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앨범 발매 임윤찬 "베토벤이 꿈꿨던 우주, 관객과 나누고파"

"소외된 이들과 음악 나눌 것…음악가로서 할 수 있는 대단한 일"
광주시향과 협연한 베토벤 '황제', 실황 앨범으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2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베토벤, 윤이상, 바버'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2.11.28/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서울=뉴스1) 조재현 기자 =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은 베토벤의 '황제'를 듣다 보니 부족한 내 귀에는 화려하게만 들렸어요. 하지만 최근 인류에게 큰 시련이 닥쳐 매일 나가지도 못하고 방 안에서만 연습하며 '황제'를 다시 들으니 이 곡에 대한 인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베토벤이 꿈꿨던 유토피아, 베토벤이 바라본 우주 같은 느낌을 받아 나누고 싶었죠."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은 지난 6월 미국 반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최연소로 우승한 후 처음 발매하는 앨범 수록곡으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를 택한 이유에 대해 이같이 밝혔다.

임윤찬은 28일 유니버설뮤직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그라모폰(DG)을 통해 앨범 '베토벤, 윤이상, 바버'를 발매했다. 이번 앨범은 지난달 8일 홍석원 상임지휘자가 이끄는 광주시립교향악단의 경남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실황을 담은 것이다.

임윤찬이 협연한 베토벤 협주곡 5번 '황제'를 비롯해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 바버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수록됐다. 임윤찬이 앙코르로 연주한 몸포우 '정원의 소녀들', 스크랴빈의 '2개의 시곡' 중 1번, '음악 수첩' 등 3곡도 포함됐다.

이날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앨범 발매 간담회를 연 임윤찬은 음반에 수록된 몸포우의 '정원의 소녀들'을 들려준 뒤 마이크를 잡았다.

이번 앨범 작업은 지난해 광주시향 송년음악회에서 임윤찬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을 함께 연주한 홍 상임지휘자의 요청으로 이뤄졌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2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베토벤, 윤이상, 바버'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홍석원 광주시립교향악단 지휘자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2.11.28/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홍 상임지휘자는 "임윤찬군과 협연을 한 뒤 무조건 함께 앨범을 녹음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 요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해 힘이 넘쳤던 라흐마니노프 연주와 달리 이번에는 눈물이 날 정도로 애절한 연주를 선보였다"며 "공연 때마다 연주 스타일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모두 설득력이 있어 '천재'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극찬했다.

임윤찬은 "지난해 광주시향 단원들의 엄청난 스피릿(spirit)과 에너지에 큰 영향을 받아 앨범 작업 요청을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다"며 "라흐마니노프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가장 좋아했던 것처럼, 이제는 광주시향이 내 마음 깊숙하게 자리 잡았다"고 화답했다.

이어 "스튜디오 녹음은 자칫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수많은 가능성을 잃을 수 있고, 누가 치는지 모를 정도로 무난한 연주가 나올 수 있다"며 경계한 뒤 "공연장에서 관객과 함께 나눈 시간을 그대로 담은 앨범이 나온 게 굉장히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임윤찬은 앨범에 수록된 앙코르 3곡에 대해서도 "음악을 모르시는 분들 혹은 일부 어린 음악가들이 모를 수 있다는 생각에 몸포우를 골랐다"며 "스크랴빈도 이름은 많이 알려진 작곡가지만 안 알려진 다양한 곡들이 많다"고 소개했다.

솔로 앨범을 낸다면 수록하고 싶은 곡에 대해선 "너무 많아서 이 자리에서 다 말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며 웃은 뒤 "쇼스타코비치 '프렐류드'의 전곡처럼 어떤 작곡가의 뿌리가 되는 곡을 연주하고 싶고, 시대에 유행하는 레퍼토리는 피하고 싶다"고 했다.

이번 앨범은 윤이상이 5·18 광주 민주화운동 희생자를 위해 작곡한 '광주여 영원히'를 광주시향이 공식적으로 녹음한 최초의 음반이기도 하다.

홍 상임지휘자는 "지난해 취임 후 광주시향이 연주한 '광주여 영원히'가 공식적으로 남아있는 게 없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광주시향보다 이 곡을 잘할 수 있는 악단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28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금호아트홀에서 열린 '베토벤, 윤이상, 바버' 앨범 발매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2.11.28/뉴스1 ⓒ News1 이승배 기자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직후 인터뷰에서 '우승으로 인한 관심은 3개월짜리고, 대단한 업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던 임윤찬은 이날 간담회에서도 음악으로 의미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그는 "보육원이나 호스피스 병동 등 공연장을 찾기 힘든 이들이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가 아무런 조건 없이 음악회를 여는 게 음악가로서 할 수 있는 대단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돈이 아닌 음악의 기부가 왜 중요한지를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음악을 나누는 것은 음악을 몰랐던 그들에게 또 다른 우주를 열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처럼 부족하고 미숙한 사람의 연주가 또 다른 누군가에겐 영감의 원천이 될 수도 있겠죠."

나이와 어울리지 않은 이런 생각은 스승인 손민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의 영향을 받은 덕이다. 이런 손 교수가 내년 가을 학기부터 미국의 명문 음대인 뉴잉글랜드음악원 교수로 부임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임윤찬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린다. 임윤찬은 평소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손 교수를 꼽아왔다.

임윤찬은 이와 관련, "사실 당장 내일이라도 죽거나 다쳐서 피아노를 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섣불리 계획을 얘기했다가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 있기 때문에 아직은 모르겠다"고 했다.

임윤찬은 12월 도쿄와 서울 등에서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 기념 리사이틀을 연다. 1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선 올랜도 기번스, 바흐, 프란츠 리스트의 곡을 들려준다.

cho84@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