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황금기 이끈 로버트 밥 아이거 CEO로 복귀] ‘위기의 디즈니’ 구원투수로 다시 등판…OTT 행보 주목

이선목 기자 2022. 11. 28.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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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밥 아이거디즈니 CEO. 사진 AP연합

디즈니 황금기를 이끌었던 전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 로버트 밥 아이거(71)가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밥 체이펙에게 CEO 자리를 넘긴 지 불과 2년 9개월 만이다.

월트디즈니컴퍼니는 11월 20일(이하 현지시각) 낸 성명에서 “로버트 밥 아이거 전 CEO가 디즈니를 이끌기 위해 즉시 효력을 발휘하는 CEO로 복귀한다”고 밝혔다. 아이거 CEO는 2년 계약 기간 회사를 이끌며 후임 물색에도 나설 예정이다. 체이펙 CEO는 성명 발표 직후 곧바로 해임됐다.

아이거 CEO는 2020년 2월 체이펙에게 CEO 자리를 넘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후 2021년 12월에는 이사회 의장직도 내려놨다. 즉, 이사회 사임 기준으로는 11개월 만의 복귀다. 수전 아널드 디즈니 이사회 의장은 “디즈니는 점점 복잡해지는 산업 변화 시대에 부딪혔다”며 “이런 전환 시점에 아이거는 회사를 이끌 적임자”라고 설명했다. 아이거는 2005~2020년 CEO를 맡으며 디즈니 황금기를 일군 경영자로 평가받는다.

디즈니를 IP 제국으로 키워내

그는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노동자 동네에서 태어나 자랐다. 끼니를 굶거나 헐벗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경제적으로 풍족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학교 성적도 뛰어나지 않았던 아이거 CEO는 뉴욕주 이타카에 있는 이타카대 커뮤니케이션학과를 졸업하고 지역 방송사에서 기상 캐스터로 일했다. 1974년 미국 3대 지상파 방송국인 ABC로 옮긴 그는 드라마 제작부의 최말단 스태프부터 시작해 성실함과 신선한 아이디어로 경력을 쌓았다. 이후 승진을 거듭해 41세에 ABC방송 사장이 된 아이거는 1995년 디즈니가 ABC를 인수한 뒤 디즈니인터내셔널 사장, 디즈니 최고운영책임자(COO)를 거쳐 2005년 마이클 아이스너로부터 CEO 바통을 이어받았다.

아이거는 CEO 임용 때부터 ‘고품격 브랜드 콘텐츠 창출’ ‘기술(technology) 투자’ ‘글로벌 성장’ 등 세 개 핵심 전략을 내세웠다. 특히 그는 굵직한 인수를 잇달아 성사시키며 디즈니를 지식재산권(IP) 제국으로 키워냈다. 2006년 ‘토이 스토리’ 등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한 픽사 인수를 시작으로 2009년 만화 출판사이자 영화 제작사 마블, 2012년 스타워즈 제작사 루카스필름, 2019년 21세기폭스 엔터테인먼트 부문을 인수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디즈니 플러스(+)도 그가 만들었다. 아이거 재임 기간 디즈니 주가는 다섯 배가량 상승했고, 연간 순이익도 네 배 넘게 늘었다.

아이거 CEO의 복귀 배경에는 디즈니의 위기가 있다. 지난 3분기 디즈니는 스트리밍 사업부에서 14억7000만달러(약 2조원)의 손실을 봤다. 이에 아이거 CEO는 대대적인 사업 구조조정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는 취임 직후 체이펙 전 CEO의 오른팔이었던 카림 다니엘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사업 책임자를 해고했다. 아이거 CEO는 “우리 목표는 앞으로 몇 달 내 새로운 사업 구조를 갖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월트디즈니의 OTT 디즈니+. 사진 디즈니

