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실’에 중독된 민주당… 극단적 진영논리로 민주화 유산 탕진

2022. 11. 29.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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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성민의 Deep Read - 민주당의 ‘탈진실 정치’

김의겸·장경태 ‘묻지마 폭로’로 폐해 드러나…거짓을 ‘대안적 진실’ 로 만들어 공론장 마비

운동권 언어에 갇혀 정치 아닌 전쟁에 몰두… ‘개혁’ 으로 포장한 기득권 장악에 시간 허비

인터넷 매체 ‘더 탐사’의 제보를 검증도 없이 폭로한 김의겸 의원이나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를 겨냥해 무차별적으로 ‘빈곤 포르노·조명 촬영’을 주장한 같은 당 장경태 의원의 행태는 모두 ‘포스트 트루스(탈진실)’의 해악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두 의원 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이 외에도 정치권 탈진실 사례는 보수 정당인 국민의힘보다 민주당 쪽에서 더 많이 확인된다. 한국 정치사에서 오랫동안 개혁의 계보를 이어오면서 진실·정의 등 덕목을 강조해 왔던 민주당이 왜 이렇게 타락했을까. 정치가 아니라 전쟁을 치르는 관성과 과오, 개혁 주체를 좁혀 주류가 될 기회를 날린 전략적 패착, 정권을 잡거나 다수당이 돼도 버리지 못하는 비주류 의식, 이제는 DNA처럼 내장된 일상적 파시즘 때문이다.

◇개혁 걷어찬 민주당

먼저 역사적 맥락에서 찾아보자. 1987년 체제 수립 이후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정동영·문재인·이재명 다섯 명의 대통령 후보를 뽑았다. 민주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당 일체감’을 정책보다는 인물에 투사한다. 김대중과 노무현은 보수 엘리트 카르텔에 승리한 ‘영웅 서사’를 갖고 있다. 김대중·노무현·김근태 등은 민주당의 정체성이다. 독재를 몰아낸 ‘민주화’ 신화에 큰 자부심이 있다.

김대중은 민주당의 정책 목표를 민주주의·한반도 평화·서민경제 세 가지로 제시했다. 노무현은 ‘반칙과 특권이 없는 나라’를 꿈꿨다. 그러나 지금의 민주당이 꿈꾸는 목표는 ‘주류 교체’다. 문재인은 2017년 대선 전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가장 강렬하게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정치의 주류 세력 교체”라고 강조했다. 박근혜 탄핵, 2017년 문재인 정권 창출, 2018년 지방선거 압승으로 자신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2020년 총선 압승으로 ‘주류 교체 전쟁’에서 마침내 승리한 듯 했다.

대통령과 국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이른바 검찰개혁·사법개혁·언론개혁을 밀어붙였다. 문제는 민주당이 말하는 개혁은 제도 변화가 아니라 사람 교체였다. 즉 민주당이 말하는 개혁은 ‘장악’의 포장지였을 뿐이었다. 민주당은 촛불과 투표로 권력이나 기득권을 무너뜨리는 데는 유능했지만 새로운 체제나 제도를 만드는 데는 무능했고 실제로 관심도 없었다.

가장 큰 아픔은 개헌을 통한 제도 혁신의 기회를 날린 것이다. 234명의 국회의원이 함께 연대해 만들어 냈던 ‘대통령 탄핵’을 ‘개혁 연대’로 발전시켜 개헌을 통한 ‘2017 체제’를 만들 역사적 기회를 허무하게 날려 보냈다. 2020년 총선에서 180석 의석을 얻었을 때도 ‘2020 체제’로 전환할 좋은 기회였지만 민주당은 나 몰라라 했다. 민주당은 개혁 ‘대상’만 넓히고 개혁 ‘주체’는 좁히는 전략적 패착으로 ‘주류’가 될 기회를 걷어찼다.

◇그 안의 파시즘

세상을 ‘적’과 ‘동지’로 구분하는 것은 정치가 아니라 전쟁이다. 민주화 주역인 586세대가 민주당 주축 세력으로 성장하자 아이러니하게 민주주의가 죽어간다. 이들은 원로교수 최장집이 날카롭게 비판한 대로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없었다.

임지현은 ‘우리 안의 파시즘 2.0’에서 “우리가 성취했다고 믿은 민주주의는 어떻게 상대를 용납하지 않는 일상의 오징어 게임으로 퇴화하고 있는가”라고 묻는다. 그가 전편 ‘우리 안의 파시즘’이란 책을 써 진보 운동권을 발칵 뒤집어놓은 건 김대중 정부 출범 1년 후인 1999년 일이었다. ‘정의를 독점한다고 착각하는 좌파의 도덕적 폭력은 극우 반공주의와 결을 같이한다’는 지적에 진보 진영이 분노로 들끓었다.

