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를 사랑한 女…‘썸바디’로 인간 민낯 들여다본 정지우 감독 [인터뷰]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2. 11. 2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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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OTT 연출한 정지우 감독 인터뷰
집착·욕망 다룬 ‘해피엔드’ ‘은교’ 이어
사이코패스 둘러싼 멜로 ‘썸바디’ 그려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연애 빠져들다
마음 데인 경험, 한번쯤 있지 않나요”
정지우 감독. <사진제공=넷플릭스>
애정과 집착의 치정극 ‘해피엔드’, 노년 시인과 여고생의 욕망을 그린 ‘은교’ 등을 만든 정지우 감독이 이번엔 연쇄살인자를 둘러싼 기괴한 19금 멜로 드라마를 만들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썸바디’다.

이야기의 중심엔 사이코패스 성윤오(김영광)가 있다. 잔인한 폭력성을 숨기고 즉석만남 앱 썸바디에서 사람들에게 접근한다. 그를 대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가 극을 이끌어간다. 자폐 스펙트럼의 일종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는 천재 앱 개발자 섬(강해림),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경찰 기은(김수연), 신내림을 받은 젊은 무당이자 레즈비언인 목원(김용지) 등이다.

강한 캐릭터와 살인 등 자극적인 소재를 썼지만 결국 다루고자 한 건 인간 본성의 한켠이다. 독특한 캐릭터성 역시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여러 사람을 좀더 극화했을 뿐이라고 정 감독은 본다. 지난 22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모두가 마음속에 원만하지 못한 영역을 갖고 있고 관계를 맺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데, 그것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을 그냥 보통 사람처럼 대해보려고 했어요. 이 사람에게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묘사하려고 애썼으니까요.”

‘썸바디’는 연쇄살인자를 둘러싼 세 여성 섬, 기은, 목원(가운데부터 시계방향)이 이야기를 끌어가는 8부작 시리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살인자와 사랑에 빠지기도, 대립하기도 하는 극 중 인물들의 행동을 따라가다 답답함을 느낀다면 그 역시 감독의 고민과 맞닿아있다. “많은 사람들이 상대방이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혼자 있을 때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다 말려들고 연애를 하다 마음 고생하지 않나”라는 것이다.

특히 이해하기 힘든 인간에 대한 호기심은 감독에겐 창작의 근원이 됐다. “일상에서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사람을 수도 없이 만나거든요. 자기가 손해를 보는데도 왜 저러는 걸까. 극에서 그러면 흔히 ‘개연성이 없다’고 하지만 현실엔 실제 그런 사례가 많습니다. 그러면 저도 계속해서 들여다 보고 흥미를 느끼게 됩니다. 이 작품을 하면서도 많이 생각한 부분이에요.”

수위 높은 19금 신 역시 자극적 묘사보다는 인간의 민낯을 드러내 보이고자 했다는 게 감독의 항변이다. “화면에는 노출뿐 아니라 혼자 있을 때 하는 수없이 많은 것들이 나와요. 우리가 보기 좋게 차림을 갖추고 집 밖으로 나섰을 때가 아니라 나 혼자만 있을 때 하는 행동, 상상, 욕망 등이죠. 노출 수위로 따지자면 오히려 편집 과정에서 빼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일종의 화보(이미지)로 보이면 이야기가 다 무너지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 서술되느냐가 문제죠.”

배우 김영광은 ‘썸바디’에서 친절한 얼굴로 다가와 살인을 저지르는 사이코패스 성윤오 역할을 소화했다. <사진제공=넷플릭스>
배우를 알아보는 정 감독 특유의 심미안은 이번에도 발동됐다. 로맨틱 코미디 남자 주인공의 정석으로 여겨지던 모델 출신 배우 김영광의 연기 변신과 신예 여배우들 발탁이 화제다. 특히 김영광을 살인자 역에 기용한 건 감독의 신뢰가 굳건했기 때문. “비현실적으로 잘생긴 사람이 일상적으로 믿음직한 형태의 연기를 보여준다는 게 인상적이어서 함께 작업해보고 싶었어요. 정말 집중해줬고, 현장에서도 신인 배우들의 디딤돌이 돼줘서 감사합니다.”

정 감독에게 영화 스크린이 아닌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위한 작품 연출은 이번이 처음이다. 순수 촬영만 6개월 반이 걸리는 등 영화에 비해 긴 제작 기간엔 적응해야 했다. 그래도 정 감독은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가리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고 했다. 산업과 예술의 경계에 선 고민에 대한 그의 답이기도 하다.

“영화 관객 수도, 제작되는 작품 수도 줄면서 저처럼 개인의 욕망을 다루는, 혹은 여러 다양한 성격으로 규정할 수 있는 영화는 더 만들어지기 어려워지고 있어요. 지금 같은 환경에서 ‘해피엔드’나 ‘은교’를 다시 만든다면 마케팅을 위해 그저 야한 영화로만 팔리지 않을까요. 앞으로도 찬찬히 생각해 볼 만한 작품을 극장에서 만나는 건 어려워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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