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속에도, 아이들에게 왜 사랑해야 하는지 말해줘야죠”

임인택 2022. 11. 28.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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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문학 100년 ‘쓸모’를 찾아서][어린이문학 100년 ‘쓸모’를 찾아서]
전쟁 너머 동심 3편 _ 우크라 동화작가 마리야 모로젠코 인터뷰
작가 마리야 모로젠코. 본인 제공
지난달 <한겨레>는 지도 위 메마른 전선, 살상의 수치, 어른과 정치의 말로 도배된 전쟁 대신, ‘침묵’되어온 어린이의 ‘전쟁’을 취재하고자 우크라이나에 머물렀다. 러시아군의 도심 공습으로 취재 일정이 취소되고 위험에 또한 노출되어야 했다. 그 나라 아이들은 2월부터 겪어오던 것이다. 방임, 학대, 차별, 기아, 온난화 따위 전세계에 차고 넘치는 위기 넘어 기어코 전쟁. 이 나라에서만 11월 초순까지 1천명 가까이 숨지거나 다쳤지만 이 수치는 되레 진실을 감춘다.
어린이·청소년의 위태로운 삶은 오감을 동원한 르포로도 재현되기 어렵다. 그 짧은 생애를 제대로 보자면, 그 생애가 이미 껴안아온 미래를 함께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이 책무를 ‘문학적 르포르타주’라 부른다. 위협에 맞서, 낙인과 차별에 맞서, 무모한 낙관주의에 맞서 아이들이 감당하는 세계에서 아동문학은 위로가 되는가, 양식이 되는가, 꿈이 되는가, 아니 최소한 증언의 방편은 되는가. 식민 시절 대한민국에 아동문학이 발원한 지 100주년, 미국, 스웨덴, 말레이시아 등 세계 국가들을 <한겨레>가 다니며 어린이문학의 쓸모를 물었다. 편집자주

프랑스 등에 견줘 발원은 늦었으나 18세기 후반부터 어린이청소년문학을 크게 발달시킨 나라는 영국이다. 중산층의 성장과 함께한 아동관 형성, 아동노동 규제, 아동기에 관한 첫 법적 정의 등 아동권의 성장과 맞물린다. ‘어린이’가 노동과 전쟁에서 열외되지 않는 ‘작은 성인’에서 점차 독자적 생애주기로 자리매김해간다. 특히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부각된 아동의 위기는 아동의 복지와 맞물리고 문학 또한 발달한다. ‘어린이’란 말이 태어나고, 최초 번역동화가 소개되며 공히 한국 아동문학 100주년이 잉태된 배경도 식민시대의 필연적 작용이었다.

어린이청소년문학은 어린이와 어른의 접점이기도 하다. 위기 속 아이들은 결결이 어른들보다 강해 보인다. 단, 기댈 만한 어른이 있을 때 그렇다. 그때 스스로의 강력한 생명력이 작동한다.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 지역에서 어린이들에게 카메라를 쥐여줘 자유롭게 찍게 하고 얘기 나누며 심리치료를 돕는 아르촘(단체 ‘비하인드 블루 아이스’ 소속)은 <한겨레>에 “아이들은 당장 고통을 주는 것을 애써 무시하면서, 꽃이나 동물, 친구같이 그들이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는 듯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내면 깊이 트라우마가 숨겨져 있고, 그건 몇 년 뒤 정확히 드러날 것이다”고 말했다.

작가 마리야 모로젠코의 책 표지. 본인 제공

이는 동화작가 마리야 모로젠코가 <한겨레>에 강조한 것과도 맥을 같이한다. 우크라이나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후보로도 올랐고, 카자크 민족(신화·영웅 등)을 소재로 다루며 인기 면에서도 이 나라 아동문학계를 대표할 이로, 지난 10월10일 러시아군의 도심 공습으로 취소된 대면 인터뷰를 이튿날 전화로 대신했다.

모로젠코는 “아는 작가의 10살 아들도 전쟁 때문에 자주 울고, 심한 심리불안 상태를 겪고 있다. 그만한 나이 때 전쟁이 아닌, 다른 해야 할 이야기가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것 자체가 불행이고 트라우마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쟁으로 학교 가기도 어려운 상황이고, 피난이나 일상적 대피로 정서가 핍진해지기 마련”이라며 “왜 사랑해야 하는가, 주위의 동식물, 세상, 사람을 왜 사랑해야 하는지 작가들이 더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을 이어간 이유다. “세상이 여전히 아름다운 곳이고 선한 일을 행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믿음”은 어른이 아이에게, 아이가 어른에게 증언해주는 것이 된다.

러시아군이 2월말 키이우로의 진격을 시도하며 수도권 일대는 한달 넘게 점 령당했다. 민간인만 1300명 넘게 숨진 부차로부터 10㎞ 거리의 이웃 마을 학교(네미샤이우 2번)에선 50여명의 아이들을 포함, 500명가량이 지하실에 숨어 목숨을 구했다. 실내는 10도 안팎에 불과했다. 학교장 제공

그는 “어린이문학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곧게 성장하도록 돕는다”고 본다. 지금껏 그가 만난 많은 아이들이 “어른들을 때로 가르치며” 그것을 증명해왔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지난 9월, 기획·편집자로서 20여명 작가들과 울력해 전쟁 중 아이들을 위한 단편집을 모아 펴내기도 했다. 책은 시판되지 못하고 도서관에만 입고된 상태이나 도서관조차 파괴되거나 공습을 피해 문을 닫고 있다. 이에 “작가들이 직접 책을 들고 아이들을 찾아가거나 온라인으로 읽어주고 있다”고 모로젠코는 말했다.

우크라이나 수도권에 위치한 네미샤이우 2번학교에서 러시아 침공 이후 폐기 목적으로 분류해둔 러시아 작가의 책들. 지난 10월11일. 톨스토이 등 대문호의 책들이 보인다. 임인택 기자

모로젠코가 쓴 단편엔, 집 없는 개 ‘콜카’를 무시하고 버려두는 어른들과 콜카를 돌보는 아이가 등장한다. 그에게 농담처럼 진심으로 물었다.

“콜카가 러시아 개라도 동화의 전개는 같겠는가?”

“…… 내 생각에 인간이 죄지 개는 죄 없다, 돌봐야 하지 않겠는가.”

우린 잠시 함께 웃었지만, 아이들은 그럴지언정 어른은 그러기 쉽지 않다는 것을 안다. 우크라이나는 전국 도서관의 러시아 서적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네미샤이우 2번학교 2층 도서관엔 푸시킨, 톨스토이 등 러시아 문호들의 서적 수백권이 구석에 쌓여 있었다. 책이 부족하다는 보로댠카 도서관 역시 버릴 목적으로 러시아 책들을 추려뒀다.

러시아어 작가도 지인으로 두고 있는 모로젠코가 말했다. “러시아 정부와 작가들을 구분해 보고 싶다. 파괴할 것인가, 보존할 것인가, 러시아의 문화 엘리트들은 생각해야 한다. 문학은 우리의 양심이다.”

키이우(우크라이나)/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다음주 2회 ‘차별 너머 다양성’이 나올 예정입니다.

※본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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