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게만 들렸던 '황제', 시련 속 희망곡이었죠"

박대의 기자(pashapark@mk.co.kr) 2022. 11. 28.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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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실황 음반 발표한 임윤찬
베토벤 협주곡 새롭게 해석
음악 기부 의지도 피력해
28일 서울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첫 실황 음반을 발표하는 피아니스트 임윤찬. <한주형 기자>

지난 6월 역사상 최연소로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하고도 '콩쿠르 우승으로 인한 관심은 3개월짜리'라고 스스로를 낮췄던 피아니스트 임윤찬(18·사진). 그가 말한 시기보다 곱절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그를 향한 관심은 뜨겁다. 세상이 그를 주목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피아노 연주 실력과 더불어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흘러넘치는 그의 깊은 생각이었다.

28일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자신의 첫 실황 음반 '베토벤·윤이상·바버' 발매를 알리는 자리에서도 임윤찬은 예상치 못한 언사로 청중의 허를 찔렀다.

"사실 베토벤 협주곡 중에서 5번 '황제'는 이상하게 애정이 안 생기는 곡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많은 연주를 들었지만, 그땐 그저 화려한 곡으로만 느껴졌거든요."

음반의 시작을 알리는 곡에 애정이 없었다는 그의 발언에 객석에서 놀란 반응이 나오던 찰나, 그는 마저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최근 인류에 큰 시련이 닥치고 저도 매일 방에서 연습만 하다 보니 이 곡을 다시 들었을 때 베토벤이 꿈꾸는 유토피아나 우주를 그린 것 같은 느낌을 받았죠. 곡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게 됐어요."

임윤찬의 베토벤은 어떤 느낌일까. 이번 음반을 함께 녹음한 홍석원 광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는 "작년 광주시향 송년음악회에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연주했을 때는 소위 10대 청년의 질풍노도와 같은 힘이 느껴졌다"며 "이번 '황제'도 그런 에너제틱함을 생각했는데 전혀 다른 색채를 보여주는 것을 보고 색다른 베토벤이 탄생했다고 느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음반에는 지난달 8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린 공연의 연주를 그대로 담았다. '황제' 외에도 광주시향이 연주한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 임윤찬이 앙코르로 연주한 페데리코 몸포우의 '정원의 소녀들', 알렉산드르 스크랴빈 '2개의 시곡' 중 1번, '음악 수첩' 등이 수록됐다.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임윤찬은 자신의 능력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에 쓰는 것이 대단한 삶이라고 강조했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이나 모차르트의 소나타와 협주곡 전곡을 연주하는 것은 대단한 업적이라기보다는 피아니스트라면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연주자로서 대단한 업적이라는 것이 콩쿠르에 나가서 운 좋게 1등 하는 그런 것보다, 보육원이나 호스피스 병동에 찾아가서 아무 조건 없이 연주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연주회를 찾아오지 못하는 분들이 여태 모르고 살았던 또 다른 우주를 제가 열어드리는 과정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유학 경험 없이 오직 국내에서 교육을 받고 성장한 임윤찬은 콩쿠르 우승 이후 재학 중인 한국예술종합학교를 휴학하고 연주 활동에 전념해왔다. 그러나 최근 스승인 손민수 한예종 교수가 내년 미국 뉴잉글랜드음악원 교수로 부임하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임윤찬의 유학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렸다. 이에 대한 질문을 받자 정작 본인은 주변 시선에 신경 쓰기보다 주어진 나날들을 충실히 살아가겠다며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사실 저는 내일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요. 많이 다쳐서 피아노를 치지 못하게 될 수도 있겠죠. 그래서 제가 내년에 어디에 간다고 섣불리 이야기해버리면 약속을 못 지키는 일이 생길 수도 있잖아요.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임윤찬은 음반 발매에 이어 다음달 6일부터 통영, 대전, 서울에서 밴 클라이번 우승 기념 독주회로 팬들과 만난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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