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의 아트레터] 4조원 거래된 뉴욕의 가을 경매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입력 2022. 11. 2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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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가·초현대미술에 ·집중
양극화 극심···아시아 입찰 비중 증가
톰블리 등 기존 블루칩 가격 조정세
마이크로 소프트의 공동창업자 폴 앨런이 소장했던 폴 세잔의 '생 빅투아르의 산'이 크리스티 경매에서 1억3779만 달러에 낙찰됐다. /사진제공=Christie’s
[서울경제]

메이저 경매가 열리는 뉴욕의 가을은 건재했다. 11월 셋째 주 뉴욕에서 열린 세계 3대 경매사 크리스티(Christie’s), 소더비(Sotheby’s), 필립스(Phillips)의 메가 컬렉션 및 이브닝 세일은 지속되고 있는 경제·정치 불안 속에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예전 같은 치열한 경합이 없었음에도, 세 경매 회사는 이번 가을 경매에서 대략 4조원 규모의 매출을 거둬들였다. 한국 미술경매 시장이 전년 동기 대비 대폭 감소한 상황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번 뉴욕의 가을 경매는 불안정한 시기 미술 시장의 현주소와 내년 시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중요한 지표다. 먼저 더욱 극심해진 미술 시장 내 양극화 현상이 눈에 띈다. 몇 천억 대를 호가하는 초고가 작품들은 불안한 정세와 무관한 양 거래됐다. 반면 대다수 중저가 작품들은 추정가에 미치지 못한 가격에 낙찰됐고, 치솟았던 기존 블루칩 아티스트들 작품 또한 조정 국면에 들어서는 모습들을 보였다. 이에 프라이머리 마켓(1차 시장)과 세컨더리 마켓(2차 시장) 작품의 가격차가 좁아지고 있다.

두번째로는 10월 런던 경매에 이어 특정 '초현대 미술’ 아티스트 작품에 수요가 지속적으로 쏠리는 현상이다. 주로 젊은 여성 및 제3세계 작가들이 이에 해당한다. 세번째는 아시아 입찰자들의 활발한 경매 참여다. 크리스티가 선보인 폴 앨런의 메가 컬렉션 세일과 소더비의 ‘더 나우' 세일에서 상당수 작품이 아시아 입찰자들 품에 안겼다. 다수의 경매 회사들이 아시아 시장 확장을 준비하는 만큼 향후 아시아 컬렉터들의 비중이 더 커질지도 지켜볼만한 대목이다.

폴 앨런의 소장품이었던 조르주 쇠라의 ‘Les Poseuses, Ensemble (Petite version)’가 아시아 응찰자에게 1억4924만 달러에 팔렸다. /사진제공=Christie’s

맨 먼저 크리스티가 11월 9, 10일 양일간 마이크로소프트의 공동 창업자 폴 앨런(Paul G.Allen) 컬렉션 세일을 진행했다. 총 155점이 출품됐고 전체 추정가 10억 달러를 훌쩍 뛰어넘은 15억 달러(약 2조 원)의 낙찰총액을 기록했다. 경매 역사상 개인 소장품의 컬렉션 경매 중 최대치였다. 폴 앨런 컬렉션 경매의 인상적인 점은 아시아 입찰자들의 활발한 참여였다. 아시아 지역 내 정치적 긴장감이 고조된 동시에 ‘킹달러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크리스티에 따르면 출품작의 12%인 19점이 아시아 컬렉터에 낙찰됐다. 낙찰 총액 약 2조 원에 25%나 되는 5000억원을 차지하는 비중이었다. 대표작이었던 조르주 쇠라의 점묘화 ‘Les Poseuses, Ensemble’(1888)’는 약 1억 5천만 달러 (2000억 원)에, 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의 풍경화 ‘Verger avec crpres (1888)’는 5회 정도의 경합을 걸쳐 약 1억 1700만 달러(1600억 원)에 각각 아시아 컬렉터들에게 낙찰됐다. 르네 마그리트의 ‘La voix du sang’(1948)는 아시아 입찰자들 사이에 10회 이상의 경합이 벌어져 추정가의 2배가 넘는 약 2600만 달러(350억)에 낙찰됐다.

크리스티는 낙찰총액 2조 원이 넘는 폴 앨런 컬렉션 세일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17~19일 20세기와 21세기 이브닝세일을 진행했다.

크리스티는 폴 앨런 세일을 성공적으로 끝낸지 일주일 뒤 20세기와 21세기 미술 이브닝세일을 진행했다. 폴 앨런 컬렉션에 무게를 두어서인지, 전년 대비 약 30% 감소한 약 4억2000달러(5600억 원)의 낙찰 총액을 기록했다. 20세기 이브닝세일의 메인 작품으로 나온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인물화는 추정가 수준에서 낙찰됐고, 윌렘 드 쿠닝의 1970년대 작품은 유찰됐다. 같은 날 열린 21세기 이브닝세일에서도 유명 아트딜러 토마스 암만이 소장했던 장-미셸 바스키아의 작품이 나왔지만 단 두 번 정도의 조용한 경합을 통해 낙찰됐다. 그간 높은 가격에 거래되던 기존 블루칩 작가인 마크 그로찬, 제프 쿤스, 리차드 프린스, 게르하르트 리히터 등도 별다른 경합 없이 추정가에 미치지 못하는 가격에 낙찰됐다.

