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자연 영화] 시사 용어 '퍼펙트 스톰', 이 영화가 원조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2022. 11. 29.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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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초 태풍 '힌남노'의 위력은 엄청났었다. 라오스의 국립공원 이름을 딴 2022년 제11호 태풍 힌남노는 8월 28일 발생해 한반도로 북상한 아주 강력한 태풍이었다. 9월 6일 오전 4시 50분 경남 거제 부근에 상륙한 이후 50km의 속도로 북동쪽으로 이동, 부산을 거쳐 오전 7시 10분쯤 울산 앞바다를 통해 동해로 빠져나갔다.

기상청에 따르면 힌남노가 거제시에 상륙할 때의 중심기압은 955hPa헥토파스칼로, 이는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 태풍 가운데 1959년 사라(951.5hPa), 2003년 매미(954.0hPa)에 이어 역대 3번째로 낮은 것이다. 태풍은 중심기압이 낮을수록 위력이 커진다.

내륙에 머문 시간이 2시간 20분쯤으로 다른 태풍에 비해 비교적 짧았음에도 힌남노로 인해 1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당했다. 전국적으로 6만6,341호가 정전 피해를 입었고, 침수 피해 등으로 인해 임시주거시설로 일시 대피한 주민은 2,661세대, 3,463명이었다.

특히 힌남노로 인한 피해가 가장 컸던 포항지역에서는 400여 개가 넘는 기업체가 침수와 건물 파손 피해를 입었고, 토사 유출 등으로 모두 1조348여억 원의 피해를 입었다.

사상 세 번째로 위력 컸던 힌남노

9월 말 미국을 덮친 허리케인의 피해도 기록적이었다. 9월 28일 최고 시속 250km의 강풍과 600mm 폭우를 동반하며 플로리다주를 강타한 허리케인 '이언'은 해안 도시들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미국 역사상 5번째로 강력했던 이번 허리케인으로 100명 넘게 사망했다. 플로리다주 지역 전체에 12~24시간 동안 300mm 비가 쏟아져 이 지역 77만 1,000여 곳 가정과 기업에 1주일가량 전기가 끊겼었다.

기상학적으로 태풍은 '열대성 저기압 중에서 중심 부근 최대 풍속이 17m/sec 이상의 강한 폭풍우를 동반하는 자연현상'을 말한다. 열대성 저기압은 발생 해역에 따라 명칭이 다른데 북태평양 서부 필리핀 근해에서 발생하는 것을 태풍Typhoon, 북대서양, 카리브해, 멕시코만에서 발생하는 것은 허리케인Hurricane, 인도양, 아라비아해에서 발생하는 것은 사이클론Cyclone, 호주 부근 남태평양에서 발생하는 것은 윌리윌리Willy-Willy라고 한다.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은 연간 총 80개 정도가 발생하는데, 이 중 태풍은 매년 평균 27개가 생겨나고 있다.

조지 클루니 주연의 <퍼펙트 스톰The Perfect Storm>(감독 볼프강 페터젠, 2000)은 강력한 태풍을 소재로 한 영화다. 1991년 미국 동부 해안을 강타한 태풍에 휘말린 선박 '안드레아 게일' 호의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되었다.

독일 출신 볼프강 페터젠 감독은 브레드 피트, 올랜드 블룸 주연의 전쟁 서사극 <트로이>(2004)를 만든 거장이다. 해리슨 포드가 미국 대통령으로 나와 맹활약을 벌이는 <에어 포스 원>(1997)과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의 <사선에서>(1993)도 만든 흥행 감독이다.

돈 욕심에 악천후에도 출항

1991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항구도시 글로스터. 선장 '빌리'(조지 클루니)와 어부들은 황새치잡이를 마치고 돌아오지만 잡은 물고기의 양이 시원치 않다. 선원들 몫도 깎아야 할 판이고, 빌린 어선의 비용도 내기 힘들다.

선주는 어획량 좋은 여자 선장 '린다'(메리 엘리자베스 마스트란토니오)와 비교하며 "계속 이런 식이면 선장을 갈아치울 수 있다"며 빌리에게 경고한다. 빌리는 이혼 후 혼자 생활하고, 선원들의 삶은 대부분 곤궁하다. 새로운 가족과 재혼을 꿈꾸는 신참 '바비'(마크 월버그), 고기잡이 일로 남편 역할을 소홀히 해 이혼 직전인 '머피'(존 라일리), 여자친구 하나 제대로 못 사귀어 본 '벅시'(존 호카스) 등 모두 절박하게 배를 타야 할 사연이 있다.

