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과 유치원의 통합은 아이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기고=장효연 입력 2022. 11. 28. 13:17 수정 2022. 11. 28.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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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육아의 시선] 7. 교육주체로서 부모가 바라는 유보통합

공동육아의 정신은 '내 아이'를 맡기거나 '남의 아이'를 보호해주는 것을 넘어서 우리 아이들을 함께 키우자는 데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공동육아를 실천하고 있는 원장, 교사, 학부모가 직접 최근 보육 현안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공동육아의 시선'이라는 기획을 진행합니다. 이 기획은 사단법인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과 함께합니다. -편집자 주 

재난의 시대 불확실함을 지나는 양육자에게 유보통합 논의 담론은 '아이들에게 또 하나의 어떤 변수가 생겨날까'하는 막연한 불안의 요소가 됩니다. 저는 공동육아 어린이집에서 조합과 함께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30년여 동안 계속되어 온 유보통합 논의에 있어 아이를 낳고 기르며 기관에 보낸 지가 4년 남짓한 저의 식견은 많이 부족할 것입니다, 다만 기관보육에서의 부모 협력에 대해서라면 몸으로 알고 경험했습니다.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면서 당연하게 이루어지던 문화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경험입니다. 보육정책에서 서비스 이용자나 수혜자가 아닌 교육주체로서의 부모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면 저의 경험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영유아 교육/보육기관에서 부모는 어떠한 주체성을 가지고 함께 할 수 있는가의 사례와 그러한 부모는 어떤 점들을 바라는지에 대해 말할 수 있습니다. 대안적인 기관에서 아이를 키우는 보호자의 관점이 조금 다르게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대안적이라는 이유로 배제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아이 중심 유보통합에 바탕을 두었으면 하는 관점들

공동육아는 20여 년 전 보육 정책의 관료화와 기관의 영리화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부모와 교사 당사자로부터 자발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현재의 유아 교/보육 환경에서도 공동육아가 지닌 역할과 의미는 여전히 중요합니다.

아이들을 교육의 대상이 아니라 놀이를 통해 스스로 배울 수 있는 주체로 보는 공동육아의 교육관은 2019년 교육부 보건복지부의 유아 놀이중심 누리과정 개발에 있어 연구 발표되며 양 부처 통합의 중심철학 형성에 기여했습니다. 공동육아의 영역 연령 성별 장애통합 운영은 유보통합에서 바라보는 영유아시기의 연속적이며 일관적인 교/보육과 맥이 닿아 있습니다. 서울시 '모아어린이집'에서처럼 공동육아의 부모참여와 지역협동 방식을 국공립과 민간기관에서 나침반으로 삼기도 합니다. 공동육아의 사회적 확산을 위해 국공립 공동육아어린이집의 모델이 개발되고 다함께 돌봄센터가 공동육아를 통해 위탁 운영되기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대안적인 교육운동으로 시작되었던 공동육아의 가치관은 보편적 돌봄의 모습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습니다.

다양한 조건과 형태의 유아 기관들이 있음에도 양육자들이 굳이 시간과 품이 추가로 드는 공동육아를 선택한 이유는, 아이들을 정해진 프로그램 없이 놀게 하고 싶어서, 아이들마다 다른 발달 속도를 고려하며 충분히 기다려주면 좋겠어서, 자연과 함께 나들이를 다니고 교사 대 아동수가 적은 것이 좋아서, 대부분 내 아이의 기관 양육 환경을 보다 안전하고 나아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선택의 이유로 부모가 참여하여 기관을 직접 운영하고 공동체 경험을 쌓고 싶어서라는 기대는 사실 의외로 드문 편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모인 관계는 교사 대 양육자, 양육자 대 양육자간의 경계를 허물고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일손을 보태고 서로를 돌보는 경험을 가능하게 합니다. 단순한 부모의 참여를 넘어 이러한 공동체 경험이 가능한 것은 다름 아닌 그 중심축에 우리의 아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공동육아의 부모가 유별나서 가능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내 아이가 오늘 하루 기관에서 어떤 친구와 무얼 하며 보냈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교사와 잘 지내는지 궁금하고 앞으로도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은 세상 모든 부모가 똑같을 것입니다. 이러한 부모들의 바람을 유보통합에서 풀어나갔으면 합니다.

