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쓰며 포화 견디는 우크라 아이들…“살아서, 노래하게 해주세요”

임인택 2022. 11. 2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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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문학 100년 ‘쓸모’를 찾아서][어린이문학 100년 ‘쓸모’를 찾아서]
◆ 전쟁 너머 동심 1편
네미샤이우 2번학교의 지하실에서 2월 말부터 4월1일까지 50명가량의 아이들이 숨어 지냈다.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학교장 제공
엄마, 보셨어요?
우크라이나의 땅, 우크라이나의 태양, 우크라이나의 구름,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새도 우크라이나어로 우크라이나 노래를 부르고 있어요.

지난 3월(현지시각) 우크라이나 수도권에 사는 소년 우스팀 라이센코(2학년)가 자신이 그린 그림을 엄마에게 보여주며 한 말. 낮고 어둡고 차가운 학교 지하실에서였다. 러시아군이 일대를 점령한 2월 말부터 4월1일까지 아이와 함께 500명가량의 피난 못 간 지역 주민들이 숨어 목숨을 부지한 네미샤이우 2번학교, 나중 러시아군의 민간인 학살 만행이 드러난 부차와 10㎞ 거리의 이웃 마을 학교.

엄마는 아이의 얘기를 학교 교사들에게 “신이시여, 부디 승리를 주세요”라는 기도문과 함께 공유했다. 지난달 11일 학교에서 만난 교장 알리나는 휴대전화 속 ‘시가 된 문자’를 내보이며 물기 밴 눈으로 <한겨레>에 말했다. “믿어지세요, 7살 아이의 표현이라는 게?”

우크라이나 수도권에 사는 7살 소년 우스팀 라이센코가 점령 기간 동안 그린 그림. “여기 모든 게 우크라이나의 것이에요. 당신이 우리를 지키고 있잖아요”라고 적혀 있다. 라이센코는 엄마에게 그 의미를 설명해줬다. 알리나 교장 제공

그 기간, 미사일 5발이 교정에서 터졌다. 수천발 총알이 2층 건물 사면으로 빗발쳤다. 장갑차가 학교를 맴돌았고 마을은 기척 없이 포탄을 맞았다. 10년차 영어교사 올레나의 말이다. “부차에서 민간인들을 죽인단 소문도 (대피 기간) 들었지만 우리 누구도 진짜일 거라 믿지 않았어요.”

학교 지하실은 본래 창고였다. 어린이·학생만 50여명. 학교 밖은 영하 20도까지 내려갔고 지하 실내는 10도를 오르지 못했다. “난로가 두개였고 공간이 비좁아 눕지도 못했으니까요.”(알리나) 사람들은 서로의 체온으로 서로를 사신으로부터 빼앗기지 않으려 붙들고 있었다. 음식을 어렵게 들여와 해 먹었다. 아이들은 “배고프다 투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 이야기를 들려달라거나 혹 교사에게 책을 빌려달라거나….

다른 마을 여성이 낳은 지 닷새 된 아이를 포에 감싸 학교로 숨어들어왔다. 러시아군조차 민간인 부상자 3명을 이 학교로 ‘치료받으라’며 살려 보냈다. “그 얘길 듣고 얼마나 기겁했게요, 우리가 여기 숨어 있단 걸 러시아군이 정확히 알았다는 거고 수도 없이 잔혹한 행위를 저지르고선 또 그런 예측 불가의 행동을 하니까요.”(올레나)

퇴각 때도 지상군이 학교로 쳐들어오진 않았다. 이유는 모른다. 7살 라이센코는 노랗고 파란 생명들을 본 대로 그리고 읊었을 뿐. 풀어쓰자니 신이여, 우리도 살게 하소서, 부디 하여 우리도 노래하게 하소서.

네미샤이우 2번학교 지하실에서 대피하던 때의 한 소년. 옆구리에 책을 끼고 있다. 알리나 교장 제공
네미샤이우 2번학교의 알리나 교장(오른쪽)과 올레나 영어교사. 임인택 기자
네미샤이우 2번학교 지하실. 해방 이후인 10월 현재는 텅 비어 있고 향후 재난을 대비해 수리 중이지만 재정상 어려움이 있다. 임인택 기자
네미샤이우 2번학교 외부. 사면 가득한 총탄 자국을 지우지는 못하고 교사와 학생들이 임시로 별 그림처럼 임시로 바꿔뒀다. 임인택 기자

■ 500명이 산 학교와 1천명이 죽은 마을

지난 2월24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를 전면 침공한 러시아가 키이우로 진격하려고 초기에 짓밟고 점령한 데가 키이우 북서부로 37㎞ 떨어진 부차 일대다. 수도 앞 육탄 방어선, 여기엔 아이들의 집도, 학교, 도서관, 아이들의 꿈도 있었다. 대피 기간 35일 동안 이 학교 자원봉사자 1명이 인근에서 죽었고, 이 학교 학생 6명이 부모를 잃었다. 엄마와 학교에 숨었던 14살 이호르 자발킨(9학년)은 2월 말 이르핀에서 아버지가 러시아군에 죽었다는 소식을 5월에나 듣게 됐다. 두달가량 자발킨은 한마디를 못했으나, 비극의 엠바고는 풀렸다. 옆 마을 부차에서만 학살된 민간인이 1300명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즈음 키이우 도심에 살던 10살 소피야는 이런 글을 쓴다.