통상 항구에서 며칠 휴식을 취한 뒤 재출항하지만, 빌리는 선원들을 설득해 안드레아 게일 호를 타고 곧장 다시 출항을 한다. 하나같이 돈에 쪼들리는 선원들은 "이번에는 고기를 왕창 잡아 큰돈을 벌어 오자"는 빌리의 말에 의기 투합한다.

하지만 날씨가 나빠질 불안한 징조들이 보인다. 그들은 뉴펀들랜드 인근 바다로 나가지만 고기는 전혀 잡히지 않는다. 바비가 상어에게 다리를 물리는 사고를 당하고, 머피는 낚싯바늘에 손이 꿰어 익사할 뻔하는 등 선원들의 사기는 바닥이다.

선장 빌리는 일반 어로수역을 벗어나 풍부한 어장으로 이름난 '플레미시 캡'이란 곳으로 향한다. 그러나 태풍이 몰려온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다른 배들은 모두 뱃머리를 돌리기로 결정하지만 빌리는 항해를 계속한다.

그들의 배가 플레미시 캡으로 향한다는 것을 알게 된 다른 배의 선장 린다는 무선으로 돌아오라고 적극 만류하지만 빌리는 무시한다. 하지만 항해가 계속될수록 기상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그레이스'로 명명된 남쪽의 태풍 전선 허리케인이 대서양으로 북진하면서 다른 2개의 기상 전선과 충돌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 3개의 기상 전선이 충돌하면 유례없이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폭풍이 순식간에 형성되는 것인데, 영화 속 기상 전문가는 이를 '퍼펙트 스톰'이라 불렀다.

이 표현은 영화의 원작인 베스트셀러 <퍼펙트 스톰>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 프리랜서 기자이자 작가인 세바스찬 융거는 1991년 당시 허리케인 그레이스와 다른 2개의 기상 전선이 충돌해 대형 폭풍이 만들어진 것에 대해 '완전한 폭풍'이라 명명했다.

영화 <퍼펙트 스톰> 개봉 이후 이 표현은 기상 용어를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고 있다. 2008년 미국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달러 가치 하락과 유가 및 국제 곡물 가격 급등으로 인한 물가 상승 등이 겹쳐지면서 경제 용어로 일반화됐다. 특정 분야에서 안 좋은 요소들이 겹쳐 최악의 상황이 닥쳤을 때를 비유적으로 표현하는 데 사용된다.

퍼펙트 스톰과 유사한 기상 용어로 '슈퍼 태풍'이 있다.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JTWC에 따르면 1분 평균 풍속을 기준으로 태풍 중심 부근의 최대 풍속이 초속 67m(시속 234km) 이상인 경우 슈퍼 태풍으로 정의한다. 이는 자동차를 뒤집고 대형 구조물도 넘어뜨릴 수 있는 위력을 갖는데 2005년 8월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중심 최대 풍속이 초속 78m를 기록한 바 있다.

1991년 '안드레아 게일호' 실화 바탕

슈퍼 태풍은 2000년대 이후 급격히 증가하고 있고,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지구온난화를 그 주원인으로 거론한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 해수 온도 및 해수면 상승 등의 요인이 작용해 태풍의 에너지원인 열용량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빌리 일행은 플레미시 캡에서 많은 황새치를 잡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얼음 창고를 돌리는 기계가 고장 나 항구로 돌아가야 하는데 허리케인이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라 폭풍을 뚫고 나아가거나 폭풍이 잦아들기를 하루 이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물고기의 가치가 떨어질 것을 우려한 이들은 폭풍을 뚫고 가기로 결정한다.

영화의 압권은 엄청난 폭풍과 광포한 바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서 사투를 벌이는 선원들의 모습이다. 보는 것만으로도 무시무시한 거대한 파도는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스크린 전체를 뒤덮는다. 실감 나는 화면 덕분에 이 영화는 제73회 아카데미에서 시각효과상과 음향상 2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배의 통신수단마저 단절된 채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온갖 고비를 넘기던 안드레아 게일 호 선원들은 결국 전복되어 모두 사망한다. 뱃머리를 돌리며 "우리는 다시 온다. 고기는 다시 잡으면 돼. 이 바다는 항상 우리 거야!"라고 외치던 빌리 선장도 무지막지한 자연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비극을 초래한 욕심이 '생존'을 위한 것이었기에 더욱 안타까운 죽음이었다. 자연재해 영화의 관행적 결말을 벗어난 이 작품은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 덕분에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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