대안적인 교육운동으로 시작되었던 공동육아의 가치관은 보편적 돌봄의 모습으로 확산되어 가고 있습니다.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1. 영유아는 충분한 자유놀이 시간을 보장 받아야 합니다

국가가 영유아의 평등한 교육 수혜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은 감사한 말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과연 영유아가 교육의 수혜 를 받아야 할 대상인지 먼저 고민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의 성장 과정에서 영유아기 자유 놀이를 통한 주체성 획득의 중요성은 여러 맥락 안에서 수차례 입증되고 강조되어 왔습니다.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나길 바라는 입장에서 유보통합의 초등 연계 만 5세 의무교육과 같은 키워드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무서운 말들로 들립니다. 당장 '초등 1학년부터 지지 않게 하기 위한 도움을 주겠다'는 말로 입시 경쟁에 내모는 것은 아닐까, 초등 기초학력격차의 이유로 만 5세부터 쓰기와 셈을 가르치겠다는 말이 아닐까 우려가 듭니다.

한편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함을 가진 양육자들은 오히려 기관에 조기 교육을 바라기도 하는 현실입니다. 발달의 결정적 시기 가설은 사교육 시장을 통해 오해석되어 조기교육의 열풍을 일게 해왔습니다 하지만 조기 교육이 학습에 효과적이라는 가설에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물론 초등저학년 시절부터의 기초학습 부진이 초등고학년 이후의 부진으로 이어진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지만 이를 예방하기 위해 영유아기 아이들의 놀이 시간을 박탈하면서 조기교육을 하는 것은 '빈대 잡자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 아닐까요? 평등한 교육 수혜의 이유로 아이들이 스스로 어떤 놀이를 할지 선택하고 친구들과 뛰고 웃고 눈 마주치며 자아의 중심을 형성해야 할 결정적 시기가 후순위로 밀려나지 않길 바랍니다.

2. 영유아는 제각기 다른 속도로 발달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의 어린이행복선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어른들이 기다려 줄 때 행복해요. 잘 못하고 느려도 기다려주세요!'

공동육아에서는 밥을 늦게 먹는 아이도 느리게 걷는 아이도 말이 늦는 아이도 기다려줍니다. 아이들을 발달에 있어서 능동적 주체로 보고 개인별 특성을 존중해줍니다. 공동육아의 어른들은 그저 아이들이 커가는 하루하루의 모습을 곁에서 지키고 관찰하며 안내할 뿐입니다. 같은 연령이라고 모두 같은 정도의 발달 수준을 가지지 않으며 한 아이에게서도 발달 영역 간 쏠림이 있다는 것을 가장 잘 알고 계신 것은 아이들과 매일 생활하는 교사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연령별 구획이 지어진 정책이나 가이드라인이 있고 따라야 하는 교육과정이 있는 입장에서 아이들의 속도를 있는 그대로 지켜볼 수만은 없는 순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이유로 영아는 보육의 대상 유아는 교육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초등연령에 도달하면 일정 수준 이상의 학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시각이 걱정스럽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성장을 바라보고 기다려 줄 수 있는 느긋한 어른들이 필요합니다. 아이들 개별의 발달이 개성으로 존중받을 때 각기 다른 개성의 친구들 또한 존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양성에 대한 감각을 지닌 채 자라난 아이들은 나를 주장할 줄 알고 남의 다름을 아는 성숙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3. 일상적인 부모참여의 협력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저는 귀족 육아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이들의 자유로운 영유아기를 선택했을 뿐이죠. 그러나 힘이 듭니다. 돈도 품도 많이 들고 남다르게 보는 주변의 시각도 힘이 듭니다.

한편으로 어서 빨리 이런 대안기관의 필요가 없어지고 모든 아이들이 행복하고 자유롭게 자라나는 공교육 또는 공보육기관이 생겨났으면 하고 바랍니다.

