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발 두 개가 하나의 완전체로 변신하는 달항아리 착시 [오성주의 착시 여행]

입력 2022. 11. 28. 20: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생활 주변에서 발견되는 흥미로운 착시현상들. 서울대 심리학과 오성주 교수가 ‘지각심리학’이란 독특한 앵글로 착시의 모든 것을 설명합니다.
반쪽 두 개로 완전체를 만드는 달항아리 도예가
같은 원리·방법으로 제조되는 바나나맛 우유용기
부부 먼저 생각하고 행복을 채우는 교훈도 담겨

내 방에는 예쁜 백자 달항아리가 하나 놓여 있다. 정확히 말하면 종이에 출력돼 벽에 붙어 있다. 다만, 내 마음속에서는 놓여 있을 뿐이다. 달항아리를 만들 때, 도예가는 사발 두 개를 위 아래로 포개어 항아리 모양을 빚는다. 흙이 힘이 없어 한 번에 항아리 형태를 갖기 어렵기 때문이다. 사발 두 개가 만나 아름다운 달항아리 하나가 되는 셈이다. 달항아리 표면은 깨끗하기 때문에 사발 두 개가 아닌 항아리 하나로 보인다. 어느 결혼식에서 주례 선생님이 신랑 신부를 달항아리에 비유하시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는 게 달항아리와 같다는 것이다.

마침내 나에게도 달항아리 비유를 써먹을 일이 생겼다. 얼마 전 우리 실험실 출신 류군이 몇 년 만에 찾아왔는데, 곧 결혼을 하게 되었으니 축사를 맡아달라고 했다. 언제나 반가운 사람이었기에 나는 머뭇거리지 않고 수락했다. 결혼식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그런 자리에 중요한 역할로 초대받았으니 아주 기쁜 일이다. 하지만 금방 부끄러운 마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것은 내가 과연 남 앞에서 결혼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무겁게 돌아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결혼 생활이 아직 10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이미 아내에게 마음의 상처를 50년치는 준 것 같다. 결코 낭만적으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픽=송정근기자

결혼식이 열리기 전까지 축사에 대해서 고민해 보았다. 달항아리 비유는 좋지만 그대로 쓰는 것은 일종의 표절처럼 느껴졌고, 아직 흰머리보다 검은 머리가 훨씬 많은 내가 말하기에는 격에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나는 바나나맛 우유 비유를 들기로 했다. 1974년에 출시된 빙그레사의 '바나나맛 우유' 말이다. 이 우유의 용기는 달항아리를 닮았다. 실제로 당시 개발팀은 달항아리 전시에 갔다가 지금의 디자인을 떠올렸다고 한다. 또 이 용기를 만들 때, 아랫부분과 윗부분을 따로 만들고, 서로 포갠 다음 고속으로 회전시켜 발생한 마찰열로 이어 붙인다고 한다. 만드는 방식이 달항아리와 똑같은 것이다. 사실 나는 바나나맛 우유에 대한 구체적인 사연은 최근에 알았지만, 달항아리와 모양과 만드는 방법이 비슷하다는 것은 오래전에 스스로 발견하고 좋아했다. 서로 다른 물체들을 보고 비슷한 점을 찾는 것은 지각적 통찰이다.

마침내 결혼식 날이 왔다. 이번 가을은 길고도 아름다웠는데, 이날이 가장 좋았다. 평소에는 좀 더 젊어 보이고 싶었지만, 이날만큼은 나이가 들어 보이기를 바랐다. 내 차례가 되어 하객들 사이를 뚫고 단상으로 올라갔다. 나는 먼저, 신랑 신부가 이 자리에 오기까지 많은 어려움들을 이겨낸 것을 축하해 주었다. 서로 마음을 고백하고 받아준 일, 결혼을 결심하고 부모님께 승낙을 받은 일, 스튜디오 촬영부터 드레스·메이크업 선택 등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스드메의 계곡'도 잘 지나 결혼식장에 잘 도착한 일들이다. 다음으로, 부부란 무엇인지에 대해서 감히 소견을 말했다. 미리 준비해간 바나나맛 우유를 주머니에서 꺼내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그리고 '부부란 이 바나나맛 우유입니다! 이제부터는 자신을 잊고 부부를 먼저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맛있는 바나나맛 우유를 담은 이 용기처럼 신랑 신부도 행복을 담을 것입니다' 하고 말했다. 이것은 신랑 신부에게 한 말이지만 사실 내 자신이 더 새겨들어야 할 말이었다.

고 서정주 시인이 달항아리를 안고 있다. 남현동 봉산산방

가끔 달항아리를 안고 있는 예술가를 볼 수 있다. 달항아리는 눈으로만 감상하는 것이 아니고 가슴으로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달항아리는 고독한 가슴을 채워주는 것이다. 달항아리는 높은 열에 구워지면서 모양이 조금 틀어진다. 나는 지금의 가족과 모양이 많이 틀어질지라도 깨지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오성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한국일보 www.hankookilbo.com (무단복제 및 전재, 재배포를 금지합니다)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