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세기 동해의 무릉도원…동해시에서의 몽상
설악산에서 동해로 내려오면 속초, 양양, 강릉 등이 나온다. 관광지로 워낙 많이 소개되는 지역들이다. 대안은 있다. 동해시, 삼척시 등 더 먼 곳으로 내려가 바다든 산이든 올라가면 된다. 우리는 명색이 설악산에 다녀왔으니 단풍 진 백두대간보다는 끝없는 상상력을 자극해 주는 해안 도시로 가기로 했다. 목적지는 강릉 아래 동해시였다.
동해시는 꿈의 도시이다. 오래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도, 그 복잡한 산업단지를 달릴 때도, 어마어마한 덤프트럭들이 날려대는 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있을 때에도 ‘미래의 도시’, ‘판타지’가 생각나곤 했다. 그것은 문명이 자연을 이길 수 없다는 돌이킬 수 없는 진리에 대한 믿음의 결과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시멘트 원통이 도시를 갈라버리는 환경을 벗어나면 단박에 눈이 멀 것만 같은 푸르고 투명한 동해, 동해가 떠받치고 있는 그 시린 하늘이 울퉁불퉁한 생각의 길을 녹여버리곤 했었다. 그 바다를 상상하며 지상 1350m 지점에 다다르면 백두대간 중에서도 가장 굵직한 덩치를 지닌 두타산이 펑퍼짐하게 누워 계신다. 두타산은 석가모니가 누워있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풍수에 환장하던 조선의 사대부들이 이 누워계신 부처를 그냥 지나칠 수 있었겠는가. 해서, 관동팔경을 유람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던 양반들이 하인들을 거느리고 이 두툼한 두타산을 끊임없이 왕래하곤 했다. 매월당 김시습과 봉래 양사언 등 당대 문필가들은 기암괴석에 자신의 시를 새겨 두타산 바위를 거대한 시집으로 만들기도 했다. 김시습은 주로 시를 새겼고, 양사언은 석각을 제작했는데, 이들의 작품을 보았거나 소문을 들은 문필가들이 모두 너도나도 김시습, 양사언이 되어 자신의 작품들을 바위에 새겼다. 그때는 그게 풍류였다. 명필이든 악필이든 누구나 자신이 마음을 드러내길 주저하지 않았다.
동해시 아름다운 풍광의 시작과 끝은 두타산 무릉계곡이라 할 수 있다. 무릉계곡은 수행의 지점이다. 계곡 입구에 있는 무릉반석은 사람 수백 명이 한꺼번에 앉아 주제가 있는 수행을 하거나 인생 스승의 금과옥조 같은 말씀을 담아낼 수 있는 곳이다. 계곡 입구에 있어서 마이크 없이도 화자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바위 스피커’ 무릉반석은 이즈음 찾아가면 인적이 드물고 이상한 세계에 진입한 것 같은 착각에 빠트리기에 충분하다. 어디 무릉반석뿐이랴. 용추폭포, 쌍폭포, 호암소, 선녀탕, 장군바위 등을 마주하노라면, ‘내 가까운 곳에 평생을 두고 싶은 인물은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만일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면, 억지로라도 ‘내 옆에 평생 누가 있으면 좋겠어?’ 자신에게 질문하고 또 질문해 보시라. 무릉계곡에서 명상을 해 본 사람에게 ‘그때 무슨 생각이 들었어?’ 물어보면, ‘내가 정말 소중한 게 무엇일까, 내 주변을 둘러보게 되었지. 결론 내지는 결론 가까운 결과도 얻을 수 있었고’라는 대답이 나오곤 한다. 누구나 이곳에 들어가면 마음의 미남미녀가 된다는 무릉계곡을 내려다보노라면 이곳이 이 세상인지 딴 세상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깊은 상념에 빠지게 되는 이유가 그것이다. 설악산 주전골 트레킹을 끝내고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맛집에서 저녁과 아침을 먹은 후 단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동해시로 내달린 것은 ‘강력한 중력의 끌림’ 정도로 생각하게 된다. 무릉계곡에 들어서는 순간, 여행자는 이미 무릉의 주인공이 되어 있다. 꿈이 이루어질 날도 가까워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계절을 핑계대지 말자. 동해시는 곧 무릉의 세계였다.
