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임위 17곳 '일하는 국회법' 어겨···與野 중점법안 통과도 '0'

주재현 기자 2022. 11. 28.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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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안 심사 내팽개친 국회]
핵심 상임위일수록 개최 실적 뚝
행안위는 정기국회 기간 4회 그쳐
82%가 한달치 의무소집도 못채워
여야 남탓만 말고 협치 물꼬터야
[서울경제]
24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첫 회의 개회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법안 논의가 부진한 것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협치 없이 여야 대립만 심화된 탓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입법이 필요한 국정과제의 경우 야당의 협조 없이 본회의 문턱을 넘을 수 없는 구조임에도 정부와 여당 모두 사안마다 야당과 날만 세웠다는 지적이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다수 의석을 활용해 예산안을 일방 처리하는 등 독주를 이어가고 있다.

28일 서울경제가 정기국회 기간(9월 1일~12월 9일)에 개의했거나 개의할 예정인 상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전수 조사한 결과 17개 상임위 중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를 제외한 15곳이 법안심사소위를 6회 미만 개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기국회가 석 달 이상(100일) 이어지고 각 상임위별로 통상 법안심사소위가 2개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임위의 절대다수가 법안 논의를 위한 소위를 월 1회도 소집하지 않은 셈이다.

법안심사소위 개회 건수는 여야 갈등의 핵심에 있는 상임위일수록 전년 대비 크게 줄었다.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부터 ‘경찰국’ 설치 문제가 불거진 행정안전위원회의 법안심사소위 개최 실적은 4회로 2021년에 비해 6회 감소했다. 소위원장 배분을 놓고 여야가 장기 대치한 기획재정위원회 역시 법안심사소위를 전년 대비 6회 적게 소집했다. 그나마 세법 심사 처리 기한(12월 2일)을 코앞에 둔 조세소위원회는 21일부터 벼락치기 심사에 돌입했지만 국가재정법·국채법 등을 소관 법률로 하는 경제재정소위원회는 단 한 차례도 열지 못했다.

법안 논의가 부진한 것은 정기국회만의 일이 아니다. 2022년 1~8월 중 17개 상임위 가운데 14곳의 법안심사소위 개회 실적은 4회 이하였다. 여야가 민생을 위해 쉬지 않고 일하겠다며 통과시킨 ‘일하는국회법’에 따르면 모든 상임위는 법안심사소위를 2개 이상 설치해 매월 2회 이상 소집해야 하지만 상임위의 82%가 8개월 동안 한 달치 의무 소집 횟수도 채우지 못한 셈이다. 이 기간 월평균 법안심사소위 개회 횟수가 1회 이상인 곳은 법제사법위원회(1.625회)뿐이었다.

여야가 법안심사소위를 제대로 열지 못한 것은 연초 대선·지방선거 등 대규모 정치 이벤트를 치른 직후 원 구성 협상에 난항을 겪으면서 두 달 가까운 시간을 허비했기 때문이다. 여야는 전반기 국회가 끝난 지 54일 만인 7월 22일에야 후반기 원 구성에 합의했다. 이후 기재위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경우 소위원장 분배를 두고 여야 간 신경전이 이어지면서 정기국회가 개시 때까지 제대로 된 법안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이에 대해 여야는 모두 ‘남 탓’으로 일관하고 있다. 과방위 소속의 한 민주당 의원은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과학기술원자력법안심사소위원회의 경우 아직 한 차례도 열지 못했다”며 “국민의힘이 법안 논의를 회피해왔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기재위 소속의 한 국민의힘 의원은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야당의 몽니에 일을 못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토로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4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조사 계획서 승인의 건 의결에 앞서 제안설명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여야가 정기국회 내 통과를 약속한 민생 법안들 역시 대부분 제대로 된 논의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정기국회 개시 전 각각 ‘10대 법안’과 ‘7대 민생 입법 과제’를 발표했지만 이 중 본회의 문턱을 넘은 법안은 한 건도 없다. 상임위 논의 절차가 마무리된 법안으로 따져봐도 납품단가연동제와 양곡관리법 등 4개에 불과하다.

전문가들은 여소야대의 구도에서 입법부가 효과적으로 일하려면 정부와 여당이 먼저 협치의 손길을 내미는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박창환 장안대 교수는 “싸울 법안은 싸우더라도 미래 먹거리나 민생 관련 법안은 논의해야 할 텐데 대화와 타협의 분위기가 전혀 없다”며 “야당 대표의 사법 논란과 별개로 윤석열 대통령이 협치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 역시 “여야 간 대치 정국을 마무리하고 내년에는 의회의 시간을 회복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와 대통령이 야당과 손을 잡고 협치의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주재현 기자 joojh@sedaily.com박예나 기자 yen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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