연결 포인트 1
벼랑 끝 ‘콘텐츠 공룡’ 디즈니
실적 부진에 해고 칼바람 예고까지

아이거 CEO를 다시 부른 디즈니는 비상 상황이다. OTT 수익성 악화에 따른 실적 부진으로 주가가 곤두박질친 가운데 인원 감축까지 예고된 상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월 12일 체이펙 전 CEO가 최근 전사적 비용 절감에 나설 것이란 내용의 공지를 임원들에게 보냈다고 보도했다. 여기에는 정리 해고와 관련한 내용이 포함됐다. 체이펙 전 CEO는 “비용 절감을 위해 모든 운영과 노동력을 검토할 것이며, 일부 직원 감소가 예상된다”고 했다. 또 “중요 직책을 제외한 모든 업무 부서에서 신규 채용을 중단하고 필수 업무와 연관되지 않은 출장도 제한하겠다”며 “직원들과 팀에 어려운 과정이 되겠지만, 힘들고 불편한 결정을 할 것”이라고 했다. 디즈니 직원은 2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조치는 디즈니의 3분기 실적이 공개된 지 이틀 만에 나왔다. 올해 3분기 디즈니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9% 증가한 201억5000만달러(약 27조5600억원)로, 시장 예상치(212억4000만달러)를 밑돌았다. 순이익은 1억6200만달러(약 2200억원)로, 지난해 수준(1억5900만달러)을 겨우 넘겼으며, 주당 순이익(EPS)도 0.3달러로 예상치(0.5달러)를 밑돌았다.

OTT 서비스 디즈니+ 스트리밍 사업부 순손실이 전년 동기 대비 두 배 규모인 14억7000만달러(약 2조원)까지 늘어난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다. 이런 여파로 올해 들어 주가가 40% 넘게 하락했다.

아이거 CEO는 실적 부진의 주요인인 디즈니+ 출범을 이끈 장본인으로, 그의 추후 행보에 관심이 집중된다. 아이거의 복귀 소식이 알려진 다음 날인 11월 21일 디즈니 주가는 6.3% 급등했다. 이는 2020년 12월 이후 디즈니 주가의 가장 큰 하루 상승 폭이다.

밥 체이펙 디즈니 전 CEO. 사진 AP연합

연결 포인트 2
디즈니 CEO 교체 막전 막후
‘경영진 반란’ 있었다…
아이거도 체이펙 경영 방식 불만

체이펙 전 CEO의 갑작스러운 해임과 아이거 CEO의 재등판에는 다른 경영진과 투자자들의 불만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체이펙 CEO는 올해 초만 해도 이사회에서 코로나19 상황에도 회사를 잘 이끌어온 공로를 인정받고 지난 6월 이사회 만장일치로 임기 3년 연장이 결정됐다. 불과 5개월 만에 전격적으로 해임이 이뤄진 것이다.

WSJ은 11월 22일 소식통을 인용해 디즈니 경영진과 투자자들이 몇 달 전부터 아이거 CEO에게 체이펙 전 CEO의 경영 방식에 관한 불만을 토로했고, 이런 의견이 이사회에 전달됐다고 보도했다. 체이펙 체제 아래 디즈니는 두 곳의 유명 행동주의 투자자로부터 비용 절감과 전략 변경 압박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또 3분기 실적 발표 당시 체이펙은 낙관적인 전망을 밝혔지만, 투자자들을 안심시키지 못했고 다음 날 주가는 13% 급락했다.

결국 크리스틴 매카시 디즈니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체이펙이 투자자들과 소통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이사회에 보고했고, 이사회는 아이거와 전화 통화로 복귀 의사를 확인한 후 곧바로 CEO 교체를 발표했다고 한다.

아이거 CEO 역시 체이펙 전 CEO의 정책에 불만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장 12월부터 ‘광고 없는’ 디즈니+ 요금을 10.99달러(기존 7.99달러)로 올리기로 한 결정은 수익성보다 구독자 수에 중점을 뒀던 아이거와 맞지 않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이거 CEO는 요금이 싸야 타사 콘텐츠에 비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봤다.

이 밖에 플로리다주의 ‘게이 발설 금지(Don’t Say Gay)’ 법안에 대한 입장 차 등도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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