추암 촛대바위가 좀 가늘어진 것 같다
촛대바위 앞 언덕 꼭대기에 있는 능파대는 촛대바위 일대를 제일 자세히 볼 수 있는 명당이다. 능파대에서 보이는 동해의 대표적인 풍경은 촛대바위와 형제바위이다. 파도가 거칠게 일어나는 날은 바위에 남는 포말 뒤로 하늘로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연상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틈만 나면 능파대에 올라 동해를 면전에 두고 명상과 관찰에 빠져본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파도가 잔잔한 날 바다는 마치 호수와도 같다. 거기에 달이라도 떠 주면 시가 저절로 나오고 어깨가 자동으로 들썩이게 된다. 이곳이 능파대가 된 것은 조선의 역대급 능력자이자 최악의 모사꾼으로 기억되는 한명회가 ‘고요한 바다의 모습이 마치 미인의(요즘 같으면 고양이라고 했겠지) 걸음걸이 같다’ 해서 그렇게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기록에 의하면 촛대바위는 두 기가 솟아 있었다고 한다. 크기도, 생김새도 비슷했는데, 1681년 강원도 지진 때 한 기의 중간 부분이 부러져 버려 오직 현재의 촛대바위만이 우뚝한 모습으로 빛나게 되었다고 한다.
추암은 해변, 촛대바위, 형제바위, 석림, 해암정, 출렁다리, 조각공원 외에도 ‘관광전용열차’인 ‘바다열차’의 주요 역인 추암역이 자리잡고 있다. 바다열차는 ‘강릉역 ? 정동진역 ? 묵호역 ? 동해역 - 추암역 ? 삼척해변역’을 바다와 함께 달리는 아름다운 노선으로 사계절 바다가 보고 싶어 애끓는 사람들의 마음을 식혀주는 꿈의 노선이다. 앞으로 전철화 작업이 끝나면 동해중부선이라는 이름으로 KTX-이음이 정차하는, 그래서 더 먼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추암을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묵호는 울릉도로 출발하는 배가 떠나는 곳이다. 이곳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그 이유에 공통점이 있다. 바다에서 바라보면 묵호항 뒷쪽 묵호등대와 묵호동, 논골담길 등이 절벽마을을 이루고 있고. 그 절벽 정상을 오르내리는 길 또한 절벽에 붙어 있는 게딱지 같이 아담하고 예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는 점이다. 묵호항 절벽마을을 보며 해뜨는 ‘도째비골’(도째비는 도깨비의 방언) 고급 다운타운이 그려졌다. 이 시골 해안 절벽에 무슨 고급 다운타운이냐고 묻겠지만, 이탈리아의 친퀘데레, 카프리, 그리스의 산토리니를 상상해 보았다. 모두 돌이 많은 지역이고 우리나라 또한 땅만 파면 돌이 나오는 지질을 갖고 있다. 묵호항은 도깨비 방망이 스토리가 있는 도째비골, 1941년에 개항한 묵호항의 크고 작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논골담길 등 많은 이야깃거리를 지닌 언덕 위 절벽 마을이다. 지금은 빈티지 감성 솟구치는 낭만의 언덕으로 적지 않은 연인, 가족들의 발길을 끌어당기고 있다. 절벽 다운타운의 그랜드 디자인을 22~23세기에 맞춰 그리고 시뮬레이션해 보면 어떨까 생각하니 일단 마음이 흥분되기 시작했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과 논골담길을 보노라면 두말할 것도 없이 산토리니의 복잡하지만 아름다운 풍광이 떠올랐다. 해일 같은 자연재해는 사람과 시스템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제대로 대비하고 관리하면 끝이다. 세상이 뒤집어질 재앙이 벌어진다면, 그거야 뭐 어쩌겠는가.
이 절벽마을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절벽의 골목과 작은 집들이었다. 논골길은 해안도로에서 볼 때 논골 1길이 마을 사람들의 생업을 엿볼 수 있는 루트, 그들의 일상이 보이는 논골2길, 평범한 삶이 존재하는 논골3길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민폐와 예의의 기준만 확실하다면 볼 것 다 보고, 인사 나눌 것 다 나누고 짭쪼롬한 묵호항 특산물 정보, 맛집 이야기까지 얻어갈 수 있다. 이런 마을, 또 언제 어디에서 만날 수 있을까.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56호 (22.11.2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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