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탈모영양제 광고 속 '의사'는 어쩜 그리 자신만만한가

신정은 기자 입력 2022. 11. 28.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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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의사지만 모발 이식하지 말고 이거 드세요." - □□□ 영양제 광고 中
"제가 3년을 연구해 이 성분을 국내 최다 함유한 크림을 개발했습니다." - 주름 개선 ○○크림 광고 中
"원인 해결이 확실해요. 한 달 써보시고 풍성한 자신감 얻길 바랄게요." - 발모 토닉 ▲▲▲▲ 광고 中

유명 미디어커머스 업체 A 가 있습니다. 업력은 3년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매출액을 무려 17,000% 끌어올린 곳입니다. 주력 제품은 화장품과 영양제. 그중에서도 주름, 탈모 등 미용 개선에 효과가 좋다는 제품입니다. 유튜브, 페이스북 등 소셜미디어를 통해 공격적 마케팅을 벌이는데, 이 가운데 눈에 띄는 광고가 있습니다. 흰 의사 가운을 입고 자막에는 이름과 함께 '피부과 전문의'라고 적힌 사람들의 제품 소개 영상입니다.
여기부터 일단 불법입니다. 현행법에 따르면 "의사가 추천했다" "의사가 연구·개발했다"는 내용이 담기거나 암시하기만 해도 적발 대상입니다. 의약품으로 잘못 인식하도록 표기하는 광고이기 때문에, 1년 이하의 징역, 1천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할 수 있습니다. 담당 부처인 식품의약안전처는 제품 광고 정지 처분을 내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A 업체는 어쩜 이렇게 뻔뻔하게 광고할 수 있었던 걸까요? 광고 속 '의사'들이 진짜 의사이긴 한 걸까요?
 

살 때까지 쫓아오는 광고…"터무니없는 효과"

A 업체 제품에 작은 관심이라도 보이면, 그때부터 집요하게 광고가 따라붙습니다. 소셜미디어 타깃 광고의 특성입니다. 저 또한 취재를 위해 A 업체 화장품을 몇 번 검색했을 뿐인데, 제 페이스북에도 해당 광고가 계속 떠올랐습니다. 보고도 믿기 힘든 놀라운 전후(前後) 사진부터 '피부과 전문의'의 제품 소개 영상까지 종류도 다양합니다. "이래도 안 살 거야?" 쏘아붙이는 듯한 공세에 아무 생각이 없던 사람도 괜히 물건을 사고 싶어질 정도입니다. 그럼 이 광고는 살 때까지 뜨는 걸까요? 취재 촬영을 위해 부득이 일부 제품을 산 뒤에도 여전히 광고가 떴습니다. 지금도 뜹니다.
탈모 방지에 좋다는 비오틴, 피부 탄력을 개선해준다는 아세틸헥사펩타이드…. 광고 속 전문의의 화려한 설명에 취재진은 전문가 자문을 구했습니다. 영상을 본 전문가들은 성분에 대한 소개는 일부 타당한 내용도 있지만, 제품 효과가 과장됐다고 지적합니다. 김동현 분당차병원 피부과 교수는 "쭈글쭈글했던 이마가 다림질한 것처럼 빳빳해지거나, 볼록 튀어나오는 건 화장품을 발라서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현상"이라며 "품질에 따라 자극이 심하거나 홍반, 여드름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고 말했습니다. 또 두피 제품 등을 통해 "탈모 베이스라인이 15~20% 증가하는 것도 어려운데, 80% 이상 증가한 것처럼 임상 결과를 소개하는 것도 터무니없다"고 꼬집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의는 "아무리 봐도 피부과 의사가 아닌 것 같다. 진짜면 이렇게 말할 수 없는데, 도대체 정체가 무어냐?"라고 되물었습니다.
 

'피부과 전문의'라는 이들의 정체는?

