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편한 ‘이 서비스’… 근데 사기꾼이 더 좋아하네? [왕개미연구소]

이경은 기자 입력 2022. 11. 29. 11:00 수정 2022. 11. 3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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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뚫리면 다 뚫리는 허술한 오픈뱅킹
보이스피싱 범죄자들의 ‘좋은 먹잇감’
금융당국, 사전차단 서비스 독려해야
[왕개미연구소] #내돈부탁해

팩스의 나라 일본처럼 전산화가 느린 것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한국과 같은 초고속 전산화도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도 편리한 ‘오픈뱅킹’이 대표적인 예다. IT강국답게 전세계 유례없는 ‘디지털 금융 혁신 서비스’라며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지금은 ‘보이스피싱을 확산시키려고 오픈뱅킹을 만들었느냐’는 말까지 듣는 신세로 전락했다. 우리나라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작년 기준 7744억원으로, 매년 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오픈뱅킹이란?✔

개별 금융앱에 하나하나 접속하지 않고 앱 하나로 다른 은행, 증권사 계좌 현황을 알아볼 수 있는 서비스다. 즉 ‘국민은행’이나 ‘신한은행’ 같은 앱에서 다른 은행이나 증권사에 있는 ‘내 계좌’ 정보를 다 끌어다 볼 수 있고, 입출금과 이체도 모두 가능하다. 지난 2019년부터 시행됐고, 현재 금융회사·핀테크기업 등 총 120곳이 참여 중이다.

/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 정다운

금융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오픈뱅킹 순가입자수는 3000만명, 등록계좌수는 1억개 이상으로 급성장했다. 가입 절차도 간편하다. 콜센터에서 자동으로 걸려오는 전화에 인증번호만 누르면 된다. 그러면 까맣게 잊고 있었던 계좌까지 몽땅 소환해서 알려준다(아래 그래픽 참고). 여기에다 금융권의 공격적인 마케팅도 이용자 확대에 한몫했다. 금융회사 입장에선 소비자가 자사 앱에서 오픈뱅킹을 가입하고 계속 메인 거래처로 사용해주기를 바랄 수 밖에 없다.

본인이 이용하는 앱 하나에서 자금 이체와 조회 등 금융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니 그야말로 꿈같은 서비스다. 하지만 편리함 뒤에는 반드시 위험이 따른다.

금융혁신 서비스가 나온 것을 범죄자들이 적극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보이스피싱(금융사기) 범죄자들이 모든 계좌에 있는 돈을 손쉽게 털어갈 수 있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게 됐다.

요즘 보이스피싱 사기꾼들은 개인정보를 털고 난 다음에 오픈뱅킹부터 손을 댄다. 어떤 금융회사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오픈뱅킹으로 쉽게 파악할 수 있어서다. 돈을 빼내기 쉽게 계좌 한곳에 모으기도 한다.

피해자 명의로 알뜰폰과 계좌를 만들고 오픈뱅킹을 활용해 돈을 훔치기도 하는데, 정작 고령 피해자들은 상당 기간 사고를 눈치채지도 못한다. 작년에 9억원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입은 서울에 사는 60대 고령자의 경우, 10일이 지난 뒤에서야 피해 사실을 인지했을 정도다.

정부도 오픈뱅킹에 허점이 있고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지 못했다고 사실상 인정한 상태다. 지난 9월 국무조정실은 비대면 계좌로 오픈뱅킹에 가입하는 경우엔 3일간 자금 이체를 막고 하루 이체 한도도 1000만원에서 300만원으로 낮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판단력이 약한 고령자들이 급증하는 현재 상황에서 금융사기 범죄를 예방하고 소비자 불안을 없애기엔 충분치 않다. 오픈뱅킹 등록 거부나 사전 차단 같은 강력한 예방책이 필요하다.

물론 아직까지는 ‘해야 한다는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이유로 소비자 보호에 나몰라라하는 금융회사들이 대부분이다. 다행스럽게도 일부 금융회사들이 자발적으로 오픈뱅킹 안심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삼성증권의 경우, 어플에서 간단하게 오픈뱅킹 사전차단을 소비자가 직접 신청할 수 있다. 이렇게 하면 다른 앱에서 계좌 조회는 할 수 있지만, 오픈뱅킹 이용을 차단해 뒀기 때문에 사기꾼이 계좌를 연결해 돈을 빼내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삼성증권 어플에 접속해 상단에 있는 '안내/계좌개설' 버튼을 클릭한 후 '신청/변경' 코너에 들어가면 '오픈뱅킹' 서비스를 차단할 수 있다.

신한은행에도 ‘오픈뱅킹 지킴이’라는 서비스가 마련돼 있다. 소비자가 어플에 접속해 간단히 신청할 수 있다. 또 고령자들이 보이스피싱 범죄에 취약하다는 점을 고려해, 신한은행은 올초 만 50세 이상 고객의 경우엔 오픈뱅킹 등록 후에 12시간 동안 이체를 제한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하나은행은 영업점에 신분증을 갖고 방문하면 오픈뱅킹 사용을 미리 막을 수 있다.

신한은행 어플의 전체 메뉴로 들어가 '설정/인증' 탭을 누르고 '보안서비스'를 선택하면 오픈뱅킹 등록 차단을 할 수 있다.

회사원 이은희씨는 “보이스피싱 도둑놈들이 오픈뱅킹을 활용해 내 자산 내역을 쉽게 보고 돈도 빼갈 수 있다고 하니 섬찟하다”면서 “인감증명서는 본인 외에는 받을 수 없게 하는 등 다양한 안전 장치가 있는데, 인감만큼 중요한 오픈뱅킹엔 왜 그런 장치가 없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회사원 김모씨는 “애당초 한 개 앱에서 내 모든 계좌를 관리할 수 있다는 발상 자체가 너무 위험하지 않느냐”면서 “예금 금리 인상을 자제하라고 구두 지시했던 것처럼, 금융당국이 ‘오픈뱅킹 사전차단 서비스를 당장 마련하라’고 관치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심영철 웰시안닷컴 대표는 “IT기술이 점점 발달할수록 보이스피싱 수법도 점점 진화하기 때문에 결코 없어지진 못할 것”이라며 “특히 한국은 오픈뱅킹 같은 편리한 금융 서비스가 많아서 범죄자들에게 좋은 먹잇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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