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학수의 골프 오디세이 <112> 박성진의 가치 투자와 골프(3)] “주식=투기 아닌 과학”…그레이엄의 현명한 투자자
미국 골퍼 벤 호건(1912~97)은 실전과 이론에 모두 능한 인물이었다. 그는 41년간의 선수 생활 동안 메이저 9승(마스터스 2회, US오픈 4회, PGA 챔피언십 2회, 디오픈 1회)을 포함해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 64승을 거둔 전설이다. 근대 스윙을 정립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가 쓴 ‘벤 호건의 다섯 가지 레슨(Ben Hogan’s Five Lessons)’은 지금도 전 세계 골퍼의 사랑을 받고 있다. 172㎝, 65㎏인 그는 신체 조건의 열세를 극복하고 장타를 치기 위해 심한 스트롱 그립(왼손을 오른쪽으로 많이 돌려 쥐는 것)을 쥐었다. 엄청난 훅(공이 왼쪽으로 크게 휘는 것)으로 고생했다. 독학 골퍼였던 그는 자신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언제나 완벽한 샷을 할 수 있는 비법을 연구하고 나섰다.
그가 1957년 펴낸 ‘벤 호건의 다섯 가지 레슨’은 골프의 기본인 그립과 스탠스, 포스처, 스윙을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명료하게 설명한다. 그는 1949년 목숨을 잃을 뻔한 교통사고를 당했다. 의사는 “평생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하지만 오뚝이처럼 일어난 호건은 부상 재발을 막기 위해 1년에 열 차례가 되지 않는 PGA투어에 나가면서도 11승을 더 거뒀다. 그중 6차례가 보통 대회보다 10배는 더 어렵다는 메이저 대회 우승이었다. 그는 부상 1년 뒤인 1950년 US오픈에서 우승했고, 1951년 마스터스 첫 우승과 US오픈 세 번째 우승을 일궜고, 1953년에는 마스터스, US오픈, 디오픈 등 3대 메이저 대회를 석권했다. 갖가지 고난을 딛고 골프의 전설이 된 호건의 비결은 “너무나 연습하고 싶어 아침까지 기다릴 수 없을 정도”라고 한 노력 덕분이었다.
‘가치 투자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저민 그레이엄(1894~1976)도 비슷한 성향의 인물이다. 일정한 규칙 없이 변동하는 투기 대상으로 보이던 주식 시장을 현명한 투자의 대상으로 끌어올린 천재였다. ‘회사 일부에 대한 소유권으로서의 주식’ ‘안전 마진’ 등 가치 투자의 기본으로 여겨지는 개념을 창시하고 주식 시장을 조울증이 있는 ‘미스터 마켓’으로 의인화했다. 가능성이나 소문에 의지해 투자하던 시대에 처음 기업의 재무제표 등 수치를 분석해 투자를 위한 근거를 만들어낸 그레이엄의 가치 투자는 혁명이었다.
1914년 컬럼비아대 졸업을 앞둔 마지막 달, 20세의 그레이엄은 철학과, 수학과, 영문학과 교수직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하고 월스트리트를 선택했다. 오늘날의 애널리스트에 해당하는 ‘통계원(statistician)’으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며 이름을 떨쳤다. 1926년 자신의 투자 회사(펀드)를 설립하여 성공적으로 운용하였고 대학 강의와 기고 활동을 병행하였다. 그레이엄의 펀드는 연평균 20%의 수익률을 올렸다고 알려져 있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입학 시험에 떨어진 워런 버핏은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에 들어가 그레이엄의 수업을 듣게 되는데, 그레이엄으로부터 A+를 받은 유일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그레이엄의 수업을 들었던 사람들과 그레이엄과 함께 투자했던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이 가치 투자로 크게 성공하게 된다.
