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르 전통시장 흔든 사물놀이…‘고희’ 권태균 아리랑응원단장 “80살까지 달릴래”

황민국 기자 입력 2022. 11. 28. 17:39 수정 2022. 11. 28.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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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균 아리랑응원단장(오른쪽)이 지난 27일 카타르 도하의 미세립지구에서 동행한 단원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다. 도하 | 황민국 기자



수염에 흰 눈이 내린 고령의 한 남성은 지난 27일 각국 사람으로 물결이 흐르는 카타르 도하의 전통시장 수크 와키프의 밤거리를 보며 웃었다.

권태균 아리랑응원단장(71)이 바로 그 주인공이었다. 그는 한국과 가나의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H조 2차전을 앞두고 동행한 단원들과 함께 한국의 힘을 알리는 전야제에 나선 참이었다. 권 단장은 “꽹과리만 치면 우리 분위기로 넘어온다”고 말했다. 월드컵이 열릴 때면 온 세상을 한국의 사물놀이로 물들였던 경험담이 담겨 있었다.

권 단장의 호언장담이 현실로 바뀌는 것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북채를 잡은 그를 시작으로 꽹과리와 징 소리가 따라붙자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권 단장의 아내 이연희씨(70)가 신명나는 춤을 추니 벨기에를 무너뜨린 것에 환호하던 모로코인들이 합류했다. 아리랑응원단의 이색적인 사물놀이를 촬영하던 카타르방송 ‘타스워 미디어’의 압델라티프 아슈라프 기자는 “이렇게 신나는 응원은 처음 본다”고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아리랑응원단이 지난 27일 카타르 도하 전통시장인 수크 와키프에서 외국인들과 함께 어우러지고 있다. 도하 | 황민국 기자



전통시장을 뒤흔드는 아리랑응원단의 꽹과리 소리는 곳곳에 흩어졌던 한국인들도 한 자리에 모았다. 카타르항공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민주씨(30)와 김한아씨(28)는 “먼 거리에서도 이 소리는 들리더라”며 “카타르 전통시장에서 우리 장단에 춤을 추는 경험은 상상도 못했다. 월드컵이 세계인의 축제라는 게 실감난다”고 말했다.

아리랑응원단의 거침없는 질주는 카타르 도하가 아닌 미국 뉴욕의 길거리를 떠올리게 만드는 미세립지구에서 도착해서야 멈췄다. 그 사이 자신들을 반기는 지하상가에서 판을 벌인 뒤 음료 대접까지 받은 것은 덤이었다. 가장 젊은 나이가 60대 초반인 이들에게는 힘겨울 만한 일정이었다. 하루 뒤에는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태극전사의 승리도 응원해야 한다. 아리랑응원단은 이번 대회에서 남성은 도포, 여성은 한복 차림으로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남편인 정준영(65)씨와 함께 원정 응원에 나선 정기숙씨(61)는 “오늘처럼 내달리면 목도 잠기고 몸이 파김치가 되니 나이는 못 속인다”면서도 “오늘의 즐거움이 내일의 힘이 된다. 남편은 아예 TV에서 자신을 찾아내는 사람에게는 경품도 걸었단다”고 웃었다.

궈태균 아리랑응원단장이 지난 20일 경기 과천에 자신이 운영하는 갤러리에서 새롭게 제작한 카타르월드컵 응원복을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세훈 기자



그야말로 노익장을 자랑하는 아리랑응원단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첫 출발을 알렸다. 권 단장이 가수 김흥국 등과 활동한 것이 시작이었는데, 국내에서 열린 2002년 한·일 월드컵부터 조금씩 숫자가 늘더니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브라질, 러시아를 거치면서 지금의 형태로 굳어졌다. 아리랑응원단의 철칙은 자비 응원. 외부에서 금전적인 지원을 받는 게 아니라 각자 4년간 모아놓은 돈으로 태극전사들을 따라다닌다. 권 단장은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여도 한 사람에 1200만원”이라며 “난 단장이라 따로 1500만 정도를 추가로 지출했으니 아내까지 합친다면 4000만원은 썼을 것”이라고 웃었다. 물론, 이 금액은 한국이 원정 16강 진출에 성공한다면 계속 늘어난다.

남들은 ‘그 나이에 왜 그런 돈을 쓰냐’며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리랑응원단은 자신들이 평소 좋아하는 축구와 여행을 동시에 즐기면서 한국 문화까지 알리니 아까울 게 없다고 했다. “주변 사람들을 보세요. 옛날에는 일본 사람이냐고 물었습니다. 이젠 당연히 한국 사람이라는 걸 알고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멋있어요’라고 외칩니다. 이 맛에 돌아다니는 거죠.”

흐르는 세월을 막을 수 없는 터라 지금과 같은 열정을 유지할 수 없을지만 걱정이다. 권 단장은 이미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토고와 첫 경기를 앞두고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전력도 있다. 그래도 권 단장은 아내인 이씨와 함께 80살까지 지금처럼 태극전사들을 따라다니겠다는 각오다. 이씨는 “2002년 남편과 처음 같이 시작했을 땐 이렇게 빠질 줄은 몰랐어요. 한 번 시작하니 이젠 책임감도 생기네요. 앞으로 두 대회는 더 따라다니고 싶어요. 그게 우리 부부의 남은 목표”라고 말했다.



도하 | 황민국 기자 stylelom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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