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욱의 한국술 탐방 | 전통 공예 디자인 새 옷 입은 증류주 ‘고운달’] 아티스트 컬래버로 술의 품격과 가치 더 높였다
국내 최고의 증류주 ‘고운달’이 ‘아트 컬래버레이션(협업)’으로 재탄생했다. 오미나라 이종기 대표가 만든 프리미엄 오미자 증류주 ‘고운달’의 스페셜 에디션이 최근 출시됐다. 300병 한정판으로 나온 이번 고운달은 전통 공예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아티스트들의 디자인 작업이 돋보여, 소장 가치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고운달은 국가대표 마스터블랜더로 알려진 이종기 오미나라 대표의 역작이다. 우리나라가 원산지인 오미자로 만든 스틸와인을 증류해 숙성한 술로, 52도의 알코올 도수가 무색할 정도로 목 넘김이 부드럽다. 특히 상압 증류기 사용으로 향이 풍부해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명주로 자리 잡았다. 11월 9일 선보인 고운달 스페셜 에디션은 기존 고운달 병 디자인에, 전통 공예를 현대적으로 작품화해온 아티스트들의 디자인 작업들이 더해졌다. 고운달 스페셜 에디션 디자인 작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고운달 유리병 목 부분에 노리개를 달았다. 컨템퍼러리 주얼리(contemporary jewelry⋅현대 보석) 아티스트인 배준민 작가 작품으로, 우주와 달에서 볼 수 있는 수천 개의 점을 노리개에 담았다고 한다. ‘조화로운 우주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는 것이 노리개를 만든 작가의 설명이다. 배 작가는 장신구와 오브제를 통해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미시 세계(microscopic world)를 볼 수 있는 미적 대상을 구체화하는 작품 활동을 꾸준히 전개해왔다.
두 번째는 술 유리병 뒤에 ‘평화와 화합의 상징’이자 자웅동체인 봉황과 기린 문양을 음각으로 새겨넣었다. 이 작업은 타투 아티스트 국재철, 박혜진 작가의 협업으로 이뤄졌다. 민화를 바탕으로 하되, 대상을 단순화하는 현대적인 타투 기법을 활용했다.
세 번째는 오방색에 기반한 술 박스(아트 케이스)다. 조선 시대 선비들이 나들이할 때 썼다는 주안함(술병과 안주를 함께 넣을 수 있는 휴대용 함)에서 모티브를 얻어 모던한 아크릴 소재로 재탄생했다. 정윤아 작가와 아크피아(대표 정광영)의 공동 작품이다. 정윤아 작가는 한국 공예의 고전적 아름다움과 현대적 절제미를 조화시킨 아크릴 작품을 선보여왔다. 아크피아 정광영 대표는 “요즘 시대 상황에 딱 맞는 예술 소재가 아크릴”이라며 “여러 색상을 구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다채로운 조명과 협업도 아크릴을 능가할 소재가 없다”고 말했다.