그의 명저 ‘현명한 투자자’를 두고 워런 버핏은 “지금까지 나온 투자서 중 내가 단연 최고라고 생각하는 책”으로 꼽는다. 1949년 초판 이래 개정 2, 3판을 거쳐 1973년 개정 4판을 발행했다. ‘현명한 투자자 개정 4판’은 그레이엄이 직접 쓴 마지막 개정판으로 지금도 사랑받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자본 시장에서 이 책이 70년 넘게 생명력을 유지하며 ‘살아있는 고전’이 된 비결은 무엇일까. 우리는 어떻게 돈을 잃지 않는 현명한 투자자가 될 수 있을까.
‘현명한 투자자’의 핵심 내용을 국내의 대표적인 가치 투자자인 박성진 이언투자자문 대표는 이렇게 해석한다.
1│그레이엄의 가치 투자는 기업의 진정한 가치를 따져보고(내재 가치), 가치보다 충분히 싼 가격(안전 마진)에 사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주가가 내재 가치보다 싸면 투자를 두렵게 만드는 주변의 소문은 모두 무시하고 사고. 반대로 주가가 내재 가치보다 높아져 안전 마진이 사라지면 주위에서 아무리 좋다고 떠들어도 파는 것이다.
“몇 가지 지표를 이용해 저평가된 기업을 쉽게 찾아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세상일은 그렇게 쉽지 않다. 골프를 잘 치려면 순발력, 지구력, 근력, 스윙, 퍼팅 등 모든 것을 다 연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내재 가치보다 저렴한 가격의 주식’을 찾아내려면 내재 가치를 판단할 수 있는 실력을 키워야 한다. 기업의 재무제표를 읽을 수 있어야 하고, 사업보고서를 읽고 사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경쟁사와 경쟁 관계나 기술 변화도 파악해야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혼자서 공부하기 힘들다면 투자 모임을 만들어 함께 공부하는 것도 좋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다른 뛰어난 투자자들은 어떻게 공부했는지 많은 자료를 찾아볼 수 있다. 연습하지 않고 골프를 잘 칠 수 없듯이 투자에도 지름길은 없다.”
2│그레이엄은 방어적 투자자와 공격적 투자자로 나누고 그에 맞는 자산 포트폴리오를 추천한다.
“그레이엄이 말하는 방어적 투자자는 수고나 골칫거리, 빈번한 의사 결정의 부담에서 벗어나길 원하면서 심각한 실수나 손실을 피하고 싶어 하는 투자자다. 반면 공격적 투자자는 기꺼이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 더 높은 수익이 예상되는 종목을 선정하려는 투자자다. 투자 공부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할 수 없는 대부분의 직장인은 방어적 투자자가 되어야 한다. 그레이엄의 제자이자 위대한 투자자인 워런 버핏은 자신이 죽고 나면 자신의 부인에게 돌아갈 유산 중에 10%는 단기 국채에 넣고 나머지 90%는 저비용 S&P500 인덱스펀드에 넣으라고 유서를 작성했다.”
3│3만 파운드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 다리를 건설한다고 할 때, 실제로 지탱할 수 있는 무게는 3만 파운드일지라도 1만 파운드 이하의 트럭만 지나가게 하는 것처럼 투자에서도 안전 마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안전 마진이 충분하면 장래에 상황이 악화되어도 손실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 바이오 회사는 10년 넘게 매년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는데도 시가 총액이 1조원에 달한다. 아마도 이 회사가 개발하고 있는 신약이 성공하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높은 주가가 형성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임상 3상에서도 신약이 성공할 확률은 50%를 조금 넘는 수준이다. 동전 던지기나 다르지 않다. 혹시라도 임상에 실패한다면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보게 될 것이다. 반면 어떤 제약 회사는 매년 2000억원이 넘는 돈을 벌어서 그중에 1000억원이 넘는 돈을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나서도 연간 1000억원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내고 있다. 역시 시가 총액이 1조원 수준이다. 어느 회사를 사는 것이 안전 마진이 더 높을까. 투자는 상식으로 하는 것이다. 기업을 계속 공부해 나가면 그 기업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기업의 가치가 얼마인지 대략 가늠해 볼 수 있다.”
<다음 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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