공동육아에서는 매달 한번 해당 반의 모든 부모와 교사가 한 자리에서 만나 아이들에 대한 정보와 고민을 나누는 '방모임'을 합니다. 지난달 둘째 아이의 방모임에서 아이들의 놀잇감이 부족하지는 않은지, 교사가 생각하는 좋은 놀잇감은 어떤 것인지, 아이들은 기관에서 어떤 놀이를 주로 펼쳐나가며 가정에서 아이들의 놀이역동 향상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라는 부모들의 자발적인 질문이 있었습니다. 교사는 답변을 주시면서 '아이들이 집에서는 어떤 놀이를 하고 어떤 놀잇감을 좋아하는지, 아이들 끼리 기관 밖에서 따로 모여 노는 일이 있는지' 등의 질문을 이어 주셨습니다.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가정에서의 생활과 기관에서의 생활이 연결됩니다. 대부분 가정에서 맞벌이를 하고 있어 한 달에 한 번 시간을 내기 어렵지만 모두 기꺼이 모임에 참여합니다.

이러한 부모 참여와 교류는 아이들의 삶을 향상시키며 부모의 양육 불안을 덜게 합니다. 교사와 내 아이의 특성을 깊이 이야기하고 때로는 교사에게 배우고 때로는 함께 공부하며 교사의 전문성을 몸소 느끼며 신뢰가 깊어지게 됩니다.

또한 공동육아의 부모참여는 가정 내 양육참여가 비교적 고르게 분배되는 장치가 되기도 합니다. 지난달 첫째의 방모임에는 제 남편이 참석했습니다. 한 사람이 방모임에 가면 다른 사람이 아이 둘을 모두 돌보며 기다립니다. 기관의 일을 같이 상의하고 교사와 주고받는 교육일지도 번갈아 적고 아이 준비물 알림도 함께 받으며 '독박육아' 가 아닌 '함께육아'로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함께 육아는 부모 교사 같은 기관을 보내는 다른 부모들과 함께하는 육아가 됩니다. 작년과 올해의 교사가 달라져도 내 아이에 대해 일기 쓰듯 함께 적은 교육일지를 보며 내 아이에 대한 이해를 이어갑니다. 설령 내 아이가 맞고 오더라도 상대 아이를 '문제아'로 바라보기보다 함께 키우는 우리 아이로 바라보며 애정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상대 아이의 성장을 응원하게 됩니다. 어떤 가정에 갑작스러운 사정이 생겨 아이 하원을 할 수 없을 때 그 아이를 데려가 돌봐주는 이웃이 되기도 합니다. 개인 대 개인이 아닌 아이들과 기관을 중심으로 협력하는 이러한 관계 경험은 부모에게도 보다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되는 발판이 됩니다.

유보통합을 통해 새롭게 정비되는 영유아기관은 부모들의 자부담으로 운영되는 공동육아와는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한 아이를 키워내는 돌봄의 파트너로 부모와 교사가 일상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공동육아의 방식이 부모참여의 모델로 반영된다면 좋겠습니다. 이는 마을과 공동체가 사라진 현재의 육아환경에서 일하는 부모들의 어려움을 덜고 교사를 신뢰하며 아이를 안전하게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는 상호 관계의 밑거름이 될 것입니다.

통합 영유아기관을 어느 부처가 전담하는 것이 나을지, 교사 자격 균일화를 위해 어떤 요건을 신설해야 할지에 부모의 입장에서 명확한 의견을 제시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통합기관이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할지, 통합 영유아교사가 아이들과 어떤 일상을 살아갔으면 좋겠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들으셨듯 참 많은 고민과 공부를 하며 구체적인 의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도 저와는 다른 관점을 가진 부모들도 이러한 논의에서 주체로 함께 인정받는 구조가 만들어지길 강력하게 요청하는 바입니다. 정작 통합된 기관을 보내고 다녀야 할 양육자와 아동이 결과만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논의의 처음부터 과정 내내 당사자로 고려될 수 있길 바랍니다. 아이, 양육자, 교사 모두가 보육의 주체라는, 공동육아에서 당연한 이 명제가 유보통합 논의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도 또한 당연해질 수 있길 바랍니다.

*이 글은 (사)공동육아와공동체교육 소속 꿈나무놀이터 부모인 장효연 씨가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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