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서 봉쇄 반대 ‘백지 시위’… 수백명이 “자유 달라” 외쳤다

베이징/이벌찬 특파원 2022. 11. 28.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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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구 피켓 들면 공안이 압수... 알아서 생각하란 뜻도”
27일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베이징 도심서 시위

27일 오후 10시 30분 베이징시 차오양(朝陽)구 신위안남로(新源南路). 수백명의 베이징 시민들이 흰 종이를 들고 다니며 “베이징을 풀어줘라”, “PCR(유전자 증폭) 검사 대신 자유를 달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들이 들고 있는 종이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한 시민은 “피켓을 들면 경찰(공안)이 압수하기 때문에 빈 종이를 들 수밖에 없다”면서 “‘문구는 알아서 생각하라’는 의미도 있다”고 했다.

이날의 집단 행동은 중국이 2020년 ‘제로 코로나’ 정책을 시작한 이후 베이징에서 처음으로 열린 대규모 시위다. 고강도 코로나 방역에 반대하고, 당국의 정보 통제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시위의 기폭제는 지난 24일 발생한 신장 위구르 지역 아파트 화재 사건이다. 봉쇄 조치로 대응이 늦어 대규모 인명 피해를 냈다는 의혹이 일자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와 위챗(중국판 카카오톡)에서 청년층을 중심으로 이날의 시위가 자발적으로 조직됐다.

27일 밤 시작된 베이징의 반(反)봉쇄 시위에서 시민들이 항의의 의미로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흰 종이를 들고 있다./베이징=이벌찬 특파원

경찰은 시위대를 액자 틀 안에 가두는 것처럼 사방에서 에워싸며 방어했다. 도로 중앙은 시위대가, 가장자리 양쪽은 경찰이 자리를 잡고 함께 걸었다. 경찰차 수십대는 500m 길이의 도로 시작점과 끝지점에 차벽을 쌓았고, 갓길에는 일정 간격으로 차를 세워뒀다. 엄격한 통제에도 시위 소식을 듣고 베이징 시민들이 모여 들어 새벽 1시쯤에는 최소 700명이 넘는 인파가 도로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시위대의 구호는 점점 수위를 높여갔다. 처음에는 PCR 검사를 거부하자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지만, 밤 11시가 지나면서 “언론 자유를 보장하라” “말할 수 있게 하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정보를 고도로 통제하는 중국에서 이같은 구호는 자칫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될 수 있다. “상하이 시민들을 풀어달라”는 구호도 나왔다. 이날 상하이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에서 일부 시민들이 경찰에 잡혀 갔다는 의혹에 대해 항의한 것이다. “폭스콘”은 시위대의 추임새처럼 사용됐다. 지난 달 말과 이달 중순 코로나 봉쇄와 임금 문제로 대규모 소요가 일어난 정저우 폭스콘 공장에 지지를 표명한 것이다.

그러나 레드라인을 넘지는 않았다. 누군가 시진핑 국가 주석과 정부에 대한 비판을 시도하자 일제히 “우리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맙시다”, “함부로 말하지 말고 평화롭게 시위합시다”라며 제동을 걸었다. 시위 후반에는 “우리는 해외 세력이 아니라 중국 공민이다”, “우리는 평범한 베이징 시민이다”라는 구호가 주를 이뤘다. 이번 시위의 목적이 코로나 방역 완화 요구에 있고, 정치적이거나 폭력성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27일 저녁 9시 30분에 시작된 베이징의 반(反) 봉쇄 시위가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때 참여 인원이 700명을 넘은 것으로 추산된다./베이징=이벌찬 특파원

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대부분 20대 초반에서 30대 중반 사이의 청년들이었다. 중국에서 ‘인터넷 통제’를 뜻하는 ‘404:Not Found’란 문구가 적힌 마스크를 쓴 한 20대 초반 여성은 “오늘이 내 생애 첫 시위”라면서 “코로나 사태 이후 인터넷에 쓴 방역 비판 글들이 대부분 삭제되는 것을 보면서 직접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영화 산업에 종사하는 한 남성은 “지난 3년간 제로 코로나 때문에 중국의 문화 산업은 고사 직전”이라면서 “중국의 엘리트 문화 예술인 70% 이상이 베이징에 살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오늘 거리로 나왔을 것”이라고 했다. 한 여성은 생일 파티를 마치고 꽃을 들고 시위에 참석했고, 연인도 곳곳에서 보였다. 청년들은 주변의 경찰들을 의식하면서 “그 영상 봤느냐”, “그 글을 읽어봤느냐”라며 은어를 섞어 각종 코로나 관련 영상과 정보를 공유했다.

시위는 자정이 되자 마무리되는 분위기였지만,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 상당수는 새벽 2시가 넘도록 돌아가지 못했다. 경찰이 일부 시민을 연행할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경찰이 한 남성을 경찰차로 끌고 가려고 하자 시위대가 경찰을 에워싸고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했다. 사복 경찰로 추정되는 남성들이 뒤에서 시민들을 밀어 여러 명이 바닥에 넘어지는 사고도 발생했다. 일부 남성 시위 참가자들은 여성 시위 참가자들의 귀가를 도왔다.

27일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공유됐던 신장 위구르지역 화재를 추모하는 행사 포스터. 이날 밤 베이징에서 열린 대규모 반(半)봉쇄 시위는 이 포스터를 보고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몰려 나와 시작됐다./베이징=이벌찬 특파원

베이징의 시위는 수도에서 열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중국 전역의 반(反)봉쇄 시위에 비하면 상당히 온건한 편이었다. 중국 각지는 지난 25일부터 전례 없는 시위로 들끓고 있다. 27일 AP·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전날 밤 상하이 우루무치중루에서 최대 수천 명이 거리로 몰려 나와 신장 화재 사고로 10명이 숨진 것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였다. 로이터 통신은 이들이 “중국 공산당은 물러나라. 시진핑은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쳤다고 전했다. 이들의 시위는 이날 새벽까지 계속됐고, 공안이 최루탄 등을 쏘기 시작하자 해산한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상하이에서 사람들이 국가(國歌)를 부르며 ‘인민 경찰은 인민을 위한 것이다’, ‘구금자를 석방하라’, ‘인민 만세’ 등의 구호를 외쳤다”고 했다. 지난 25일에는 우루무치 주민들이 현지 정부청사 앞에서 “봉쇄를 해제하라”고 외치고 국기를 들고 가두 행진을 하는 영상이 소셜미디어에 올라왔다. AFP 통신은 27일 베이징 칭화대에서 수백 명의 학생이 코로나 봉쇄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고 보도했다. 베이징대, 난징촨메이대학 등에서도 최근 학생들의 평화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청년 중심의 시위가 정부에 대한 도전으로 해석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주축인 청년들이 모이는 것이 과거의 정치 사건들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일시적인 봉쇄 해제 조치로 시민들의 분노를 잠재우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중국의 중소도시 의료 인프라가 대규모 감염자를 치료할 시설을 갖추지 못했고, 80세 이상 노인들의 백신 접종률(2차 접종 완료 기준)이 65.7%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mRNA 계열 백신(모더나·화이자)도 허가하지 않은 상태다. 대규모 코로나 사망자가 발생하면 정부가 축소 보고하더라도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상황에서 언로를 막기도 어렵다. 2020년 우한 봉쇄 당시 중국 당과 정부는 유명 작가 팡팡이 우한 참상을 고발한 일기인 ‘우한일기’, 코로나 발생 사실을 가장 먼저 외부에 알리고 사망한 ‘리원량’ 추모 등으로 크게 곤욕을 치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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