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456] 축구선수의 질주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2. 11. 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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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보초니, 축구선수의 역동성, 1913년, 캔버스에 유채, 193.2×201㎝,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20세기 초, 이탈리아 미래주의를 이끌었던 미술가 움베르토 보치오니(Umberto Boccioni·1882~1916)가 달리는 축구 선수를 그렸다. 색종이를 구겨 뭉쳐 놓은 것 같은 화면에 도대체 축구 선수가 어디 있단 말인가. 화면 가운데를 잘 보면 건장한 종아리와 그 아래로 이어진 발뒤꿈치가 보인다. 이 부분이 왼쪽 다리인데, 왼쪽 다리를 찾고 나면 질주하며 땅을 박차는 오른 다리가 보이고, 상체가 있어야 할 부근에서 과연 뾰족하게 구부린 팔꿈치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보치오니는 공기를 가르며 달리는 인물,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역동적인 에너지, 선수의 발밑에서 출렁이는 운동장, 그에게 쏟아지는 조명과 우렁찬 관객들의 함성을 표현하기 위해 형태를 분할하고 윤곽선을 파괴해 날카롭게 재구성하는 피카소의 큐비즘을 이어받았다.

미래주의자들은 기차와 자동차, 기계 같은 근대 기술의 산물이 갖춘 놀라운 힘과 속도에 감동하며 달리는 자동차가 고대 헬레니즘 조각의 백미인 사모트라케의 니케보다 아름답다고 외쳤다. 근대 이전의 인류는 질주하는 자동차의 속도감이나 기차라는 거대한 쇳덩이를 끌고 달리는 동력기를 상상조차 못 했을 터. 그러니 미래주의자들은 온갖 기계 소음조차 그들만이 누리는 축복이라고 찬양했다.

이처럼 역동적인 최신 문물에 열광하던 보치오니가 힘과 속도, 열정과 패기를 폭발적으로 뿜어내는 축구 선수에게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1898년 공식 연맹이 발족한 이탈리아에서 축구는 거의 종교나 마찬가지다. 이탈리아가 아니더라도, 벌판에 공 하나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단순하고도 순수한 스포츠, 축구를 싫어할 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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