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빈 살만의 길, 김정은의 길

노석조 기자 2022. 11. 29.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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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무함마드 빈살만과 북한 김정은. 둘은 젊은 나이에 절대 권력을 쥐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조선일보DB

사우디아라비아 실권자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닮은 구석이 있다. 첫째, 둘 다 ‘왕족’이다. 사우디 정식 국가명이 아랍어로 ‘알 맘라카 알 아라비야 앗 사우디야(사우디아라비아 왕국)’다. 의역하자면, ‘아라비아반도에 있는 알 사우드 가문의 왕국’이란 뜻이다. 빈 살만과 그의 부친, 조부의 성씨가 ‘알 사우드’다. 북한은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겉옷을 입고 있지만, 실상은 김씨 세습 왕조다.

둘째, 정식 후계자가 아니었다. 빈 살만은 수많은 왕자 중 하나일 뿐이었다. 왕위 계승 우선권은 그의 삼촌 무끄린 빈 압둘아지즈와 사촌형 무함마드 빈나예프에게 있었다. 그러나 빈 살만은 ‘이방원의 난’을 방불케 하는 권력 투쟁으로 경쟁자를 모두 물리치고 세자에 올랐다. 김정은은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했다. 이미 집권했는데도 불안감에 암살조를 보내 독극물로 살해했다. 김정남은 김일성의 장손, 김정일의 장남이었다. 반면, 김정은은 김정일 넷째 부인 고용희의 둘째 아들이었다. 고용희는 북한에서 ‘반쪽 바리’ ‘후지산 줄기’로 취급받는 재일 교포 출신이다. 김정은은 고모부 장성택도 고사포로 처형했다. 셋째, 둘은 MZ 세대다. 85년생인 빈 살만은 서른둘이던 2017년 실세 왕세자가 됐다. 84년생인 김정은은 스물일곱이던 2011년 집권했다.

그러나 닮은꼴 두 30대 지도자는 다른 길을 가고 있다. 빈 살만은 ‘개혁·개방’, 김정은은 ‘쇄국·폐쇄’ 정책을 펴고 있다. 빈 살만은 이슬람 원리주의 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성 운전’ ‘외국 음악 공연’ 등을 허용했다. 그 전까지 사우디 사람들은 좋아하는 가수 콘서트를 보려면, 두바이나 유럽으로 원정을 가야 했다. 김정은은 거꾸로다. 그는 2020년 ‘반동사상문화 배격법’이란 걸 만들어 한국 드라마를 보거나 유포만 시켜도 사형을 시키겠다며 외부 유입물 관련 형량을 높였다.

빈 살만은 네옴시티 건설을 발표하는 등 국가 비전을 ‘산업·문화’ 강국으로 내걸었다. 다음 세대는 ‘오일’만 가지고는 살 수 없다고 보고, 산업 다각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김정은은 여전히 ‘핵·미사일’에 집착하고 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크고 흉물스러워 ‘괴물’이라고 불리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에 혈안이 돼 있다. 얼마 전엔 ‘괴물’ 발사장에 열 살 딸을 데리고 간 모습을 공개했다. ‘핵·미사일’로 버틸 것이라는 프로파간다 현장에 어린 딸마저 동원한 것이다.

70여년 전 남과 북의 길도 달랐다. 그 결과는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카타르 월드컵 경기를 녹화 방영하면서 한국 기업 광고판을 비롯해 관중석의 태극기까지 모자이크 처리해 주민에게 보이는 김정은 왕국의 실상이 안쓰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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