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물연대 파업] 성탄절 수출계약·월드컵 특수 날려… 유탄 맞은 업체들 한숨만 푹
주류업 하루평균 200억 출하 못해
물류마비 피해신고센터 56건 접수
타이어 재고 부족·철강 출하 차질
"하필 화물연대의 파업이 시작돼 컨테이너 차량 운송이 중단되는 바람에 성탄절 특수용 악기 수출을 못하게 됐어요."
악기를 수출하는 중소기업 A사(영남지역 소재)의 김모 대표는 28일 "울산에서 컨테이너 차량이 멈춰 동남아시아에서 수입한 원재료를 10% 밖에 받지 못했다"며 "코로나 이후 모처럼 따낸 수출계약을 날리게 생겼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A사는 유럽쪽 바이어에게 일단 제품을 10%만 전달해도 되겠느냐고 협상을 시도했는데, 바이어측은 100%가 아니라면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통보를 했다. 이 회사는 원자재 대금을 고스란히 떠안게 됐고, 위약금까지 더하면 수십억원의 돈을 날릴 판이다.
◇물류 마비로 계약파기·위약금 발생 속출= 화물연대 총파업이 28일로 닷새째 이어지면서 물류 마비의 유탄을 맞은 수출기업의 피해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 23일부터 이날 오전 9시까지 '집단운송거부 긴급 애로·피해 신고센터'에 32개 화주사가 56건(중복 포함)을 접수했다.
피해 사례는 '납품 지연으로 인한 위약금 발생 및 해외 바이어 거래 단절'이 25건(45%)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로 인한 물류비 증가' 16건(29%), '원·부자재 반입 차질에 따른 생산중단' 13건(23%), '공장·항만 반·출입 차질로 인한 물품 폐기' 2건(4%) 순이었다.
재생타이어 등을 수출하는 한 중소업체는 "물량이 가장 많은 연말에 납기 지연으로 추가 주문과 기존 주문이 취소돼 피해가 더 크다"며 "회사 신뢰감이 크게 하락했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 12개 항만의 컨테이너 반출입량은 평상시의 21% 수준으로 크게 감소했다. 항만이 평소의 20% 정도만 기능하고 있다는 뜻이다.
◇월드컵 16강 진출 시 '주류대란' 우려도= 산업계 전반에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이번 화물연대 집단운송거부 나흘 째인 지난 27일 기준 출하 차질 금액은 464억원가량인 것으로 집계됐다. 하루 평균 약 200억원 상당의 물량이 출하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난 6월 화물연대 파업 당시 '주류대란'을 겪었던 주류업계는 이번 파업에는 재고를 미리 외부로 빼놓고 임시차량을 투입하는 등 선제 대응을 했다. 하지만 임시차량 투입으로 비용부담이 늘고 있으며, 파업이 열흘 이상 지속될 경우 원료 공급이나 제품 공급에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우려했다. 만약 한국이 카타르월드컵 2022에서 16강에 진출할 경우 12월 6일 또는 7일에 경기를 하게 된다.
타이어업계는 파업 첫날인 24일부터 제품 물류 관련 영향이 계속되는 가운데 이번주 후반부터는 재고 부족 현상이 본격화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는 지난 24~26일 입출고율이 평소 대비 30~40%로 떨어졌다. 이날은 전주보다는 소폭 올랐으나 여전히 40~50% 수준이다. 금호타이어는 24일부터 완성차업계 등에 공급하는 긴급 출하물량을 제외하면 출하가 막힌 상태여서 전국 물류창고에 비축한 재고로 대응 중이다.
◇석유화학·철강 등 '휘발유 대란' 예의주시= 국내 최대 석유화학·철강업체가 밀집한 여수산업단지와 광양제철소는 생산한 제품을 출하하지 못해 공장 내에 쌓이고 있다. 기아 오토랜드 광주에서도 완성차를 운송할 차량이 멈춰서면서 운전원 수백 명을 채용해 광산구 평동 출하장과 전남 장성 물류센터로 완성차를 직접 운전해 옮기고 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을 비롯해 현대제철 전체 공장에서는 하루 5만톤가량의 제품 출하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수도권의 레미콘 공장은 시멘트 재고 부족으로 이날부터 가동이 거의 중단됐다. 레미콘업계는 전국적으로 출하가 중단되면 하루 평균 피해액이 5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한다. 시멘트 공장들은 현재 생산 차질은 없으나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 차량을 통한 시멘트 출하는 여전히 중단된 상태다.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사들은 화물연대의 집단 운송 거부가 장기화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탱크로리 기사들의 화물연대 가입이 늘어난 상태여서 '기름 대란'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사전에 물량을 확보하지 못한 일부 주유소는 재고가 곧 소진될 수 있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박은희·김수연기자 eh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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