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T현장] 가짜뉴스 퇴치는 `여론의 광장`에서

입력 2022. 11. 28. 1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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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경 정치정책부 차장

이정호 감독, 정재영·이성민 주연의 영화 '방황하는 칼날'은 성폭행을 당하고 죽음을 맞은 중학생 딸의 복수를 직접 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다. 배우 정재영씨가 아버지 역할, 배우 이성민씨가 복수의 화신이 된 아버지를 추격하는 형사 역할이다. 이 영화의 딜레마는 누가 보더라도 피해자인 그 아버지가 복수를 결심하면서 가해자로 바뀌고,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법치국가에서 사적제재(私的制裁)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사적제재란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개인이나 집단에 의해 결정되고 집행되는 모든 형태의 사회적 제재를 말한다. 영화에서처럼 폭력적인 방법뿐 아니라 유형적·무형적 제재방법도 포함된다. 법치국가인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사적제재를 범죄로 규정한다. 처벌도 엄격하다. 사적제재는 사법불신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에 법치주의를 무너뜨릴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동남아 순방에 앞서 MBC 취재진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거부한 것을 보면서 가장 먼저 '사적제재'를 떠올렸다. 윤 대통령은 순방을 떠나기 전날인 지난 10일 기자들과의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에서 MBC 전용기 탑승 배제와 관련해 "많은 세금 써가며 해외 순방을 하는 건 중요한 국익이 걸려있기 때문"이라며 "(취재진 전용기 탑승은) 외교·안보 이슈의 취재편의 차원에서 받아들여달라"고 했다. 해석하면 MBC가 '바이든 자막' 뉴스로 국익을 훼손했으니 취재편의 차원에서 제공하던 전용기 탑승을 불허했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순방을 마치고 돌아와서 더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지난 18일 순방 후 첫 도어스테핑에서 '해외 순방 중 상당한 성과가 있었지만 특정언론사 배제 논란, 선택적인 언론관이라는 지적이 있다'는 비판에 "MBC 전용기 탑승 배제는 우리 국가 안보의 핵심축인 (한미)동맹관계를 사실과 다른 가짜뉴스로 이간질하려는 악의적 행태 때문"이라며 "헌법 수호를 위해 부득이하게 (조치했다)"라고 했다. 이어 "언론도 입법·사법·행정과 함께 네개의 기둥"이라며 "사법부가 사실과 다른 증거조작으로 판결할 경우 사법부는 독립기관이니 문제 삼으면 안될 거라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타당한 조치였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대통령의 발언에 MBC 취재진이 '무엇이 악의적이냐'고 따졌고, 대통령실의 한 비서관이 "대통령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고 문제 삼으면서 양측이 언성을 높였다. '무엇이 악의적이냐'는 MBC의 물음에는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이 조목조목 답했다. 이 부대변인은 첫째, MBC가 음성 전문가도 확인하기 힘든 말을 자막으로 만들어 무한 반복했고, 둘째, 대통령이 하지도 않은 말, 국회 앞에 미국이란 말을 괄호 안에 넣어 미 의회를 향해 비속어를 쓴 것처럼 거짓 방송을 했고, 셋째, MBC 미국 특파원이 가짜뉴스를 근거로 미국 백악관과 국무부에 입장 표명을 요구해 한미동맹을 노골적 이간질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이 부대변인은 MBC에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했으나 지금까지 사과는커녕 아무런 답변조차 하지 않고 있는 점, 대통령 부부와 정부 비판에 혈안이 돼 있다는 점, △광우병 괴담 조작방송 △조국수호 집회 '딱 보니 100만명' 허위 보도 △월성원전 방사능 오염수 유출 등 모두 가짜뉴스였다고 이유를 들었다.

결국 대통령실은 지난 21일부터 도어스테핑 잠정 중단을 선언했다. 일주일이 지난 현재까지 도어스테핑이 재개될 조짐은 없다. 대통령실의 한 고위 관계자는 "도어스테핑이 가치가 있는 소통 방법이니 재개할 필요가 있다는 많은 분들의 제언을 가슴 새기며 듣고 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도어스테핑이 정착되고 관행화될 수 있도록 많은 언론인들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작게는 언론과의 약속, 크게는 국민과의 약속이었던 도어스테핑이 언제 재개될지 기약할 수 없게 됐다. 다만 일련의 과정 중에서 아쉬운 점은 대통령실이 '가짜뉴스'나 '악의적 왜곡'을 규정하는 태도다. 가짜뉴스를 결론짓는 역할은 대통령이나 대통령실의 몫이 아니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은 시스템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준사법기관인 언론중재위원회가 있다. 외교부도 MBC의 해당 방송에 대해 언론중재위에 제소해 조정이 진행 중이다. 더 나아가 형법으로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을 다루고 있다. 사법적 영역에서 가장 객관적으로 '가짜뉴스' 판별을 받을 수 있다.

대통령 역시 이 시스템에 의해 움직여야 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가짜뉴스'가 되고 '악의적 왜곡'이 되는 것은 사적제재는 아니더라도 설득력을 결여할 수 있다. 최고 권력기관인 대통령이 쟁점의 한가운데 있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the13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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