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후의 전력, 걸인의 전술’…단박에 알아챈 박지성의 순발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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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의 밥, 걸인의 찬.' 김소운의 수필집 '가난한 날의 행복'에 나오는 이 문구는 실직한 남편이 아내에게 따뜻한 밥 한끼 제대로 차려 먹이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절절히 드러낸 말로 오래오래 회자되고 있다.
간밤(11월 27일)에 벌어진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E조 조별리그 2차 일본-코스타리카전은 전력과 전술이 구색을 갖추지 못한 팀이 맞닥뜨릴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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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SEN=강희수 기자] ‘왕후의 밥, 걸인의 찬.’ 김소운의 수필집 ‘가난한 날의 행복’에 나오는 이 문구는 실직한 남편이 아내에게 따뜻한 밥 한끼 제대로 차려 먹이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절절히 드러낸 말로 오래오래 회자되고 있다.
완전한 밥상이 되려면 밥과 찬이 구색을 갖춰야 하나, 쌀은 어떻게 구해 고슬고슬한 밥을 지었지만 찬은 구할 길이 없어 간장 한 종지를 얹어 내밀었으니 그 미안함이 오죽 했으랴.
간밤(11월 27일)에 벌어진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E조 조별리그 2차 일본-코스타리카전은 전력과 전술이 구색을 갖추지 못한 팀이 맞닥뜨릴 수 있는 최악의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팀 전력은 분명 ‘왕후’의 풍족함을 갖췄으나 전술은 ‘걸인’의 빈한함을 면치 못하는, 결정적인 패착을 일본이 자처하고 말았다. 덕분에 비교되는 인물도 등장했다. 일본팀에 결정적 패착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챈 어느 방송 해설위원의 존재다.
주인공은 2002 한일월드컵의 주역 박지성 SBS 해설위원이다.
박 위원은 현역 선수인 이승우(수원 FC), 캐스터 배성재와 함께 SBS TV에서 월드컵 중계를 책임지고 있다.
박지성 해설위원은 일본-코스타리카전에 앞서 양 팀 전력을 기반으로 일본의 2-1 승을 예측했다. 일본이 독일전에서 보여준 전력을 바탕으로 한 예상이었다. 박지성 위원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전문가들도 일본의 ‘한 수 위’를 점쳤다.
그러나 박 위원은 양 팀의 선발 라인업이 발표되는 순간, 등골이 서늘했다. 독일을 상대한 라인업에서 5명이나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독일전 선발로 출전했던 사카이 히로키, 다나카 아오, 이토 준야, 마에다 다이젠, 구보 다케후사가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도무지 그 속을 알 수 없는 선수 기용이었다. 거함 독일을 가라앉힌 게 선수보다는 팀 전술의 힘이었다고 과신한 결과물이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효험을 확인한 전술만 유지한다면 어떤 선수가 들어가더라도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한 게 분명했다. 3차전인 스페인전에 전력을 다하기 위해서였다면 그 또한 오판이다. 손 쉬운 코스타리카를 버리고 버거운 스페인에 올인할 이유가 없다.
한 동안 놀라움을 금치 못한 박지성 위원은 곧바로 자신의 예상을 수정했다. 박 위원은 “일본의 2-1승은 독일전 전력을 보고 한 예측인데, 지금의 라인업이라면 0-0 무승부나 일본의 패배를 예측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코스타리카전의 결과는 놀랍게도 박지성 위원의 예상 그대로였다.
일본은 90분 동안 결정적인 한 방을 만들어내지 못했고, 후반 36분 코스타리카의 케이셔 풀러에게 결승골을 내주며 0-1로 무너졌다.
일본의 모리야스 감독은 경기 패배 후 기자회견에서 “선발 명단 변화는 후회하지 않는다”면서 "또 한 번 스페인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승리 확률을 높이기 위해 시도한 것이다”고 해명했다. 스페인전을 대비해 전력을 아꼈다는 주장이다.
이미 1승을 쌓은 일본이 왜 스페인전까지 고심해야 했을까? 코스타리카를 누르고 먼저 2승 고지에 오르는 게 그 어떤 경우의 수보다 16강에 가장 빨리 가는 길인데도 말이다.
코스타리카를 맞는 일본의 선발 라인업을 보고 재빨리 예상 스코어를 바꾸지 않았다면 박지성 해설위원만 머쓱할 뻔했다. /100c@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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