정치권과 국민을 촛불과 적폐로 갈라치기 했던 과오에 대한 비판은 ‘청와대 정부’의 저자 박상훈의 지적으로 이어진다. 그는 “대통령이 직접민주주의를 말하며 국민 참여를 주도하려 하면 민주정치는 위험에 처한다. 상대를 동료 시민이나 동료 정치인이 아니라 공격해야 할 대상으로 몰아붙여도 상관없다, 그런 것이 관행이 될 때 민주주의는 스트롱 맨의 게임으로 전락한다”고 말했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민주화 이후 ‘부족주의’로 퇴화했다. 미국의 정치학자 에이미 추아는 대중의 정치적 행동은 이데올로기보다 ‘부족 본능’에 더 영향을 받는다고 갈파했다. ‘정치적 부족주의’ 현상은 노무현 이후 박근혜-문재인 정권을 거치며 극단화했다.

586 정치인들은 과거에 민주화운동 시절 겪었던 희생자의 경험과 지위를 재생산하고, ‘희생자의식’의 세습을 통해 현재 자신의 행위에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한다. 민주화 운동가들에게 정치 DNA가 돼 버린 ‘일상적 파시즘’과 ‘대중 독재’ 의존성이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런 정치문화 속에서는 당 대표인 ‘이재명 리스크’로 민주당이 분화하고 야당이 재구성된다 해도 별 희망이 없다.

◇탈진실이란 반지성

정치적 부족주의는 포퓰리즘과 함께 탈진실로 상징되는 반지성주의 시대를 열었다. 포스트 모더니즘이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극단적 다원주의를 불렀다면, 포스트 트루스는 ‘나만 옳고 너는 틀리다’는 극단적 진영 논리를 불렀다.

상대 주장은 사실도 ‘가짜 뉴스’가 되고, 우리 주장은 거짓도 ‘대안적 진실’이 된다. 사실과 주장, 진실과 허위, 정보와 오락, 신호와 소음이 뒤섞이면서 공론장은 마비됐다. 듣고 싶은 것만 들리고 보고 싶은 것만 보이는 중증이 됐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확증 편향’을 확산시키는 주범이다.

민주당이 정치의 본령인 대화와 타협이 아니라 ‘타도’와 ‘청산’ 같은 전쟁·혁명 등 운동권 언어에 갇혀 있는 이유가 뭘까. 주류 교체 전쟁에서 승리하려는 순간 왜 다시 비주류의 지위로 스스로 돌아갔을까. 그건 아마도 운동권 속에 각인된 아웃사이더, 즉 비주류 DNA 탓일 수도 있다. 실제로 민주당은 야당 포지션에서 투사처럼 싸울 때 훨씬 뛰어나고 편안해 보인다.

스포츠에서 ‘승리 정신’ 즉 ‘위닝 멘털리티’가 없으면 이기고 있어도 질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정치에서도 ‘주류 정신’이 없으면 대통령이 되고 국회를 압도적으로 지배해도 피해망상에 시달린다. 주류 정신이 없으면 주류가 될 수 없다. 민주당을 지배하고 있는 ‘희생자의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비주류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김근태가 남긴 민주화운동의 유산을 탕진했다. 민주화라는 상징 자본을 잠식해 버린 민주당이 주류 교체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민주당은 지금 정체성과 리더십 위기를 동시에 맞고 있다. 두 다리가 풀린 권투선수 격이다. 민주당은 정말 한국 정치 주류가 되려는 의지라는 게 있기는 할까.

정치컨설팅 민 대표

■ 용어설명

‘정치적 부족주의’는 에이미 추아 미 예일대 교수가 정치적 대립·혐오의 원인을 좌우 구도가 아닌 부족주의 관점에서 분석한 책. 집단 본능이 어떻게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지에 대해 연구.

우리 안의 파시즘’ 혹은 ‘일상적 파시즘’은 임지현 교수가 1999년 처음 제기해 사회적 담론이 된 개념. 도덕성을 독점하려는 좌파의 폭력성이 극우 매카시즘과 결을 같이한다는 의미를 담음.

■ 세줄 요약

개혁 걷어찬 민주당 : 민주당의 최대 관심은 ‘주류세력’ 교체임. 주류 교체를 위해서는 체제와 제도를 개혁해야 함. 하지만 민주당은 개혁 ‘대상’만 넓히고 ‘주체’는 좁히는 전략적 패착으로 ‘주류’가 될 기회를 걷어참.

그 안의 파시즘 : 민주화운동 출신 586이 민주당 주축이 되면서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는 죽음. 이들은 세상을 적과 동지로 구분하는 극단적 진영논리에 빠짐. 정치적 부족주의와 일상적 파시즘은 이들의 정치 DNA가 됨.

탈진실이란 반지성 : 정치적 부족주의는 포퓰리즘, 탈진실과 함께 반지성주의를 불러옴. 과거 운동권의 언어에 갇힌 진보는 가짜 뉴스를 양산하고 정치가 아닌 전쟁에 몰두하며 기득권 장악에 모든 시간을 허비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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