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공직자 무사안일, 부패만큼 나쁘다

2022. 11. 2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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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훈 前 외교통상부 통상교섭본부장

구룡마을 30년 방치는 상징적

공약 즐비하지만 실행은 안 돼

서울 판자촌에 외국서도 관심

공공 청렴도 개선됐지만 32위

공직자 복지부동도 시정돼야

투기 막고 합리적 결론 내릴 때

공무원을 입법·사법·행정 등 3부(府)의 공적 기능을 행사하는 모든 사람이라고 정의할 때, 그 계급과 기능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총체적으로 공무원은 국가 존립과 운영의 핵심이라 할 것이다. 이런 공무원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고자 하거나,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부패하게 되면 국민은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공무원이 가난을 미덕으로 청렴 일색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건전한 직업인으로서 사명감과 윤리의식을 갖고 직무를 수행해 준다면 국민은 정말 감사할 것이다.

1980년대 초 아프리카 어느 국가에 근무하던 때다. 당시 우리 외교정책의 하나로 일정 액수의 범위 안에서 상대국이 희망하는 품목을 원조품으로 제공하곤 했다. 어느 해엔 양수기를 여러 대 제공했는데, 얼마 뒤 그중 일부가 시장에 버젓이 매물로 나와 있는 것을 발견하곤 절망했다. 그때 스치는 생각들이 있었다. 어린 시절 내 고향 어딘가에도 양키시장이라는 곳이 있었고, 그곳에는 온갖 구제품(원조 물자)과 미군 부대 물건이 즐비했다. 그땐 어려서 몰랐지만, 누군가가 빼돌린 물건임이 분명한 것이다. 이렇듯 깨끗한 선진 민주국가에 이르는 길이 쉽지 않다는 점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외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우리나라 공공부문의 청렴도는 향상되고 있다. 국제투명성기구(TI)의 발표를 보면, 2021년 국가별 부패수준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180개국 중 32번째였다. 이것이 역대 최고 순위라니…. 정치권 등 사회 상층부의 공정과 청렴성에 대한 논란이 상존하지만, 전체적 순위가 좋아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공직사회의 부패 못지않게 경계해야 할 것이 무사안일이다. 말 그대로 일하지 않거나 책임지기 싫어하는 태도다. 이와 관련해 꼭 시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가까운 예를 하나 들고자 한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 강남구의 한가운데쯤에 구룡마을이라는 판자촌이 있다. 대체로 1980년대 말 서울올림픽 등을 계기로 시내 판자촌들이 정비되면서 내몰린 철거민들이 유입된 곳이라 한다. 3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미국의 ‘타임(Time)’은 현대식 마천루인 강남구 도곡동의 타워팰리스를 배경으로 이 마을 판잣집 사진들을 서울의 ‘명암’으로 보도한 바 있고, 드라마 ‘오징어 게임’ 이후 외국 관광객들도 심심찮게 들러서 신기한 듯 놀란 듯 보고 간단다.

실제로 이 마을을 둘러보면 얼기설기 엮은 판자에 좁은 골목길, 하수구, 난방, 방풍 등 주거 환경이 열악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겨울이면 화재가 발생하고, 이재민들은 인근 학교로 대피해 지낸 일이 수차례다. 소방차가 물을 뿌려도 바람막이로 판잣집 전체를 덮어 놓은 비닐 때문에 물이 스며들지 않아 진화에 애를 먹는다는 소방관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지난여름 홍수에는 도랑이 넘치고, 많은 집이 지붕까지 물이 차올랐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데 30년이 넘도록 바뀐 것이 없다면 누구를 탓해야 하나.

선거 때면 정치인들이 단골로 방문한다. 어떤 후보는 판잣집에서 하룻밤을 자면서 개발 결의를 코스프레했고, 지난 6월 서울시장 선거 때 어느 후보는 구룡마을 개발 예상수익 가운데 10조 원을 1000만 시민에게 100만 원씩 돌려드리겠다고도 했다. 이 정도 수익이라면 더 좋은 활용 방안도 많이 있을 법한데…. 아무튼 선거가 끝나면 약속들은 허공으로 사라진다.

강남의 노른자 땅이 되다 보니 긴 세월 동안 정치인들의 공약, 개발업자들의 개입, 주민들 간 편 가르기와 이해충돌, 여기에 서울시와 강남구의 이견과 반목까지 숱한 우여곡절 속에 멍드는 사람은 바로 마을 주민들이다. 2011년부터 주민등록이 허용돼 지금 1100여 세대가 여기에 주민등록을 두고 있다고 한다. 부동산과 개발에 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이 지역을 반듯하게 개발하면서 마을 주민들의 주거 환경도 개선하고, 지방자치단체가 필요로 하는 공익시설도 앉히는 방안이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관계 공무원들이 노력했을 것으로 믿는다. 하지만 아무런 결과가 없는 것은 아쉽고 유감스러운 일이다. 서울시의 오랜 현안이었던 굵직한 재개발 이슈들이 해결의 물꼬를 트고 있다. 이 마을에 대해서도 관계 당국의 성찰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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