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전 청나라 고관도 줄 섰던 박제가…“현 한중 관계에 시사하는 바 커”

최훈진 기자 2022. 11. 28.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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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만나 한방에서 함께 잔치하며 초록빛 술과 붉은 등불 아래에서 예술을 말하고 붓을 휘둘렀으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 하겠습니다. 만 리 떨어져 있어도 한 하늘 아래 있고 멀리 있지만 날마다 가까이 한다는 말로 한갓 위로를 삼을 뿐입니다." 절절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이 편지글은 청나라 시인 겸 서예가인 이병수가 내년에 사신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한 조선의 실학자 박제가에게 1792년 보내온 답장이다.

2020년부터 3년간 제자들과 함께 호저집을 번역한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28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박제가만큼 청나라 학계의 명성 높은 정상급 학자들과 이처럼 많고 깊은 교류를 오랫동안 나눈 사례는 없었다"면서 "200년 전 두 나라 지식인이 나눈 존모(尊慕)의 정을 보여주는 호저집은 작금의 한중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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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한양대 교수 인터뷰
“어쩌다 만나 한방에서 함께 잔치하며 초록빛 술과 붉은 등불 아래에서 예술을 말하고 붓을 휘둘렀으니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 하겠습니다. 만 리 떨어져 있어도 한 하늘 아래 있고 멀리 있지만 날마다 가까이 한다는 말로 한갓 위로를 삼을 뿐입니다.”

절절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이 편지글은 청나라 시인 겸 서예가인 이병수가 내년에 사신으로 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한 조선의 실학자 박제가에게 1792년 보내온 답장이다.

박제가는 20대 후반 규장각 검서관으로 임명되기 전 해인 1778년부터 1801년까지 4차례 중국을 다녀왔다. 뛰어난 시인이자 문장가로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와 함께 조선 후기 한문학 4대가로 꼽혔던 그는 청나라 학계의 거목인 기윤, 옹방강 등 일급 지식인과 교류했다.

그가 청나라 지식인 172명과 나눈 필담, 시문, 서신을 모아놓은 ‘호저집’(縞紵集)이 우리말로 이달 처음 완역됐다. 호저집 완역본 출간은 경기문화재단 산하 실학박물관(관장 정성희)이 한중수교 30주년을 기념해 정 교수에게 협업 요청을 하면서 이뤄졌다.

조선 실학자 박제가와 18세기 청나라 지식인들이 주고 받은 필담, 시문, 서신 등을 모은 호저집을 이달 우리말로 처음 완역한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2020년부터 3년간 제자들과 함께 호저집을 번역한 정민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28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박제가만큼 청나라 학계의 명성 높은 정상급 학자들과 이처럼 많고 깊은 교류를 오랫동안 나눈 사례는 없었다”면서 “200년 전 두 나라 지식인이 나눈 존모(尊慕)의 정을 보여주는 호저집은 작금의 한중관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한국의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 반발해 2016년부터 드라마나 영화 등 한국 문화 콘텐츠의 수입을 막는 한한령(限韓令·한류 금지령)을 실시해 왔다. 그나마 15일 진행된 한중정상 회담으로 물꼬를 터 중국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 한국 영화 서비스가 재개됐다.

정 교수는 “국가 간 교류는 이익을 전제로 하기에 상황이 틀어질 수 있지만 학술이나 문화 교류를 통한 상호 신뢰와 존중은 영원히 남는다”면서 “지금처럼 한중 간 문화 교류까지 차단된 현실에서 18세기 한중 지식인의 인간적인 만남을 떠올려 관계 회복의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훈진 기자 choigiz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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