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용진의 수학 인문학 산책] 학생들은 미래에 대해 조급할 필요가 없다

기자 2022. 11. 29. 03:0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나는 무엇인가 중요한 판단을 해야 할 경우에는 가능하면 그 판단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세상에 판단해야 할 사안은 수없이 많고 그중에는 판단의 시기가 이를수록 좋은 것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면’ 좋은 정보를 모으고 이것저것 따져 본 후에 판단을 내리는 것이 좋다는 원칙을 말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주변에서 중요한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성급하게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을 흔히 보게 되는데, 우리 사회에는 ‘무엇이든 일찍 하는 게 좋다’는 막연한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대학 교수들 중에도 입학시험, 장학금 수혜자 선정 등에서 면접이나 서류심사를 할 때, 학생들의 미래에 대한 꿈이 ‘구체적’일수록 높은 점수를 주는 분들이 많다. 하지만 특수한 기능을 살려야 하는 분야로 진출하거나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로 가고자 하는 학생들을 제외한, 보통의 학생들의 경우에는 구체적인 미래 계획을 서둘러 세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에게 관심의 표현으로써 “너 이다음에 커서 뭐 할 거니”라고 물어보곤 한다. 나는 어린이들이 자라면서 이런저런 꿈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성인이 될 때까지 열 번쯤 꿈이 바뀌는 것도 좋다. 그런 꿈들을 가져봄으로써 세상을 좀 더 잘 이해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좀 더 큰 학생들에게는 그런 식의 관심의 표현은 삼가는 것이 좋을 듯하다.

나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많은 편이다. 주로 수학올림피아드를 통해 지도하게 된 학생들과 내가 근무하는 대학의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미래에 대해 뭔가 일찍 결정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을 은연중에 주변으로부터 받는다. 나는 학생들에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지금은 학업에 충실하게 임하라고 조언한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정보를 모은 후에 자신에게 맞는 계획을 세우는 것이 필요한데, 계획을 미리 결정할수록 상대적으로 더 적은 정보를 통해 결정하는 것이므로 그 결정에 하자가 있기 쉽다. 특히 청소년들은 성장하면서 성향과 취향이 바뀌기 쉬운 데다 자신들의 꿈을 이루기에 자신들의 성적 등이 미흡하게 되면 자포자기 상태에 빠질 수도 있다.

대학생들 중에는 미리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학생들이 많다. 그래서 전공 공부는 멀리하고 공무원 시험이나 공사 입사 준비에 매달리는 학생들이 지나치게 많다. 나는 별다른 목표를 갖고 있지 않은 수학과 학생들에게는 “요즘은 전문 지식이 중요하니 학생 때에는 전공 공부를 충실히 하고 그 외에 컴퓨터와 영어를 신경 써서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조언한다.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교과서를 통해 윌리엄 클라크의 유명한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Boys, be ambitious)!”라는 제목의 글을 배웠다. 당시에는 너무나 유명하였고 실제로 그 내용이 아주 좋아서, 한글뿐만 아니라 영어로 된 원문까지 읽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의 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돈이나 이기심을 위해서나, 사람들이 명성이라 부르는 덧없는 것을 위해서 말고, 단지 사람들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추구하는 야망을 가져라.”

하지만 이 유명한 글의 자세한 내용은 잊어지고 제목이 주는 강렬한 이미지 때문인지 대중에게는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미리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는 의미로 변질되어 전달된 경향이 있었다.

당시 미래에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며 살지 결정하지 못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방황하며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훌륭한, 그리고 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누구보다 더 강했지만 앞으로의 구체적인 목표를 결정하지 못했다. 고등학생 때 일단 정한 꿈은 ‘동양 사상과 문화가 서양을 앞선다는 것을 보이고 싶다’는 것이었지만,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나의 방황은 계속됐다.

대학교 1학년 말에 전공을 정해야 하는 때가 되자, 공학보다는 자연과학이 끌렸고, 수학에 대해 좀 더 알게 되면서 수학의 세계가 좋아 보여 수학을 택했다. 그 이전에 결정했다면 수학을 택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때에 가서야 한 그 결정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 결정 덕분에 나는 평생 수학자로서 보람 있고 여유 있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송용진 인하대 수학과 교수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