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베이징 도심서도 가두행진, 들불처럼 번진 백지시위…‘시진핑 집권 이후 최대 위기’ 분석도

이종섭 기자 2022. 11. 28.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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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도 베이징 도심의 량마허 주변에서 지난 27일 시민들이 신장 우루무치 화재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코로나19 봉쇄 조치에 반대하는 ‘백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에서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우루무치(烏魯木齊) 화재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당국의 검열과 코로나19 통제 조치에 항의하는 ‘백지 시위’가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상하이에 이어 수도 베이징 도심에서도 수백명의 시민들이 모여 집단 시위를 벌였고 홍콩과 대만 등 각지에서도 연대 시위가 펼쳐졌다. 봉쇄 위주의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장기간 억눌렸던 민심이 폭발하는 형국이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집권 3기를 시작한 지 한 달 여만에 최대 위기를 맞은 중국 공산당과 정부가 어떤 대응책을 내놓을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베이징 한복판서 이례적 가두시위…반정부 구호 등장

지난 27일 저녁 베이징 차오양(朝陽)구 량마허(亮馬河) 주변에 촛불과 백지를 든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평화로운 노래를 부르며 신장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들을 추모한 시민들은 이내 정부의 ‘제로(0) 코로나’ 정책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트위터 등에 올라온 영상에는 현장에 있던 시민들이 백지를 손에 들고 “봉쇄 대신 자유를 원한다”는 구호를 외치는 장면이 나온다. 시간이 지나자 시위대 규모가 점점 불어났다. 현장에 있던 CNN 기자는 처음에 소규모 군중이 량마허를 따라 모여들었으나 규모가 커지자 시민들이 베이징 3환도로(제3순환도로)를 행진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날 시위에 참여한 시민은 최소 수백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베이징 도심에서 이런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는 것은 이례적이다. 량마허는 시내 중심부의 톈안먼(天安門) 광장에서 6∼7㎞ 떨어진 도심 하천으로 주변에 각국 대사관과 호텔, 상업시설 등이 밀집해 있다.

시위 규모가 커지자 경찰 병력도 계속 늘어났다. 시민들은 경찰과 대치하며 ‘문화혁명 말고 개혁이 필요하다’, ‘영수 말고 선거권이 필요하다’, ‘노비 말고 공민이 돼야 한다’, ‘언론과 출판의 자유가 필요하다’는 구호를 외쳤다. 지난달 공산당 제20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앞두고 베이징 도심에 기습적으로 내걸린 현수막 속 반정부 구호가 다시 터져나온 것이다. 시민들은 또 전날 상하이에서 시위 도중 연행된 이들의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가다 28일 새벽이 돼서야 해산했다.

상하이에서도 이틀째 시위가 이어졌다. 지난 26일 밤 상하이 우루무치중로에서 신장 우루무치 화재 참사에 항의하며 ‘공산당은 물러나라’, ‘시진핑은 물러나라’라는 구호를 외치다 새벽에 강제해산된 시민들은 같은 날 오후 ‘구금자 석방’ 등을 요구하며 인근 지역에서 밤늦게까지 산발적 시위를 이어갔다. 경찰은 이날도 시위대를 해산시키면서 일부를 연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같은 날 쓰촨(四川)성 청두(成都)에서도 우루무치 참사 희생자들을 애도하기 위해 모인 시민들이 ‘독재에 반대한다’, ‘우리는 황제를 원하지 않는다’는 구호를 외쳤고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에서도 비슷한 시위가 벌어지는 등 지난 주말 사이에만 적어도 중국 내 7~8개 지역에서 시위가 발생한 것으로 추산된다. 베이징대와 칭화대 등 50여개 대학에서도 학내 시위가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지난 27일 시민들이 신장 우루무치 참사 희생자를 추모하고 코로나19 봉쇄 조치에 항의하는 ‘백지 시위’를 하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우루무치 참사로 누적된 불만 폭발, 당국 대응이 향후 시위 양상 가를 듯

중국 내 이례적인 대규모 시위는 지난 24일 신장 우루무치에서 발생한 화재 참사로 촉발됐다. 우루무치의 아파트 화재로 10명이 숨지고 9명이 부상을 당했는데 당시 봉쇄를 위해 가져다 놓은 시설물들 때문에 화재 진압이 늦어져 피해가 커졌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다음날 우루무치 주민들이 정부청사 앞에 모여 봉쇄 해제를 요구하며 가두 행진을 벌인 것이 이번 시위의 도화선이 됐다. 시위 확산의 근본적인 배경은 장기화된 제로 코로나19 정책으로 누적된 시민들의 불만이다. 중국에서는 코로나19 때문이 아니라 봉쇄 때문에 사람들이 죽어나간다는 불만이 쌓여왔다. 최근 전 세계가 들뜬 분위기 속에 카타르 월드컵이 진행되고 있는 것도 민심을 자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인들은 월드컵을 보며 “누구는 마스크도 안 쓰고 경기를 관람하는 데 우리는 한두 달씩 집 밖에 나가지도 못한다”며 “같은 행성에 사느 게 맞느냐”고 하소연하고 있다.

문제는 시위가 어떤 양상으로 번져나가느냐다. 이번 시위의 상징물로 떠오른 백지는 당국의 검열에 항의하는 의미를 담고 있는 동시에 반체제적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 경우 가해질 수 있는 처벌을 피하는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백지 시위는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반대 시위 때도 동원됐다. 중국 본토에서 시작된 백지 시위는 홍콩과 대만 등 중화권을 넘어 미국과 영국과 캐다나, 프랑스 등 세계 각 지역에서의 연대 시위로 확장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시위가 1989년 톈안먼 민주화 시위 이후 중국 정부에 가장 큰 위협이자 도전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조직화된 시위가 아니기 때문에 정부에 위협이 될 만큼 강력한 힘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란 반론도 있다.

결국 시위 양상은 향후 정부의 대응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지방 정부들은 주말 시위를 전후해 일단 성난 민심 달래기에 나선 모습이다. 시위 발원지인 우루무치시는 이날부터 중단됐던 대중교통 운행과 상점 운영, 생산 활동 등을 점진적으로 재개하며 봉쇄를 완화하겠다고 약속했다. 베이징시는 감염 의심자 발생으로 인한 임시 봉쇄 기준을 엄격히 준수하고 소방통로와 아파트 입구 등을 단단한 재질의 울타리로 막는 것을 엄금한다는 지침을 내놨다. 정부가 이렇게 점진적으로라도 주민들의 요구를 수용해 방역 완화 수순을 밟아간다면 격앙된 민심은 어느 정도 가라앉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제로 코로나 정책 포기를 선언하지 않는 이상 감염자가 계속 늘고 있는 상황에서는 방역 정책을 완화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이 경우 시위가 계속 확산되고 정부가 강경한 대응책을 선택한다면 2019년 홍콩 반정부 시위 때와 같은 공안정국이 조성될 수 있다는 예상도 나온다. 영국 가디언은 “시진핑 주석은 이번 시위를 코로나 정책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와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오래 반대 의견을 묵인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홍콩에서 사용한 무자비한 방법이 본토에서도 동원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중국 정부는 이날 자국 내 시위 확산 사실 자체를 부정했다. 자오리젠(趙立堅)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시위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제로 코로나 정책 종료를 고려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당신이 거론한 관련 상황은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동태적 제로 코로나 방침을 일관되게 견지하며 현실에 맞춰 계속 방역 정책을 조정하고 있다”며 “중국 공산당의 영도가 있고 전체 인민의 협력과 지지가 있기에 중국은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반드시 성공할 것으로 믿는다”고 밝혔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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