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원에 사서 70만원에 판다… 보물이 된 고물장난감 [심층기획-폐기물 7000t의 딜레마]
환경단체 ‘트루’의 폐플라스틱 실험
분해·세척·파쇄 과정 거친 ‘플레이크’
열·압축 처리해 고부가 ‘판재’ 뚝딱
책상·의자·타일 등 고급재료로 쓰여
대기업도 열분해시설 투자 가속화
기름·가스·플라스틱 원료 뽑아내
수요 급증 속 수급 불균형 초래도
“정부 차원 업계별 할당안 고민해야”
“저기 면적 1㎡·두께 5㎜짜리 판재 하나가 원재료만 따지면 1000원이 안 되는데, 시장 가격은 70만원 정도 돼요.”
트루는 말 그대로 쓰레기가 된 장난감으로 돈이 되는 ‘자원’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렇게 폐플라스틱에서 자원을 찾고 있는 건 트루만이 아니다. 몸집 큰 석유화학 대기업들도 최근 플라스틱 재활용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미래 먹거리’가 된 플라스틱 쓰레기
폐플라스틱 재활용 산업이 트루와 같은 환경단체에 ‘실험의 공간’이라면 석유화학 대기업에는 ‘기회의 공간’이다. 석유화학 대기업들은 폐플라스틱 재활용 부문에서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이들 기업은 트루처럼 폐플라스틱을 잘개 쪼갠 플레이크로 제품을 생산하는 ‘물리적 재활용’이 아닌, 폐플라스틱에서 기름을 뽑아내는 ‘화학적 재활용’에 공을 들이고 있다.
물리적 재활용은 제조공정이 단순하고 에너지 소모량이 작지만 재활용이 반복되는 경우 품질이 저하되는 한계가 있다. 화학적 재활용은 기존 플라스틱에 거의 근접하는 품질을 확보할 수 있는 데다 복합재질·이물질 등 혼입으로 물리적 재활용이 까다로운 경우에도 비교적 쉽게 재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높은 기술력과 대규모 투자가 필요해 진입장벽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
◆불붙는 폐플라스틱 확보 경쟁
플라스틱 쓰레기는 어떻게 대기업의 미래 먹거리로 여겨지게 된 걸까. 그건 전 세계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플라스틱 규제에 고삐를 당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제5차 유엔환경총회에서는 플라스틱 전 주기를 다루는 구속력 있는 국제협약을 2024년까지 마련하자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이 협약에는 플라스틱 수요 억제와 재활용 확대를 골자로 하는 안이 담길 예정이다. 플라스틱 생산에는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8∼10%가 쓰인다. 생산부터 폐기까지 배출되는 온실가스는 한 해 8억6000만t(이산화탄소 환산량)에 이른다. 이는 500㎿(메가와트) 석탄발전소 189개가 내뿜는 양에 맞먹는다.
이런 수요 증가에 고유가까지 덮치면서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재생원료인 플레이크와 펠릿(세척 후 용융·압출을 거친 원료) 가격이 최근 1년 새 최대 20% 안팎의 상승세를 보였다. 한국환경공단 자료에 따르면 플레이크 중에서는 PE가 지난해 10월 1㎏당 561원이던 데서 올해 9월 681원으로 무려 23.6%나 올랐다. 펠릿 중에서도 PE가 같은 기간 726원에서 864원으로 상승률이 19.0%를 기록했다.
정부는 지난달 ‘전 주기 탈플라스틱 대책’을 발표하면서 이 같은 수급 문제 완화를 위해 폐플라스틱 배출·수거·운반·선별에 걸쳐 양질의 폐자원 공급 체계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혼합 수거나 오염을 막기 위해 운반차량 기준을 만들고 선별시설 자동화·현대화를 지원하는 등 조치를 통해 폐플라스틱 중 재활용되는 양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플라스틱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492만t(잠정)으로 코로나19 전인 2019년(418만t) 대비 약 18% 증가했다. 이런 가운데 절반 남짓만 재활용되는 게 현실이다. 2020년 기준 재활용되지 않고 매립·소각된 양만 42.9%(189만t)에 이른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긴 했지만 단기간 내 수급난을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화학적 재활용의 경우 석유화학기업이 사업에 첫발을 뗀 상황에서 폐플라스틱 공급 부족이 중대한 위험 요인으로 평가돼 투자·기술 개발 속도가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재질·출처별로 각 업계에 할당해 과열되는 폐플라스틱 확보 경쟁을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제안이 나온다.
배재근 서울과기대 교수(환경공학)는 “차라리 정부가 나서서 우선 물리적 재활용에 적합한 고품질의 폐플라스틱은 중소 재활용업계에, 상대적으로 품질이 떨어지는 폐플라스틱이나 일회용 필름류 플라스틱은 화학적 재활용에 할당하는 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시멘트업계는 분리수거가 되지 못해 종량제 봉투로 들어간 폐플라스틱 등 가연성 쓰레기를 확보하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고양=김승환 기자, 박유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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