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임윤찬 “음악으로 또 다른 우주를 여는 일…돈 이상의 가치”

2022. 11. 28.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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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G 음반 통해 레코딩 아티스트로 첫 걸음
광주시향과 베토벤 ‘황제’ 협연 실황 발매
음악가로의 지향점 오래도록 고민
“음악으로 또 다른 우주를 여는 것…
돈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 이상의 것”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광주시립교향악단과 함께 한 ‘베토벤·윤이상·바버’ 앨범을 통해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몸포우의 ‘정원의 소녀들’, 스크랴빈 ‘2개의 시곡’ 중 1번, ‘음악 수첩’ 등을 들려준다. 임세준 기자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단숨에 ‘클래식 스타’로 떠올랐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음악을 대하는 진중한 자세, 음악의 길에 대한 깊은 고민은 여전했다. 지난 6개월 사이 조금 더 성숙해지고, 조금 더 여유도 생겼다. 지난 6월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 역사상 최연소 우승자로 이름을 올리며 올 한 해 ‘문화예술계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다.

임윤찬은 광주시립교향악단과 함께 ‘베토벤, 윤이상, 바버’ 앨범 발매일인 28일 기자들과 만나 “‘황제’ 교향곡을 다시 들으며 베토벤이 꿈꾼 유토피아와 그가 바라본 우주를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도이치 그라모폰을 통해 발매된 이번 음반은 지난 10월 8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의 연주 실황을 담고 있다. 음반에는 임윤찬과 광주시향이 협연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광주시향이 연주한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임윤찬이 앙코르로 연주한 몸포우의 ‘정원의 소녀들’, 스크랴빈 ‘2개의 시곡’ 중 1번, ‘음악 수첩’ 등이 수록됐다.

“사실 베토벤 협주곡 중에서도 이상하게 ‘황제’에 대한 애정이 생기지 않았어요. 어릴 때부터 들어온 ‘황제’는 제 부족한 귀에는 너무 화려하게 들리고, 협주곡 4번의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작년까지만 해도 가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인류에 큰 시련이 닥치고,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방안에서 연습만 하면서 인식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베토벤이 원한 유토피아와 자유를 전하고 싶었어요.”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광주시립교향악단 홍석원 상임지휘자. 임세준 기자

녹음을 계획한 것은 이미 오래 전이다. 광주시립교향악단의 홍석원 상임지휘자는 지난해 송년음악회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으로 임윤찬과 호흡을 맞춘 뒤, 녹음을 제안했다. 홍석원 지휘자는 “광주시향 음반 녹음을 계획하며 협연자 없이 진행할 생각도 하고 있었는데, 송년 음악회를 통해 윤찬 군을 만나며 완전히 반해버렸다”고 말했다.

임윤찬에게도 광주시향과의 만남은 특별하다. 그는 “광주는 예향의 도시라고 들어 연주 전부터 광주시향이 궁금했다. 첫 리허설을 하는데, 살면서 오케스트라의 단원들이 이렇게 엄청난 에너지와 영흔으로 연주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며 “(홍석원) 지휘자 선생님과 단원들의 에너지가 내게 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라흐마니노프가 가장 좋아한 오케스트라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였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 마음엔 광주시향이 라흐마니노프의 필라델피아처럼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어요. 그래서 ‘황제’를 광주시향과 꼭 해보고 싶었어요.”

광주시향과의 음반을 통해 임윤찬은 ‘레코딩 아티스트’로 첫발을 디뎠다. “지금까지 마음에 드는 공연이 한 번도 없었다”는 그가 실황 연주로 첫 음반을 남기게 됐다. 임윤찬은 “솔로가 아닌 훌륭한 오케스트라와 첫 앨범을 내게 된 것이 영광이다”라며 “혼자 녹음했다면 알지 못했을 음악적 부분을 채우게 됐다”고 돌아봤다. 특히 “스튜디오 녹음은 자칫 너무 완벽하게 하려다 음악이 수많은 가능성을 잃고 무난해지는데, 관객과 음악을 나눈 시간이 그대로 음반으로 나온 게 매우 의미 있는 일”이라고 의의를 보탰다.

