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빅테크 기업들 플랫폼 노동자 CPF 분담금 내기로
노동자 노후보장 기대에 불이익 우려도
싱가포르에서 그랩, 고젝 등 기술 대기업이 플랫폼 노동자의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조치를 2024년부터 시행하기로 정부와 합의했다.
싱가포르 언론 스트레이츠타임스(ST)에 따르면 그랩, 고젝 등 싱가포르에서 영업하는 빅테크 기업들은 최근 정부 자문기구인 ‘플랫폼 노동자 보호를 위한 자문위원회’의 12개 항으로 이뤄진 권고안을 따르기로 했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2024년부터 자사 플랫폼을 이용하는 택시·배달 기사 등의 중앙연금기금(CPF) 고용주 분담금을 내기로 했다. CPF는 한국의 국민연금과 유사한 싱가포르 특유의 사회보장제도다. 기업과 노동자가 분담해 기금을 적립함으로써 노동자들의 노후 및 주택자금, 의료비 등을 지원하는 제도다. 55세 이하면 본인은 월급 중 20%를, 고용주는 월급의 17%를 CPF에 납입한다. 싱가포르 시민권이나 영주권을 가진 사람들은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그간 플랫폼 노동자는 자영업자로 분류돼 플랫폼 기업들은 소속 노동자들의 CPF 분담금을 내지 않았다. 이로 인해 플랫폼 노동자의 노후는 극도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문제가 돼 왔다.
또 기업들은 플랫폼 노동자가 입은 산업재해도 보상해야 한다. 권고안에는 기업들이 산재를 입은 플랫폼 노동자에게 산재보험에 준하는 보상을 해야 한다는 내용과 기존 산재보험의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이 모두 담겼다.플랫폼 노동자는 ‘피고용인’으로 분류돼서는 안 되지만 ‘피고용인에 준하는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권고안의 핵심 내용이다. 다만 인플레이션 등 경제 상황을 감안해 권고안은 2024년도 하반기부터 단계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7만3000명의 플랫폼 노동자들이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배달·택시 기사 등 플랫폼 노동자들은 노후 불안이 다소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와 함께 당장 손에 쥐는 수입이 감소할 것이라는 불안감도 느끼고 있다. 플랫폼 기업의 부담이 높아지면서 서비스 요금의 상승과 이용률 감소, 플랫폼 노동자들의 수입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ST는 시민 2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명 중 4명꼴로 “플랫폼 노동자의 지위가 향상된다면 요금을 더 낼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플랫폼 노동자가 플랫폼 기업을 상대로 교섭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점도 불안을 키우고 있다. 그랩에 등록된 택시 기사 찰스 밴(51)은 “플랫폼이 CPF 분담을 요구하는 기사를 차별해 차량 배정을 줄일 수 있다”는 우려를 ST에 전했다.
유럽연합(EU)은 지난해 12월 입법지침은 경쟁당국이 플랫폼 노동자를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로 분류하도록 했다. 또 이들의 집단 행위를 담합으로 보지 않기로 했다. 플랫폼 노동자들이 혹여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단체협약을 통해 권리를 주장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놓은 것이다. 반면 싱가포르 위원회의 권고안에는 플랫폼 노동자의 집단행동을 보장하는 규정은 상세하게 마련돼 있지 않다. 다만 노사정 위원회를 통해 플랫폼 노동자를 위한 새로운 기구를 마련하고, 이 기구에서 플랫폼 노동자 대표를 선출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동남아시아 플랫폼 기업들은 권고안을 수용하겠다면서도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우버 등 미국계 플랫폼 기업도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랩 대변인은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우버 등을 제외하면 불공정 경쟁이 벌어지고 시장 왜곡 효과가 나타난다”며 “우버도 규제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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