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시선] ‘춘천인’을 읽는 두가지 자세

홍태한 2022. 11. 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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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채록 매거진 ‘춘천인’
짧은 글·삽화 한장·사진으로
사람들 얘기·춘천 매력 알게 돼
일회성 출판 자료집 넘어
컴퓨터 파일 차곡차곡 모아
새로운 디지털 형태 유산으로
홍태한 전북대 무형유산정보연구소 연구교수 (서울·인천·충남 무형문화재위원)

#자세 하나 - 감성 건드리기

춘천하면 떠오르는 시인은 유안진이다. ‘춘천은 가을도 봄이지’라고 노래하여 춘천의 아름다움을 잘 드러냈다. 그런 것이다. 도시 이름에서 감성을 느끼듯 사람은 주위의 여러 것들에서 혼자만의 감성을 느끼며 사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이 자신의 마음 속 깊이 자리한 뭔가를 건드릴 때, 울컥해지면서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그리움, 아련함, 아픔 등을 느낀다.

나는 춘천인 5호의 ‘자책하며 살았는데 다 이겨내고 살다보니까 지금이 왔구나 싶어’라는 최양숙 구술자의 말을 보며, 이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구술채록매거진 ‘춘천인’을 주기적으로 내는 춘천문화원 춘천학연구소 사람들도 아마 이런 생각을 했던 것 아니었을까. 시민기록단들은 그런 마음을 단번에 알아차린 마음의 눈이 밝은 시민들이었을 거라고 생각해본다.

구술채록매거진이라고 스스로 정의하고, 그 이름 그대로 춘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살아온 내력을 바탕으로 슬기로움과 어짊을 담는 이 책은, 여태 읽어본 어느 잡지보다 값지다.

적재적소에 자리한 춘천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들을 보는 재미, 짧은 글과 삽화 단 한 장이 주는 깊이 있는 울림, 옛 춘천의 모습을 알 수 있는 귀한 사진들, 그러면서도 지금의 춘천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려주고 다가올 춘천의 모습까지 짐작하게 하는 정보들, 정말 읽는 동안 마음 곳곳을 건드리는 보물덩어리다.

학창 시절 단체사진, 얼굴이 콩알만 하게 나와 자신을 찾는 데에도 한참 걸리는 그 사진이, 보는 사람을 단번에 과거로 끌고 가는 매력덩어리임을 느끼게 하고, 단발머리에 교복 입은 사진을 보며 ‘누구나 빛나는 시절이 있었구나’라며 스스로 위안하기도 한다.

이렇듯 ‘춘천인’은 마음 내려놓고 편안하게 책장을 넘기면서 춘천 사람들의 얘기와 춘천의 매력을 알게 되고, 마침내는 읽는 이가 위안을 받는 책이다. 잠깐이라도 주위를 돌아보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사람임을 알아차리고, 저마다 힘겨운 삶의 굴레를 잘 이겨내면서 위안거리를 가슴에 담으려 살아왔음을 눈치챌 수 있는 점에서 누구나 꼭 보았으면 하는 권장도서가 된다.

감성을 건드린다고 하여 ‘춘천인’의 가치가 한정된 것은 아니다. 구슬은 꿰지 않아도 찬란히 빛나는 구슬이다. 그런 구슬을 일 년에 두 번씩 바구니에 모아 보여준다면 값지지 않을까. 유안진 시인의 말을 변용한다면, 춘천은 늘 봄이 될 수도 있는 법. ‘춘천인’이 계속 되어야 할 가장 큰 이유 아닐까 한다.

#자세 둘 - 디지털 헤리티지로의 가치 알기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에서 강조하는 것이 여럿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공동체다. 더불어 살아가면서 쌓은 무형의 유산을 인류무형유산으로 인정한다. 공동체를 구성하는 한 사람 한 사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잘난 사람, 성공한 사람에만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공동체의 모습을 알기 위해 많은 자료를 모은 후 틀에 맞춰 나누고 잘 쌓은 것을 아카이브라고 한다. 학계에서 ‘아카이브 구축’이라고 하여 많은 자료를 모으는 것도 공동체의 참 모습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그런데 아카이브를 쌓을 때 자칫 놓치기 쉬운 것이, 그것의 바닥에 있는 사람에 대한 관심과 이해다. 아카이브에 너무 치우치게 되면 삶의 기운이 사라진 형체만 남게 된다.

여러 도시에서 많은 ‘시사’, ‘군사’를 편찬하고 지역 사람들이 소장한 많은 사진을 모아 아카이브 자료집을 낸다. 모은 자료 자체가 참 값지다. 그런데 읽어보면 사진과 정보는 있지만 막상 사람과 지역 이야기는 없는 경우가 많다. 아카이브를 모으기만 했지 그것이 사람들이 만든 것임을 잊은 결과다. 그래서 그러한 자료집은 일회성 출판에 그친다.

따라서 아카이브를 모을 때는 여러 이야기를 함께 모아야 한다. 단순한 정보를 넘어 그것이 주는 울림, 시간의 자취, 사람들의 애련한 마음도 담아야 한다. 이것을 ‘스토리텔링’이라고 하는데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기록하여 꾸밈없이 모아두면 되는 것이다. 이런 역할을 가장 잘하고 있는 책이 ‘춘천인’이라고 생각한다. 사진 한 장 한 장에 담긴 사연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그림과 글자를 하나하나 보면서 역사와 마음을 알게 한다. 그래서 단순한 아카이브가 아니라 후대에게 물려줄 값진 유산이 된다. 유산이되 형체는 없는, 구술채록을 통해 모인 많은 컴퓨터 파일들이 있을 것이니, 이를 ‘디지털 헤리티지’라고 나는 부른다.

‘춘천인’은 종이를 넘어서서 다양한 전자기기를 통해 재생되고 이어질 우리 세대가 만든 새로운 형태의 유산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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