이번 아크릴 소재 아트케이스의 모델이 된 주안함은 온양민속박물관에 있으며, 은행나무 소재로 만들어진 19세기 작품이다. 술병을 넣을 수 있는 공간과 안주를 넣을 수 있는 서랍이 함께 있는 함이다. 좌우로 달린 고리는 끈으로 연결해, 어깨에 멜 수 있도록 했다. 술과 풍류를 즐기는 조선 시대 조상의 여유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번 고운달 스페셜 에디션(ART 2022)은 우리 문화 콘텐츠 전문 브랜딩 디자인 회사인 ‘가치앤같이’ 전재식 대표가 총괄 기획했다. 전 대표는 2016년 고운달 출시 때부터 브랜딩과 디자인을 총괄했다. 전재식 대표는 “유명 아티스트들의 디자인 협업 작업이 그동안은 해외 명품 브랜드에만 집중됐던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우리나라 브랜드 가운데 최고의 소장 가치가 있는 고운달을 대상으로 아트 컬래버레이션 에디션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고운달 증류주의 원료인 오미자는 다섯 가지 맛(단맛·신맛·쓴맛·짠맛·매운맛)이 난다 해서 이름이 오미자다. 심장을 강하게 하고, 혈압을 내리며 면역력을 높여준다고 해서 예로부터 강장제로 쓰였다. 그뿐 아니라, 폐 기능을 강하게 하고, 진해·거담 작용이 있어서 기침이나 갈증 등을 치료하는 데도 도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섯 가지 맛 중에서도 특히 신맛이 강하기 때문에 오미자는 생과로는 잘 소비되지 않았고, 술 발효 역시 쉽지 않았다. 오미나라 이종기 대표가 오미자 발효에 성공하는 데 거의 5년이 걸렸다. 그래서 만든 술이 세계 최초의 오미자 스파클링와인 오미로제 결, 오미로제 연이다. 고운달은 탄산이 없는 오미자 와인을 증류한 술이다.
그렇다면 고운달은 어떤 술인가. 500mL 한 병 가격이 36만원인 국내 최고가 증류주다. 2016년 첫 출시됐으며, 오미자 와인을 세 번 증류해 완성한다. 고운달 백자, 고운달 오크 두 종류가 있다. 고운달 백자는 증류 후 항아리에서 3년간 숙성을 거친 술이며, 고운달 오크는 오크통 숙성을 거친다. 그러나 국내 주세법상 오크통 숙성을 1년 이내에만 하도록 돼 있어(오크통 숙성을 1년 이상으로 하면 위스키, 브랜디로 분류된다), 고운달 오크는 오크통에서 1년, 항아리에서 추가 2년을 더 숙성한 뒤에 병입한다.
고운달 증류주는 국내 최고의 증류주 전문가 이종기 대표의 작품이다. 그가 만든 위스키 종류를 꼽으라면 손가락 하나로는 모자란다. 윈저, 골든블루, 썸싱스페셜, 패스포트, 블랙스톤 등. 그는 2011년 오미자 와인을 만들기 위해 경북 문경에 양조장을 만들면서 동(구리)증류기를 포르투갈에서 들여왔다. 고운달은 바로 이 포르투갈산 상압 증류기로 내린 술이다. 알코올 도수 52도의 고운달은 경북 문경산 오미자를 착즙해, 오미자 와인을 제조한 뒤 1, 2차 증류를 거쳐 항아리 혹은 오크통에 숙성시킨 증류주다. 특히 유러피언 오크통에 숙성한 고운달 오크는 초콜릿, 오미자, 삼나무 향이 나며 기분 좋은 쌉싸름한 끝맛이 일품이다. 그래서 스모키한 오크 향과 은은한 오미자 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전재식 대표는 “이번 고운달 스페셜 에디션의 핵심은 조화, 어우러짐”이라며 “오미자의 다섯 가지 맛이 고운달 증류주에 고루 섞여 있듯이, 혼탁한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키워드가 조화”라고 말했다.
고운달 스페셜 에디션 작업의 총감독은 최진호 작가가 맡았다. 조각가인 최 감독은 서울시청사 다산홀과 네덜란드 국제사법재판소의 해치 조각상과 전국의 다양한 공공 조형물을 제작한 조각가다. 2011년부터 파주시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최진호 감독은 “세계의 명주들과 경쟁할 우리 술에,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디자인이라는 옷을 입혀 술의 가치와 품격을 더 높여나가겠다”고 말했다. 전통주인 고운달의 새 디자인 작업을 필두로 전통주와 현대 아티스트들의 협업 작업이 앞으로 더욱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조, 수수 같은 잡곡으로 빚는 증류주 ‘문배술’도 최근 장욱진 화백 작품을 병 라벨에 사용한 바 있다. 문배술은 남북정상회담 때마다 만찬주로 선정돼 ‘남북 화합의 술’이란 별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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