이번 음반으로 광주시향은 윤이상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 희생자를 위해 작곡한 ‘광주여 영원히’를 처음으로 녹음했다. 홍석원 지휘자는 “작년 취임 후 의미있는 녹음 작업을 하려고 생각하던 중 광주시향이 연주한 ‘광주여 영원히’가 공식적으로 남아있는 게 없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녹음을 계획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윤찬 군과 함께한 ‘황제’ 협주곡에 담긴 베토벤의 정신과 윤이상의 정신이 잘 맞아 한 앨범에 담게 됐다”고 덧붙였다.

송년음악회부터 10월 6일, 8일의 ‘황제’ 연주까지 몇 차례 호흡을 맞춘 임윤찬에 대해 홍 지휘자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 10대 청년의 질풍노도 같은 에너지가 넘치는 연주였다면 ‘황제’에서, 특히 2악장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애절한 연주라 눈물이 났다”며 “계속 연주 스타일이 바뀌는 다양한 색채를 가지면서도 매번 설득력이 있어 저로서는 천재라는 말밖에 할 수 없다”며 감탄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베토벤·윤이상·바버] 앨범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가 28일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열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참석하고 있다. 임세준 기자

현재 임윤찬은 그 누구보다 바쁜 연주자다. 콩쿠르 우승 이후 재학 중인 한국예술종합학교를 휴학한 뒤 연주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그의 스승인 손민수 교수가 내년 가을학기부터 미국의 명문 음대인 뉴잉글랜드음악원 교수로 부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며 임윤찬의 유학 가능성에도 음악계의 관심이 모아졌다. 임윤찬은 “사실 전 당장 내일이라도 죽거나 다쳐서 피아노를 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섣불리 계획을 얘기했다가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 답하기 어렵다”고 했다.

임윤찬은 수차례의 국내 무대로 관객과 만났지만, 우승 기념 리사이틀은 이번이 처음이다. 다음 달 3일 도쿄 산토리홀에서의 일본 데뷔 리사이틀 이후 같은 달 6, 8일 각각 통영국제음악당과 대전 카이스트 대강당, 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팬들을 만난다.

임윤찬은 “이번 리사이틀에서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연주했던 곡을 들려달라고 제안받았지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며 “콩쿠르 당시 너무 힘들게 했던 곡들이라 다시 칠 수가 없었다”며 웃었다. 리사이틀의 선곡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중요한 한 가지는 ‘희소성’이다. 그는 “언젠가 솔로 앨범을 녹음할 기회가 된다면 누구나 다 유행처럼 연주하는 곡은 피하고 싶다”며 “쇼스타코비치 ‘프렐류드’의 전곡처럼 어떤 작곡가의 뿌리가 되는 곡이나 작곡가의 생애에 중요한 접근을 하게 되는 곡을 연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번 연주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바흐의 ‘신포니아’와 리스트 ‘두 개의 전설’, ‘순례의 해’ 중 ‘이탈리아’, 올랜도 기번스·솔즈베리 경의 ‘파반&가야르드’ 등을 선보인다.

“바흐 ‘신포니아’는 베토벤과 리스트를 만들어낸 곡이라고 생각해요. 시적인 표현들과 리스트가 보여준 엄청난 비르투오소(고도의 기교) 같은 연주와 아름다운 멜로디가 담긴 곡인데 평소 잘 연주되지 않는 보석 같은 곡이라 고르게 됐어요.”

콩쿠르 이후 세계 무대가 주목하는 ‘클래식 스타’로 떠올랐으나, ‘반짝이는 소년’은 ‘초연한 노인’처럼 담담히 음악적 지향점을 이야기했다. 그는 “콩쿠르에 나가 운 좋게 1등을 하고, 이렇게 연주를 다니는 것이 대단한 업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며 “음악가로서 근본이 되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오랫동안 고민했다”고 말했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이나 ‘모차르트 소나타·협주곡 전곡’을 연주하는 것이 피아니스트가 반드시 해야하는 일이라면, 음악으로 마음을 나누고 이 세계를 가꾸는 것은 피아니스트인 그가 바라보는 방향이다.

“몸이 불편해 연주회에 올 수 없는 분들이나 보육원, 호스피스 병동 등에 직접 찾아가 음악을 들려드리는 것이 음악가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손민수(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선생님께 배웠어요. 제가 생각하는 대단한 업적은 이런 거예요. 물질적인 후원을 넘어 음악을 듣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이들에게 직접 가서 연주하고 음악을 나누는 것. 저처럼 미숙한 사람이 찾아가, 음악을 통해 사람들이 알지 못했던 또 다른 우주를 열어드릴 수 있는 것은 돈 이상의 가치를 매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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