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과학용어의 조건]⑭ 의학용어 개정은 미래 세대를 위한 것

조영욱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 2022. 11. 29.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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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의학용어를 쉽게 바꾸어 달라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각종 전문 분야 용어들은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특히 의학용어와 법률용어가 대표적이다. 수명연장과 더불어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의학 지식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늘어났다. 어려운 의학용어를 쉽게 바꿔 달라는 요구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의학용어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는 의학용어 자체의 의미를 모르는 면도 있으나 상당수 의학용어가 한자를 우리말로 표기한 한자어로 표기되어 있어, 한자를 모르는 경우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주된 이유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에서는 의학용어집을 꾸준히 개정하면서 의학용어를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 용어로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의협 의학용어집이 발간되고 개정되어 온 역사를 돌아보고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의학용어 개정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의학용어집제1판(좌), 의학용어집5판(우)

의협에서 최초의 의학용어집을 발간한 것은 1977년이다. 1800년대 말 현대의학이 들어온 이후 의학용어는 일본식 한자로 표기되고 있었다. 1976년 의협의 전신인 대한의학협회에서 일반 국민이 이해하기 쉽게 한자로 표기된 의학용어를 한글로 바꾸는 작업을 시작해 1만9547개의 한글 의학용어를 수록한 '의학용어집(醫學用語集) 제1집'을 발간했다.

이듬해인 1978년부터 제1집 보완 작업을 시작해 5년간의 작업 끝인 1983년 4만8804개의 한글 의학용어를 수록한 '의학용어집 제2집”을 발간했다. 1985년부터 제3집 작업을 시작해 1992년 약 12만여 개의 의학용어와 과학용어를 포함한 '의학용어집 제3집'을 발간했다. 

의학용어집을 세 차례나 개정했으나 일본식 한자로 표기되어 있던 의학용어를 단순히 한글로 표기한 한자어 의학용어였으므로 한글 의학용어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자를 알고 있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어려운 한자어 의학용어를 가능한 순우리말 의학용어로 변경하려는 요구가 많이 있었다. 1995년 의학용어위원회를 새롭게 구성해 많은 의학용어를 순우리말용어로 표기하는 과감한 변화를 주어 4만9934개의 의학용어를 포함한 '의학용어집 제4판'을 2001년에 발간했다. 용어집 제목도 한자가 아니라 한글로 바꾸고 제4집이 아니라 제4판으로 변경했다.

그러나 의학용어를 이용해 진단과 치료를 담당하는 현직의 의사들은 익숙하지 못한 순우리말 의학용어를 사용하는 데 상당한 불편이 발생했고 결국 순우리말용어의 상당 부분을 다시 한자어 용어로 변경하게 된다. 

5년이 지난 2006년 새롭게 위원회를 구성해 3년간의 작업을 거쳐 2009년 5만7246개의 용어를 수록한 의학용어집 제5판을 발간했다. 제4판에서 많이 변경된 순우리말용어 상당 부분을 기존에 익숙해 있던 한자어 용어와 함께 표기하는 병기 방식으로 개정했다. 기존의 한자어 용어와 순우리말용어를 모두 표기하면서 순우리말용어를 서서히 익혀나가도록 만들기 위함이었다.

또한 2015년에는 제5.1 개정판을 온라인으로 발간했다. 순우리말용어와 한자어 용어 중에서 많이 사용되는 것이나 많이 사용되도록 유도해야 할 용어 1개를 정해 병기 표기하는 대신 '권장용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다른 한 개는 동의어로 표기, 뒤에 배치해 앞의 한 개 용어에 익숙해지도록 만들어 나가고자 한 점이 특징이다. 

의학용어집 제4판의 순우리말용어로의 과감한 변화 이후 제5판에서 한자어 용어와 순우리말용어의 병기 표기 또는 권장용어 선정이라는 절충안이 결정되어 의학용어의 우리말 표기에 대해서는 큰 논란은 줄었으나 새로운 고민이 시작됐다. 어렵게 느껴지는 한자어 용어와 순우리말용어가 병기 표기된 용어의 경우, 하나의 영어 원어에 대해 어떤 우리말 용어를 사용하라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문제점이 지적된 것이다. 또한 권장용어로 선정된 187개의 용어도 타당한 것인지 의료계 내부에서도 다양한 의견이 나타났다.

이런 상황에서 제5.1 개정판을 발간한 직후 새롭게 위원회를 구성해 개정 작업을 시작했고 5년 후인 2020년 5만748개 표제어를 포함한 제6판을 발간해 현재 사용 중이다. 제6판의 주요한 발간원칙은 2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 제5.1 개정판에서 제안한 권장용어를 다듬어 162개의 권장용어를 정하는 것이었다. 둘째 기존에 현직 의료인들이 익숙하게 사용 중인 한자어 용어와 순우리말용어를 병기 표기하고 있는 용어들에 대해 어떤 용어를 앞으로 표기해 사용자들에게 권장용어의 개념을 만들어갈 것인가를 정하는 과정이었다. 

의학용어집 제6판

제6판이 발간된 이후에도 의학용어위원회는 2개월마다 회의를 개최하면서 의학용어 홈페이지 등에서 제기된 의학용어 관련 문의 사항을 토의하고 필요한 경우 제6판 용어를 수정하거나 새로운 의학용어를 추가하고 있다. 또한 병기 표기된 한자어 용어와 순우리말용어 중에 어떤 용어를 권장용어로 정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의학용어의 수정 및 추가 작업이 계속 이루어지면 몇 년 후에는 자연스럽게 '의학용어집 제7판'도 발간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 이후에도 비슷한 용어 개정 작업이 진행되면서 제8판, 제9판, 제10판 의학용어집이 발간될 것이다.

의협 의학용어집이 발간되는 주기를 보면 1977년, 1983년, 1992년, 2001년, 2009년, 2020년으로 대략 9년 정도마다 발간되고 있다. 따라서 제10판이 발간되는 때는 앞으로 40년 정도 뒤가 될 것이고, 현재 의학용어를 배우는 의과대학 학생들이 의료계 사회의 중추적인 역할을 하면서 학생 교육과 환자 진료를 담당할 때가 될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의학용어의 개정은 현재도 중요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면서 미래 세대들이 익혀가야 할 용어를 정해가야 할 필요가 있다. 

의학용어는 법률용어, 군사용어, 과학용어 등 다른 전문용어와 마찬가지로 쉬운 우리말 용어로 변경해 달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꾸준하게 있고 앞으로는 더욱 요구가 강해질 것이다. 따라서 의학용어집도 국민들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 용어로의 개정 작업이 주된 방향이 될 것이다. 다만 국민들이나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 용어가 반드시 순우리말용어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과거부터 사용 중이던 한자어 용어 중에서도 대다수 일반인이 사용 중이고 처음 배우는 학생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경우에는 굳이 순우리말용어로 대체할 필요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의학용어의 개정도 순우리말만을 고집하는 것보다는 일반인도 익숙한 한자어 의학용어라면 그대로 사용하는 것도 좋은 방향이다. 물론 앞으로 몇십 년 뒤에는 모두 순우리말 의학용어로 변경될 수도 있으나 급한 마음보다 조금씩 단계적으로 변화를 주는 것이 바람직한 개정 작업의 방향일 것이다. 

조영욱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

※필자소개

조영욱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경희대 의대교수). 경희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희대 의대 생리학교실  교수로 재직중이다. 

[조영욱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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