광고 속 '피부과 전문의'라는 사람들을 추적하려 했습니다. A 업체의 광고 속에 등장한 '피부과 전문의' 또는 의사 가운을 입은 사람은 취재하며 본 것만 해도 5명. 소속을 확인하기 위해 대한피부과학회에 이름, 사진을 보내 이들의 신원 조회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학회 측은 "조회되지 않는다"는 답을 주었습니다. 자격 정지 처분을 받아도 피부과 전문의를 취득하면 검색할 수 있다는 겁니다. 광고 속 이름을 포털 사이트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나오지 않습니다.
취재 중 뜻밖의 공고를 접하게 됐습니다. A 업체가 2주 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린 배우 모집 글이 포착된 겁니다. 11월 29일, 30일 중 촬영이 가능한 2, 30대 여성 배우를 찾는다며 콘셉트는 '피부과, 정보전달.' 취재진이 직접 전화했더니 친절한 설명과 함께 놀라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배역인지 알 수 있을까요?)
다른 건 아니고, 피부과 전문의가 설명하는 콘셉트요. 대본을 메인 카메라에 띄워드리니 끊어 읽으시면 됩니다.
(준비물은요?)
의사 가운은 준비해드리고요. 안에 의사들이 입는 것 같은 단정한 셔츠를 입고 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출연자들이 문장을 읽을 때마다 앞에 써진 대본을 읽듯 동공이 흔들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습니다. A 업체가 이전에도 비슷한 내용의 배우 모집 글을 올렸던 흔적도 인터넷에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 지난 23일, SBS 8뉴스에선 관련 의혹을 자세히 보도했습니다. (관련 기사 : ▷ [단독] 화장품 광고 속 '피부과 의사'…알고 보니 배우?)
[ 원문 링크 : https://news.sbs.co.kr/d/?id=N1006982172 ]
 

'묵묵부답' 속 대대적 할인 행사…식약처 책임도

업계는 이 업체가 '피부과 전문의'를 내세워 불법 광고를 한 데에 더해, 실제 의사도 아닌 대역 배우를 쓴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대한피부과의사회는 A 업체와 출연 배우 등을 상대로 경찰에 의료법, 약사법, 화장품법 위반 등 혐의로 고발장을 제출했습니다. 대한피부과의사회는 해당 업체의 이 같은 광고 행태가 피부과 전문의를 비롯해 의료계 전반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보고, 강경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세웠습니다.

A 업체는 '묵묵부답'입니다. 취재진이 지난 21일 업체 해명을 듣기 위해 광고 속 출연자들이 실제 전문의가 맞는지, 대역 배우를 쓴 건지 등 따졌지만 "그렇게 광고한 적 없다"는 짧은 답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업체들도 비슷하게 악용하고 있다"이라는 모순된 말을 덧붙였습니다. 보도 직전까지 구체적인 입장을 묻는 추가 질의엔 여전히 답이 없었습니다. 대신 '블랙프라이데이' 기념 할인 행사를 대대적으로 펼쳤습니다.

지난 9월, 대한피부과의사회는 식약처에 A 업체에 대한 민원을 이미 제기한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담당 부서에선 해당 광고 계정이 삭제됐고 영상을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민원을 종결 처리했습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피부과 전문의'를 내세운 광고가 지속됐고, 업체는 제품 판매에 열을 올렸습니다. 업체가 불법 광고를 이어온 데에 식약처의 부실 대응도 한몫했다는 점도 분명해 보입니다. 보도 이후 식약처는 해당 광고를 화장품법 제13조 위반으로 적발해 플랫폼사에 접속 차단 등의 조치를 요청했으며, 향후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지속할 예정이라고 전했습니다.
 

추가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식약처 조치와 경찰 수사 방침 등 내용을 담은 SBS 보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A 업체의 비슷한 광고가 노출되고 있다는 제보가 또 접수됐습니다. 해당 광고에 '피부과 전문의' 역할로 출연한 분들을 알거나, A 업체의 제품 및 후기 관련 제보를 받고 있습니다. 또는 비슷한 방법으로 제품을 홍보하거나 광고 중인 미디어커머스 업체들을 추적하고 있습니다. 카카오톡 'SBS 제보' 또는 취재기자 이메일(silver@sbs.co.kr)로 연락을 기다립니다.

신정은 기자silver@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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