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위기인가, 극장의 위기인가… 영화의 정체성·미래를 논하다
‘영화란 무엇인가’ 주제 25편의 글 공개
영화 배급·상영 환경 바꿔놓은 팬데믹
OTT 서비스, 디지털로 매체 전환시켜
1997년 창립한 음향 프로덕션 ‘라이브톤’
250여편의 영화·드라마 사운드 디자인
‘달콤한 인생’은 한국 소리로만 첫 제작
라이브톤 스튜디오에서는 ‘한국 소리’를 만들어 낸다. 미국 사운드를 모방하거나 복제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국내에서 포착되고 처리된 100% 한국 소스 사운드를 담으면서도 할리우드의 심미적 요소를 따라잡는다. 이미 구축해놓은 자체 사운드아카이브의 힘이다.
한국영화학회 창립 5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지난 26일 동국대 문화관에서 학회와 영화진흥위원회, 동국대 씨네포럼 공동 주최로 열렸다. ‘영화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내걸고 영화의 정체성, 장르, 기술, 국제공동제작, 관객, 산업, 플랫폼, 동시대성과 미래 등 전반에 걸쳐 25편의 글을 공개했다.
일본 도호쿠대 사노 마사토 교수는 한국영화의 장르 파괴에 주목한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괴물영화라는 장르의 틀을 취하지만 주인공 강두 일가의 도주극으로 비켜나면서 홈드라마나 코미디 요소, 풍자성이 전면에 나선다. 장르가 과하게 일탈·융합·파괴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살인의 추억’도 서스펜스 장르지만 박두만(송강호) 형사는 이를 비틀어버리는 존재다. 점쟁이에게서 계시를 받는가 하면 목욕탕을 돌며 무모증 남자를 찾기도 한다. 과학적 수사를 주장하는 서태윤(김상경) 형사가 주도하는 서스펜스 형식을 탈구시켜 버린다.
사노 교수는 이를 메타 장르로 본다. 여러 장르를 융합시키는 보다 고차원의 장르라는 것이다. 영화에 대한 비평적인 시점, 즉 외부적이고 초월적인 시점이 도입되어 있다는 뜻이다. ‘괴물’에 나오는 괴물, ‘살인의 추억’의 연쇄살인범, ‘기생충’의 지하실 주민은 모두 한국 사회를 전체적으로 암유하는 비평적 위치라는 공통점을 가졌는데, 이는 봉 감독의 메타 장르적 비평의식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것이라 설명한다. 그는 한국의 대표작들을 ‘한류영화’라는 장르 범주로 구분하고, 대안 영화의 가능성을 한국영화에서 찾는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팬데믹은 영화 배급과 상영 환경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제작의 위축은 영화산업의 위기와 직결됐다. 특히 OTT서비스는 영화 상영관의 스크린이 전 세계 가정과 개개인 휴대전화 윈도로 확장되는 상영 환경 급변을 초래했다. 아울러 테크놀로지의 발전과 필름에서 디지털로의 매체 전환은 이 시대 영화의 정체성을 다시 묻게 한다.
김정은 한국외대 학술연구교수는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의 등장이 과연 영화의 위기인지, 극장의 위기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영화의 본질 자체에 대한 문제를 야기했다기보다는 영화 상영 방식의 획일성을 교란시켰다는 것이다.
최근 극장 산업에 타격을 준 것은 OTT 플랫폼보다도 코로나19라는 질병이다. ‘범죄도시2’는 재미있고 완성도 높은 영화라면 관객들은 언제든 극장을 찾는다는 것을 입증했다. 상영하는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콘텐츠가 문제라는 말이다. 상영관에서 스크린으로 봐야만 효과를 배가시키는 영화들이 분명히 있다. 한국영화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관상’의 수양대군 등장 장면은 넓은 극장 스크린이 아니고는 그 긴장감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극장 안을 쿵쿵 울리는 음향효과와 함께 발부터 서서히 올라가는 카메라가 수양대군의 얼굴을 드러내 보일 때까지 조성되는 벅찬 감정은 퍽 오래 남는다.
영화의 개념을 기술적 측면에서 규정하는 것은 이제 무의미하다. 김 교수는 “영화가 다른 영상들과 어떻게 차별화하는 미학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가 영화를 정의하는 주요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영상조명산업 천러 대표의 글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다.
“전자책이란 존재처럼 형태가 바뀌어도 책은 책 아니겠어요?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소비되는 영화 역시 영화인 거죠.…쇼트클립 영상도 영화의 일종이라 생각합니다. 영화가 탄생했을 때를 돌아보세요. 다 쇼트클립이었잖아요.…앞으로 쇼트클립 영화가 생길지 몰라요. 쇼트클립에 서사도 있고 인물도 있으니까요.…관객들이 원하는 건 스토리입니다. 시나 소설이나 영화, 전부 다 이야기를 담아놓은 것들이죠. 영화는 사실 모든 것을 녹여내는 용광로예요. 문학, 음악, 무용, 미술, 심지어 과학기술까지 여기 다 모였잖아요. 그래서 성공했잖아요. 화려해졌잖아요. 예술로 변했잖아요. 아 그런데 또 변하려 하네요. 폐쇄적으로. 혁명에 성공한 권력자가 다른 사람의 도전을 허락하지 않는 것처럼. 걸핏하면 ‘예술’이라는 담을 쳐서 뉴미디어의 형태를 밀어내며 거만하게 말하는군요. ‘너는 내가 아니야. 넌 자격이 없다고. 나 혼자만 영화라니까?’”
김신성 선임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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