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여진의 마켓잠망경 <36>] 부자 증세라는 금융투자소득세, 개미 투자자도 울린다
금융투자소득세(이하 금투세)가 내년부터 바로 시행되기까지 한 달여 남짓 남겨두고 유예되는 분위기다. 일단 부랴부랴 급한 불은 껐지만, 2년의 유예 기간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 건지 정부도 국회도 금융기관들도 아직 속 시원히 결론을 못 내고 있다.
금투세란 주식, 채권, 펀드, 파생 상품 등의 금융 투자 상품에서 발생하는 소득에 대해 과세하는 제도로 지난 정부가 2020년 신설했다. 구체적으로 주식의 경우 5000만원, 해외 주식 및 채권, ELS(주가연계증권) 등 기타 금융 상품은 250만원을 초과하는 투자 소득을 올리면 3억원 이하는 22%, 3억원 이상은 27.5% 세율이 적용돼 과세된다. 금투세는 애초 올해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내년에 시행하는 걸로 이미 한 차례 유예됐고 올해 7월에는 2025년으로 한 번 더 연기하는 세제 개편안이 발표됐다. 2020년 당시부터 충분한 합의 없이 법안부터 만들어졌기에 당장 시행을 앞두고서야 여야가 첨예하게 정치 공방을 펼치며 유예를 거듭하고 있는 형국이다.
금투세 유예해도 불확실성 남아
이러한 소모적 논쟁에서 승자는 아무도 없는 것 같다. 조용히 웃음 짓는 이들은 입법자들, 즉 정치인들밖에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인들이 득세하는 수단은 세금과 관련한 법안을 만들어 공포를 조장하고 불가항력을 이용하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해마다 갱신만 거듭하거나 도입을 유예하는 애매모호한 해결 방식으로 정치인들의 힘은 더 강력해지겠지만,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주식 시장에서 주가에 가장 악영향을 끼치는 ‘불확실성’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금투세 시행을 유예하더라도 결국 찬성과 반대 양쪽을 절충하는 수준이다. 2020년은 증시가 활황이어서 금투세를 도입해도 괜찮았지만, 지금은 증시가 불안하니 경제에 부담을 줄 만큼 시장에 혼란을 일으키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만약 금투세 시행을 유예한다고 하더라도 2025년에 금투세가 도입될지 불투명하다. 지금 침체를 겪고 있는 증시가 2년 안에 회복될 거라고 예상하기는 어렵다. 심지어 시장 상황을 이유로 한 번 미루고 나서는 대다수의 투자자가 동의할 만큼 금투세를 도입할 만한 최적의 시기를 찾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에 대해서도 애초 2022년 과세할 예정이었지만 1년 미뤄졌고 이번에는 2025년으로 2년 유예를 추진 중이다. 결국 금투세와 가상자산 과세가 2025년 함께 시행되는 것인데 이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
금투세 피해는 모두가 본다
설령 세금 폭탄을 맞게 될 투자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해도 피해는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다. 금투세 도입을 찬성하는 의견에 따르면 주식 투자자 중에서 금투세 대상자인 5000만원이 넘는 수익을 올린 투자자는 0.8%에 불과하고 금투세 도입으로 1조5000억원의 세금이 더 걷힐 수 있기 때문에 극히 소수의 부자들만 세금이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전체 투자자도 아니고 불로소득을 번 최상위 1%에게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부자 증세라는 정치적 이슈로까지 비화했다.
그러나 금투세 도입으로 한 달 만에 주가가 40% 폭락했던 대만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사회적 합의를 충분히 거치지 않고 투자자들에게 대비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면 결국 피해는 모든 투자자에게 돌아갈 수 있다.
우선 금융 업계부터 피해를 볼 것이다.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등 회원사들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금융투자협회가 2020년 당시 금투세 법안을 제정하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했기 때문에 아무래도 금융 업계가 이익을 보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까지 사고 있다. 그러나 법안 제정은 금융투자협회 출신의 소수 정치인이 위력을 행사한 것일 뿐 이는 금융 업계를 대변한 것이 아니다.
최근 금융 업계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간담회에서도 증권사 관계자들은 금투세에 반대하며 2년 유예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증권사는 여러 부서가 있다 보니 수익을 내는 데도 여러 셈법이 있을 수 있겠으나 결국 증권사가 돈을 벌려면 시장 상황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금투세는 이미 침체를 겪고 있는 증시를 심각하게 위축시킬 수 있다.
사모펀드 시장은 더 심각한 상황이다. 세법 개정안에 사모펀드 투자 수익에 대해 최소 38.5%부터 최고 49.5%까지의 세율이 적용 가능해지는 내용이 포함됐다. 사모펀드 투자자의 수익 절반 가까이를 세금으로 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세금 부담이 지나치게 과중해져서 사실상 사모펀드에 투자할 이유가 없어지는 것인데 업계의 의견 수렴은커녕 이러한 내용이 정작 운용사들에는 전달조차 되지 않았다가 최근에서야 알려지게 돼 업계에 충격을 줬다.
금투세, 더 불공정한 사회 만들 것
금투세처럼 금융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는 제도는 투자 심리 악화에 그치지 않고 예상치 않게 선량한 투자자들까지 피해를 보게 할 수 있다. 비슷한 사례로 사모펀드 시장을 위축시켰던 가장 최근의 사례를 보자.
2020년 금융 당국은 개인 투자자가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최소 가입 금액을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당시 라임 사태, 옵티머스 사태 등 사모펀드를 이용한 범죄가 개인 투자자에게 대규모 피해를 준 것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자 금융 당국이 나서서 개인 투자자가 사모펀드에 투자할 수 있는 진입장벽 자체를 높여버린 규제 조치였다. 그러나 이로 인해 양질의 투자 대상에 투자하는 사모펀드에는 결국 고액 자산가들만 투자할 수 있게 됐다. 이제 돈 많은 사람만 쉽게 돈 벌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필자는 펀드매니저라는 직업 때문에 대학생 후배나 사회 초년생들로부터 좋은 사모펀드가 있는지, 혹시 사모펀드에 가입할 수 있는지 종종 질문을 받는다. 사모펀드에 투자하고 싶으면 최소 3억원부터 펀드에 가입할 수가 있다고 대답하는데 대부분은 사모펀드에 투자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현실에 허탈감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금투세도 단순히 투자 심리를 악화시키는 것에서 문제가 그치지 않는다. 금투세가 시행돼 주식 시장에서 이탈한 자금은 결국 풍선 효과로 다른 투자처를 찾아갈 것이다. 다른 음성적 투자처는 더 위험하고 불안정한 경우가 많다. 주식 시장은 기업의 자금 조달 등 사회적 순기능이 많은 한편 동시에 비교적 그 자정 기능이 오랫동안 검증돼 왔고 감독 체계도 수많은 실패 사례를 통해 꾸준히 개선돼 오며 건전하게 성장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나마 건전한 주식 투자만이 사회적 사다리에 올라탈 수 있는 얼마 안 되는 방법 중 하나다.
사회 초년생처럼 주머니가 가벼운 투자자 입장에서는 부동산값 폭등으로 부동산 투자는 꿈도 못 꾸고, 코인 투자는 변동성이 너무 크고, 사모펀드는 가입조차 어렵고, 이제 높은 리스크를 감수하며 직접 투자해야 하는 주식 시장까지 내몰렸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주식 시장에마저 세금 폭탄을 물린다면 또 한 번 기회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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