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문화 달라 차별받는 이들끼리 ‘안전하게’ 소통하고 싶었죠”

한겨레 입력 2022. 11. 28. 19:35 수정 2022. 11. 28.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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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짬] 재독 한인 종합예술가 이인경 총감독
그 자신 이주민 출신으로 한국·미국·독일을 오가며 활동중인 이인경 총감독. 코리아협의회 제공

무대 위에서 출연자들은 영어·독일어·한국어 인터뷰 내용을 수어로 표현하거나, 무대 위를 끊임없이 달리거나 줄로 서로 몸을 동여맸다 풀기를 반복하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냄새가 난다며 놀림받던 일, 한국어로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던 사연, 어릴 때 할머니 품에서 크다가 갑자기 독일에 있는 부모에게 가면서 겪었던 이별의 고통, 일상에서 느꼈던 미묘하거나 노골적인 인종주의와 직면했을 때의 당혹스러움 등 내면의 아픔을 나누는 시간이었다.

지난 17~20일 독일 베를린의 대안 공연 공간 탄츠파브리크에서 독일 시민단체 코리아협의회의 주최로 독일 이주 ‘아시아계 1.5세’들의 고뇌와 아픔을 들을 수 있는 드문 공연이 열렸다. <부유하는 뿌리> 제목의 이 작품을 연출한 이는 한인 예술가 이인경 총감독이다.

독일 한인단체 코리아협의회 주최
베를린에서 ‘부유하는 뿌리’ 공연
아시아계 1.5세·성소수자 등 출연
“인터뷰로 6명 선정해 개별 연습”

출연자·관객들 같은 이주경험 공유
“1.5세들 정체성 고통 진솔하게 나눠”

베를린에서 공연한 ‘부유하는 뿌리’ 포스터. 코리아협의회 제공
베를린에서 공연한 ‘부유하는 뿌리’의 무대 장면. 코리아협의회 제공

이 감독은 사연자들이 쏟아낸 “이야기들이 진솔하고 슬프고 고통스럽고 아름다웠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출연을 희망하는 이들에게 받은 이메일 내용을 바탕으로, 아시아계 이민자 1.5세와 성소수자를 중심으로 출연자를 골랐다. 이 과정에서 한국·중국·베트남 등 여러 아시아 나라 출신 17명을 인터뷰해 독일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사연을 공연에 담았다.

출연자 6명은 모두 연극이나 춤과는 거리가 먼 일반인들이었다. “날 것 그대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싶다”는 감독의 기획 의도에 따른 선택이었다. 거주 지역이 다른 서로 모르는 이들이 한 곳에서 만나 공연을 했다. 모두 함께 호흡을 맞추는 총연습은 하루밖에 하지 못했다. 1년 가까운 준비 기간 동안 출연자들은 각자 개별적으로 이 감독과 만나 연습해왔다. 출연자들은 각각 네 차례 세 시간씩 감독과 만나 연습했다.

이 감독은 “출연자들은 서로에 대해 모르고 나만 그들을 각각 만난 상태에서 혼자 상상해서 안무를 만들어야 했던 점이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출연자 중 한 명으로 청각장애가 있는 조혜미씨는 수어로 상당한 양의 인터뷰 대사를 외워야 했기 때문에 더욱 어려웠다. 이 감독도 수어를 배워 같이 연습했다. 공연 현장에서는 국제수어(ISL) 통역도 제공했다.

출연자 중 한 명인 이수남(31)씨는 “비슷한 경험을 했던 사람들과 함께하며 감정이 북받쳤고, 슬펐지만,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감정을) 나눌 수 있어서 용기를 얻었다”고 말했다. 12살 때 인도에서 독일로 이주했다는 관객 네베디타 프라사드(54)는 “인터뷰 중 한국어나 베트남어로 더 이상 말하지 않겠다고 하던 대목은 나도 잘 아는 대목이라서 마음이 아팠다”고 말했다.

한정화 코리아협의회 대표는 “간호사나 광원으로 독일에 온 1세대에 대한 이야기나 여기에서 태어난 2세의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는 편이지만, 어린 시절이나 청소년 시절에 이곳에 와서 적응해야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았다”며 “이번 공연으로 아시아 이주민 1.5세들과 성소수자인 분들의 이야기도 담아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이 감독 자신도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국외로 이주했다. 그랬기에 인터뷰한 이들의 감정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생기는 어려움, 인종차별 경험이 내 삶이었다. 그래서 이런 우리끼리 안전한 공간을 만들어서 함께할 수 있고, 나눌 수 있다는 게 소중했다”고 말했다.

미국 매사추세츠·영국 런던·미국 애리조나에서 무용을 공부한 그는 다양한 맥락에서 몸에 대한 글을 써왔고 지금은 베를린·뉴욕·서울을 오가며 공연, 음악, 영상 등을 선보이며 종합예술가로 활동중이다. 지난 1월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린 ‘수요시위 30돌 기념행사’ 때에는 가수로서 ‘바위처럼’과 ‘내 사람이여’ 등을 부르기도 했다. 불법 이주노동자와 어머니의 삶을 다룬 그의 신작 음악앨범은 베를린 지역 문화잡지 <로라 매거진>(LOLA Magazine>에서 ‘사운드 오브 베를린 #10’ 중의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베를린 무용 공연 리뷰포털(tanzschreiber.de)에서 고정 필진으로 활동중인 그는 공연 현장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의 소식과 관점을 전하는 칼럼 ‘라잇 나우’(Right Now)를 기획해 진행중이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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