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잇단 역대급 ‘앙숙 매치’…한일전만 뜨거운 게 아니네

조효성 기자(hscho@mk.co.kr) 2022. 11. 28.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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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앙숙’ 미국-이란
‘한지붕 숙적’ 잉글랜드-웨일스
“너에게만큼은 절대로 안 진다”
볼 다툼 벌이는 아즈문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세계에서 축구를 가장 잘하는 32개국이 모인 2022 카타르 월드컵. ‘축구 전쟁’이라는 말처럼 절대로 양보 없는 치열한 승부가 펼쳐지고 있다. 하지만 진짜 ‘전쟁’ 같은 축구를 하는 국가들도 있다. 마치 ‘가위바위보도 절대 질 수 없다’는 한국과 일본처럼 만만치 않은 앙숙들이 16강 길목에서 만났다. 바로 ‘정치적 앙숙’ 미국과 이란, 그리고 ‘한지붕 숙적’으로 관심을 끄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맞대결이다.

지난 4월 2일(한국시간). 2022 카타르 월드컵 조 추첨에서 이란이 미국과 함께 B조에 묶이자 이란 내 축구팬들은 흥분된 감정을 감추지 못하며 “카타르 월드컵 B조 경기는 ‘이기거나 지는 것’이 아니라, ‘이기거나 순교하는 것’이 맞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경기에서 다친 선수들은 ‘국가유공자’로 대우해 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야말로 절대 질 수 없는 상대인 이란과 미국이 드디어 만났다.

카타르 월드컵 조별 예선이 진행되는 가운데 28일 현재 B조에서는 두 개의 전쟁이 예고됐다. 축구팬을 떠나 전 세계인들의 관심을 끄는 승부는 미국과 이란이다. 현재 이란이 1승 1패(승점 3)로 조 2위에 올라가 있고 미국은 두 차례 무승부로 승점 2점을 얻으며 조 3위에 올라가 있다. 30일 새벽 4시에 열리는 맞대결에서 미국이 이기면 이란을 떨어뜨리고 16강행을 확정한다. 이란은 조금 더 여유롭다. 미국과 비기기만 해도 16강 진출 가능성이 크고 이기게 되면 확실하게 16강행 티켓 한장을 차지하게 된다.

미국과 이란은 ‘불화와 갈등의 역사’라고 보면 된다. 이란은 1979년 2월 이슬람 혁명으로 친미 왕정에서 반미 신정일치 정권으로 통치 체제가 급변했고, 그해 11월 벌어진 444일간의 주테헤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으로 단교했다. 가장 최근에는 2020년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총사령관 거셈 솔레이마니를 미국이 암살한 후로는 미국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이 더 깊어졌다는 관측이 많다.

대회 개막에 앞서서는 이란 내 여성 인권이나 러시아에 대한 군사적 지원 등의 이유로 ‘이란을 이번 월드컵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국제 여론이 들끓었다. 물론 미국도 이란의 월드컵 퇴출 주장에 앞장섰다. 또 2개월 전인 9월에는 마흐사 아미니라는 여대생이 히잡 미착용을 이유로 체포됐다가 사망한 사건 때문에 이란 내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는 중이다.

이러한 이유로 이란 선수들은 잉글랜드와 1차전 경기 시작 전에 국가를 따라부르지 않으며 반정부 시위대에 연대 의사를 나타냈고, 웨일스와 2차전 때는 경기장 밖에서 이란 반정부 시위대와 친정부 시위대 사이에 충돌이 빚어지는 등 경기력 보다는 정치적인 문제로 소란스러웠다. 여기에 미국이 기름을 부었다. 미국 대표팀 공식 소셜 미디어 계정에서 이란과 3차전을 앞두고 이란 국기 가운데 위치한 이슬람 공화국 엠블럼을 삭제하는 사건이 더해지며 이란은 국제축구연맹(FIFA)에 “미국을 월드컵에서 퇴출 시켜야 한다”며 주장하고 있다.

전방 패스 시도하는 타일러 애덤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한 지붕 숙적’으로 불리는 잉글랜드와 웨일스도 30일 새벽 4시 자존심을 걸고 경기에 임한다. 현재 잉글랜드는 1승 무로 승점 4점을 획득해 16강 진출의 9부 능선을 넘었지만 웨일스는 1무 1패로 승점이 단 1점에 그치며 꼴찌에 머물러 있다. 웨일스는 잉글랜드를 3점차 이상 이겨야 16강을 바라볼 수 있다.

일단 잉글랜드의 우세다. 잉글랜드는 1966년 자국에서 열린 대회 이후 56년 만의 두 번째 월드컵 정상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1958년 스웨덴 대회 이후 처음으로 본선 무대를 밟은 웨일스도 조별리그 탈락을 면하려면 1승이 간절하다. 웨일스는 당시 월드컵 역사상 처음으로 본선에 오른 뒤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한 바 있다.

잉글랜드의 에이스 해리 케인(29·토트넘)과 웨일스의 핵심 공격수 개러스 베일(33·로스앤젤레스)의 활약 여부가 관건이다. 케인은 2018년 러시아 대회 당시 득점왕(6골)에 오른 잉글랜드 대표 골잡이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두 경기 연속으로 골 맛을 보지 못하고 있다. 또 과거 레알 마드리드에서 전성기를 보낸 베일은 이번 대회 미국과의 1차전에서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예열을 끝냈다. 케인과 베일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에서 한솥밥을 먹은 사이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앙숙일 수밖에 없다. 13세기에 잉글랜드 일대를 장악한 앵글로색슨족이 각 지역을 무력으로 복속시키며 하나의 통합 왕국을 탄생시키며 ‘지배와 정복의 역사’가 시작됐고 여전히 잉글랜드를 제외한 영연방 3개국은 잉글랜드에 악감정을 갖고 있다. 특이하게 두팀은 올림픽에서는 함께 출전하는 것을 볼 수 없다. 축구만 예외다. 축구종가로 꼽히는 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가 각각 다른 협회와 대표팀을 운영하고 있다. 1국가 1협회 체제를 강조하는 FIFA도 영국의 위상과 특수성을 인정하고 있다.

앙숙 답게 이미 팬들은 한 차례 주먹질로 맞대결을 펼쳤다. 영국 대중매체 데일리 스타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팬 수십 명이 결전을 앞두고 테네리페의 술집 밖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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