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는 집에 가나”... 겨울비에도 붉은함성 뜨거웠다

김휘원 기자 2022. 11. 28. 22:2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붉은악마와 시민들이 28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2022 카타르 월드컵 H조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를 앞두고 열띤 응원을 펼치고 있다. 2022.11.28/뉴스1

28일 오후 8시 서울 광화문광장엔 굵은 비가 쏟아졌다. 보도 곳곳에 물웅덩이가 생기고 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의 바짓단과 어깨 등이 흠뻑 젖었다. 비와 함께 본격적인 추위가 닥친다는 예보도 잇따랐다. 하지만 빗줄기나 강추위도 카타르 월드컵에 출전한 한국 대표팀을 응원하는 ‘붉은악마’들의 열정은 꺼트리지 못했다. 오후 10시부터 시작되는 가나와의 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을 앞두고 오후 8시 30분 기준 3000여 명이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시민들은 “비가 오든 말든 자리를 지키며 응원할 것”이라고 했다.

오후 6시만 해도 광화문광장에는 축구 국가대표팀을 응원하러 나선 사람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7시가 지나면서 응원을 위해 입은 붉은 빛깔의 옷 위에 비옷을 겹쳐 입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들며 광화문광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빗줄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이들은 광장에 설치된 대형 화면을 보며 어깨를 걸고 “대~한민국”을 외쳤다.

군 복무 중이라는 김강록(19)씨는 휴가를 맞아 이날 초등학교 친구인 원규태(19)씨와 광화문광장을 찾았다. 그는 “조별리그 응원을 현장에서 하기 위해 휴가 일정까지 맞춰서 나왔다”며 “이 근처에 하룻밤 묵을 숙소까지 잡아 놔서 온몸이 흠뻑 젖든 말든 함성을 지를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날 서울의 경우 비가 세차게 오면서 거리 응원에 나선 사람은 1차전에 비해 많지 않았지만 상당수 시민들은 자택이나 식당, 술집 등에 모여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했다. 이날 친구들과 서울 서초구 한 호프집에 모여 경기를 본 직장인 조혜슬(40)씨는 “이기든 지든 열심히 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빗줄기 속에서 광화문광장을 찾은 시민들은 하나같이 “2차전은 반드시 승리한다”고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강호인 우루과이와의 1차전에서 실력 면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기 때문에 가나와의 승부는 충분히 해볼 만하다고 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 대한민국과 가나의 경기가 열린 28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붉은악마와 시민들이 거리응원을 하고 있다./연합뉴스

직장 동료 8명과 함께 경기 평택에서 광화문까지 달려왔다는 고민우(31)씨는 얼굴 전체에 태극 마크로 페이스 페인팅을 했고, 심지어 비옷도 붉은색이었다. 그는 “오늘 경기를 무조건 이길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비가 오든 말든 응원전이 취소되지 않는 이상 꼭 응원하러 올 생각이었다”고 했다. 유튜버 강우혁(36)씨는 토끼 모자를 쓰고 ‘대한민국 본선 가Go(고), 가나는 집에 가나’란 문구가 적힌 팻말을 들고 응원 오는 시민들에게 일일이 하이파이브 하며 응원 열기를 돋웠다. 강씨는 “비가 온다고 응원하는 시민들의 함성 소리가 가라앉지 않도록 긍정적인 에너지 보태러 왔다”고 했다.

다수 사람들이 한꺼번에 운집하는 행사인 데다 날씨까지 궂어 경찰, 서울시 관계자, 붉은악마 등은 안전사고가 발생할까 봐 극도로 긴장한 모습이었다. 광화문광장엔 지난 우루과이와의 조별리그 1차전 때처럼 응원 구역을 여러 개로 나누는 펜스가 설치돼 한 곳에 인파가 확 쏠리지 않도록 분산하는 조치가 이뤄졌다. 또 비가 쏟아졌지만 우산에 눈이 찔리거나 하는 사고를 막기 위해 서울시는 펜스로 둘러 친 응원 구역 안에서는 우산을 쓰지 않도록 권장했다.

경찰은 이날 인파로 인한 사고를 막기 위해 경찰관 150명, 기동대 12개 부대(700여명), 특공대 20명을 현장에 배치됐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임시 대피소도 차렸다. 서울시 관계자는 “날씨를 감안해 구급차와 구급 인력을 배치해 혹시 모를 안전 사고에 대비했다”고 밝혔다.

경기 후 귀가 시간에 맞춰 대중교통도 추가 확보해뒀다. 지하철 1, 2, 3, 5호선이 29일 오전 1시까지 연장 운행하며, 광화문을 경유하는 시내버스 막차 시간도 광화문 출발 기준 오전 12시 30분까지 연장했다.

거센 비와 실점도 붉은 악마들의 함성을 막지 못했다. 전반 24분, 34분에 잇따라 가나에게 실점했지만, 시민들은 자리를 떠나기는커녕 응원의 목소리를 높였다. 붉은악마 측은 전반에 응원에 참가한 인원을 3000여 명으로 추산했는데, 2골을 먹히고 시작한 후반에도 비슷한 인원이 응원에 나섰다고 밝혔다.

후반 13분, 16분에 한국의 조규성 선수가 잇따라 골을 넣어 순식간에 2대2로 동점이 되자, 광화문 광장의 열기는 달아 올랐다. 시민들 사이에선 환성이 터져 나왔고, 일부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이후 후반 23분쯤 가나 측에 또 한 차례 실점해 점수 상황이 2:3이 되자 시민들의 환호성은 잦아들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이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맞을 때마다 시민들의 탄성이 광화문 광장을 메웠다.

시민들은 경기 결과와 무관하게 국가대표 선수들의 모습에 박수를 보냈다. H. M. SON이 적힌 손흥민 선수의 유니폼과 붉은 악마 머리띠 차림의 대학생 김모(23)씨는 “전반에 두 골을 먹힐 때만 해도 승산이 없다고 봤는데, 선수들이 포기하지 않고 후반에 2골을 내리 넣는 것을 보고 감동받았다”며 “승패와 무관하게 국가대표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본다. 거센 비에도 거리에서 응원한 것에 후회가 없다”고 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