“우리는 사이렌과 폭발음에 맞춰 깨고 움직이고 잠든다. 엄마·아빠는 지금 굉장히 위험하다고 말한다.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2월25일)

“엄마는 ‘전쟁’이라는 단어를 여동생에게 쓰지 말라 하신다. 지금 정말 전쟁 중이라는 것을 동생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밤 폭격에 동생이 떨지 않았으면, 울지 않았으면 좋겠다.”(2월27일)

“오늘은 할머니 생신이다… 할머니가 사는 지금 도시엔 러시아군과 탱크가 있다….”(3월1일)

소피야는 지난 10월10일 오전 키이우 대통령궁 근처 중심가의 흐레시차티크역에서 긴급 공습 대피 중에 만났다. 아침 8시20분부터 러시아군이 사실상 처음으로 수도 복판까지 미사일을 퍼붓던 날이다. 깊숙한 지하철 플랫폼 대피소에서 엄마 허리춤을 붙잡은 채 소피야는 기자에게 “오늘이 제일 무섭다, 엄마랑 학교 가는데 미사일이 머리 위로 날아가는 걸 봤고 폭발음이 엄청났다”고 말했다.

지난 10월1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중심가의 흐레시차티크역에서 긴급 공습 대피 중 만난 10살 소피야(오른쪽)와 엄마 다리야. 임인택 기자
우크라이나 키이우에 사는 소피야가 전쟁 중 자신의 일기에 쓴 시. “당신은 아름답고 강하고 부드러워요. 우리에게 노래할 땐 말이죠. 당신은 지지 않고 자유롭고 현명해요. 우리에게 가르칠 때 말이예요”라고 썼다. 가족 제공
지난 10월1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중심가의 흐레시차티크역에서 긴급 공습 대피 중인 어린이들. 임인택 기자

그 시각 소피야의 여동생 자리안나(4)는 아버지와 집에 머물러야 했다. 유치원이 문 닫은 진 오래였다. “(징병 대상인) 남편과 헤어질 수 없어 피난 가지 않았다”는 엄마 다리야(35)는 10월17일 월요일 오전 도심이 1주 만에 자폭형 드론으로 공격당한 뒤 기자에게 텔레그램으로 말했다. “이번은 진짜 무서웠어요, 바로 집 근방에서 폭발했거든요.” 임신부와 남편 등 최소 4명이 폭살됐다고 정부는 밝혔다. 배 속 아이는 셈해지지 않았다.

전쟁의 진짜 공포는 ‘더 두려운 내일’을 상상하도록 하는 데 있다. 진짜 잔혹성은 살상의 수치, 어른과 정치의 언어로 무성하여 이런 공포가 타자화되는 데 있다. 10월10일 아빠와 통학 중 대피소로 달려온 질라타(9살·4학년)도 “전쟁의 의미를 조금 안다”고 말했다. “서로를 죽이고 집을 허무는 것.” 10월6일 폴란드 루블린에서 만난 피난민 록시(빈니차 거주)는 6살 딸도 “푸틴이 누군지 알고, 사이렌이 울리면 숨어야 한다는 걸 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10일 우크라이나 키이우 중심가의 흐레시차티크역에서 긴급 공습 대피 중 만난 9살 질라타. 그는 ‘전쟁의 의미를 아나요’란 기자 질문에 “조금 안다”며 “서로를 죽이고 집을 허무는 것”이라 말했다. 임인택 기자
10월6일 폴란드 루블린에서 만난 우크라이나 피난민 록시(빈니차 거주)는 6살 딸도 “푸틴이 누군지 알고, 사이렌이 울리면 숨어야 한다는 걸 안다”고 말했다. 사진은 군에 징집된 록시의 남편과 딸. 가족 제공
지난달 <한겨레>는 지도 위 메마른 전선, 살상의 수치, 어른과 정치의 말로 도배된 전쟁 대신, ‘침묵’되어온 어린이의 ‘전쟁’을 취재하고자 우크라이나에 머물렀다. 러시아군의 도심 공습으로 취재 일정이 취소되고 위험에 또한 노출되어야 했다. 그 나라 아이들은 2월부터 겪어오던 것이다. 방임, 학대, 차별, 기아, 온난화 따위 전세계에 차고 넘치는 위기 넘어 기어코 전쟁. 이 나라에서만 11월 초순까지 1천명 가까이 숨지거나 다쳤지만 이 수치는 되레 진실을 감춘다.
어린이·청소년의 위태로운 삶은 오감을 동원한 르포로도 재현되기 어렵다. 그 짧은 생애를 제대로 보자면, 그 생애가 이미 껴안아온 미래를 함께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이 책무를 ‘문학적 르포르타주’라 부른다. 위협에 맞서, 낙인과 차별에 맞서, 무모한 낙관주의에 맞서 아이들이 감당하는 세계에서 아동문학은 위로가 되는가, 양식이 되는가, 꿈이 되는가, 아니 최소한 증언의 방편은 되는가. 식민 시절 대한민국에 아동문학이 발원한 지 100주년, 미국, 스웨덴, 말레이시아 등 세계 국가들을 <한겨레>가 다니며 어린이문학의 쓸모를 물었다. 편집자주

키이우·보로댠카(우크라이나)·폴란드·말레이시아/글·사진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1회 ‘전쟁 너머 동심’ 1편은 2편으로 이어집니다.

☞다음주 2회 ‘차별 너머 다양성’이 나올 예정입니다.

※본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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