간 1년을 설정했다. 이때문에 앞으로 1년 동안은 비닐 봉지를 써도 과태료를 부과하지 않는다. 생분해 비닐 봉지는 친환경 인증을 전제로 2024년까지 허용됐다. 이 과정에서 일부 업체들은 비닐봉지 재·추가 주문을 놓고 갈팡질팡하기도 했다. 호주 역시 비닐봉지 제한 초기 소매업주들이 재고 처리를 놓고 부담을 가졌으나 정부의 의지와 사회적 담론 변화에 이내 적응했다.

변화는 마냥 미룰 수 없다. 계도하면서 보낸 시간은 부담을 후불로 미룬 것일 뿐이다.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온실가스 배출 정점이던 2018년 7억2760만톤에서 2억9100만톤을 줄여야 한다. 인류 생존을 위해 해야 할 숙제를 미루면 심장이 터지게 뛰어도 쫓을 수 없게 된다.

자원 강국 호주의 슈퍼마켓과 면세점, 기념품점, 음식점은 1주일 넘게 단 한 장의 비닐·생분해봉지를 건네지 않았다. 유리병 뿐만 아니라 우유갑이나 캔, 물병을 반납하면 10센트(한화 90원)을 주는 제도도 시행 중이다.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반납기도 곳곳에 눈에 띄었다. 리모델링이나 신축하는 건물에는 주차 면보다 자전거 보관 대수가 많게 하고 있다. 우리의 변화도 속도와 결단력이 필요한 때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호주 워클리재단이 공동 주최하는 2022년 한호 언론교류 프로그램 지원을 받아 보도됐습니다.

ac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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