크리스티에 출품된 ‘초현대미술’의 대표 작가 이지 우드(왼쪽부터), 에바 유스키에비츠, 로렌 퀸의 작품들.

소더비는 휘트니미술관의 회장직을 지낸 데이비드 솔링거(David Solinger) 컬렉션으로 14일 가을 경매를 시작했다. 폴 앨런 컬렉션에 주목도를 뺏긴 탓인지 전체 출품작의 약 30%가 예상가 아래에서 낙찰됐다. 반면 이틀 뒤 초현대미술에 속하는 젊은 작가 중심으로 열린 ‘더 나우 (The Now)’와 ‘현대미술 이브닝 세일’이 뜨거웠다. 전년 대비 2배 증가한 약 4억2000만불(5600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 10월 런던 경매에서도 선보였던 32살의 젊은 여성 작가 줄리엔 응우옌(Julien Nguyen)의 작품은 추정가 5배 수준인 44만 달러(6억 원)에 낙찰됐다. 비슷한 또래 젊은 여성 작가 안나 웨이언트(Anna Weyant), 루시 불(Lucy Bull), 크리스티나 퀄스(Christina Quarles), 마리아 베리오(Maria Berrio)의 작품은 추정가를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가격이 올라갔다. 흥미롭게도 이 작품들 대부분도 아시아 입찰자들이 낙찰받았다. 소더비에 따르면 아시아 입찰자들이 출품된 22점 중 9점을 낙찰받았다. 내년 아시아 진출 50주년을 맞는 소더비가 상하이에 새로운 분점을 열고, 태국과 한국에도 본격적으로 사무소를 여는 이유다.

소더비의 ‘더 나우(The Now)’ 이브닝 세일에 출품된 마리아 베리오(왼쪽부터), 크리스티나 퀄스, 안나 웨이언트.루시 불 등의 작품.

‘더 나우’와 연이어 열린 현대미술 이브닝세일에는 38점이 출품됐다. 대표작인 앤디 워홀의 ‘Disaster(재앙)’ 시리즈 중 최대 크기인 ‘White Disaster(White Car Crash 19 Times)’는 올 봄 크리스티에서 워홀의 마릴린 먼로 초상화가 약 2600억 원에 낙찰된 기록과 더불어 높은 관심을 받았지만, 전화 응찰자 두 명의 미미한 경합 속에 약 8500만 불(1150억 원)에 팔렸다. 같은 경매에 나온 알리기에로 보에티, 프란시스 베이컨, 데이비드 호크니 등의 작품도 이변없이 추정가 내에서 낙찰됐다.

소더비의 현대미술 이브닝세일에 출품된 앤디 워홀의 ‘Disaster’ 시리즈 중 가장 큰 작품. 미미한 경합 속에서 낙찰됐다.

크리스티와 소더비가 유명인의 대형 컬렉션으로 경쟁하는 동안 틈새시장을 공략한 필립스는 15, 16일 이틀간 비교적 성공적인 성과를 거뒀다. 매출은 지난해와 비슷한 약 1억 4000달러(1900억 원)였다. 의 매출을 올렸다. 필립스는 20세기와 21세기미술 이브닝 세일에 크리스티를 소유하고 있는 프랑수아 피노가 조상했던 사이 톰블리의 2005년작 ‘무제’를 메인작으로 내놓았지만 추정가 수준인 약 4200만 불에 낙찰됐다. 동일한 시리즈의 같은 크기 작품이 호황이던 5년 전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4600만 불에 팔린 것을 감안하면 가격 조정세를 추론할 수 있다. 루시 불, 마리아 베리오, 안나 웨이언트의 작품들이 추정가를 뛰어넘는 가격에 낙찰됐다. 반면 최근 지속적으로 가격 상승세를 보여온 흑인 블루칩 작가 아모아코 보아포(Amoako Boafo)와 에이미 쉐랄드(Amy Sherald)의 작품은 추정가에 머물거나 유찰되면서 가격 조정의 모습을 보였다. /글·사진(뉴욕)=엄태근 아트컨설턴트

필립스의 ‘20세기 & 현대미술 이브닝 세일'에 출품된 사이 톰블리의 2005년작 '무제'. 5년 전 거래 이력 등과 비교하면 톰블리를 위시한 기존 블루칩 작가들이 가격 조정 국면에 진입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필자 엄태근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뉴욕 크리스티 에듀케이션에서 아트비즈니스 석사를 마친 후 경매회사 크리스티 뉴욕에서 근무했다. 현지 갤러리에서 미술 현장을 경험하며 뉴욕이 터전이 되었기에 여전히 그곳 미술계에서 일하고 있다.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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