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현직 대통령 지키기’ 야합, 집회·시위 자유 후퇴시켰다
[주간경향] 용산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가 원천적으로 금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직 대통령의 사저 인근의 집회·시위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대통령과 문재인 전 대통령을 보호하기 위한 여야의 ‘야합’이 빚어낸 결과다.
지난 5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 금지 문제가 논란이 됐다. 문 전 대통령 퇴임 후 그의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 인근에서는 극우 단체의 집회·시위가 끊이질 않았다.
여야는 최근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을 개정해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의 100m 이내에서는 집회·시위를 전면 금지토록 하는 데 합의했다. 여야가 거래를 통해 서로의 이득을 챙기려는 것이다. 그러나 집회·시위 자유가 후퇴하면서 그 피해는 오롯이 시민의 몫이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기본권을 이렇게 손쉽게 거래하나”
여야는 지난 11월 23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제2소위원회를 개최해 그간 발의된 집시법 개정안 등을 논의했다. 여야는 소위에서 개정안들 가운데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의 사저’ 주변 100m 이내에서 집회·시위를 원천 금지하는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현재 집시법 제11조 제3호는 대통령 관저, 국회의장·대법원장·헌법재판소장의 공관 등의 100m 이내에선 집회·시위를 할 수 없도록 규정한다. 구자근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4월 이 조항에 대통령 관저를 ‘대통령 집무실 및 대통령 관저’로 변경하는 내용이 담긴 집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월 집시법 제11조에서 규정한 100m 이내 집회금지 장소에 ‘전직 대통령 사저’를 새로 추가하는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여야는 이번 소위에서 두 의원이 발의한 집시법 개정안에 공감대를 이뤘다. 다음 달 초 행안위 전체회의에 이 개정안을 상정할 방침이다. 행안위 관계자는 “전체회의에서 법안에 손을 대지 않고 그대로 통과시킬 것으로 본다”며 “향후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되는 절차를 거친다”고 말했다. 여야가 이견이 없는 만큼 본회의를 통과하는 데 큰 지장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여야의 이번 합의를 두고 시민사회단체에서는 “개탄스럽다”는 반응이 나왔다. 전·현직 대통령을 위해 집회금지 장소를 확대하는 것은 시민의 집회·시위 자유를 후퇴시키는 행태라는 비판이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 용산으로 온 것은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취지였는데, 가장 중요한 방식인 집회를 못 하게 해버린 것”이라며 “막대한 비용을 들여 대통령실을 옮길 이유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민주당을 향해서도 “전직 대통령 한 사람의 안녕을 위해 국민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집회·시위의 자유를 희생시킨 행태”라며 “더군다나 ‘촛불 정부’를 자처하는 민주당이 이렇게 국민의 기본권을 손쉽게 거래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국회가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2020년 집시법을 개정할 때 상황도 다시 소환됐다. 헌법재판소는 2018년 국회의사당과 각급 법원, 국무총리 공관의 100m 이내에서 집회를 금지하는 집시법 조항을 두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국회는 2020년 5월 집시법을 개정했다. 이들 공간 주변 100m 이내에서 원칙적으로 집회를 금지하고, 예외적으로만 허용토록 했다. 당시 “원칙적 금지, 예외적 허용은 헌재 결정 취지에 어긋나는 개악”이라는 비판이 나왔다.
참여연대는 지난 11월 24일 논평을 내고 “헌법재판소의 2018년 결정 이후 집회 허용의 예외 규정을 두는 쪽으로 집시법을 개정했는데, 이 또한 경찰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집회의 자유가 침해될 가능성이 상존해 헌재의 결정 취지조차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었다”라며 “항의 대상에게 보일 수 있고 들릴 수 있는 거리에서 집회를 개최할 ‘집회장소 선택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위헌성은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대통령의 집무공간과 전직 대통령의 사저 앞을 절대적 집회 금지구역으로 설정한 것은 퇴행이자 반헌법적 행태”라고 지적했다.
기본소득당 측도 “집시법 11조 폐지 법안을 발의한 상황에서 이런 합의가 나와 유감”이라며 “앞으로 전체회의에서 집회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찰 “관저=집무실” 자체 해석
이번 합의는 용산 대통령실 앞과 문 전 대통령의 사저 주변의 집회·시위를 막아야 하는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취임한 이후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면서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를 금지할 명확한 법적 규정이 없었다. 기존 청와대와 달리 현재는 대통령의 집무실과 관저가 공간적으로 상당히 분리됐기 때문이다. 집시법 제11조는 ‘대통령 관저’로부터 100m 이내의 장소에서는 집회·시위를 못 하도록 규정하지만 ‘대통령 집무실’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없다.
경찰은 일단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를 금지해왔다. 관저의 개념에는 집무실도 포함된다고 자체적으로 해석했다. ‘성소수자 차별 반대 무지개행동’은 지난 5월 14일 용산 대통령실 앞을 행진하는 내용이 포함된 집회를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그러나 집무실도 대통령 관저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행진의 금지를 통고했다. 무지개행동은 경찰의 금지통고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본안소송을 제기하면서 금지통고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는 가처분 신청도 냈다.
법원은 대통령의 관저와 집무실은 구분해야 한다며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법원은 “관저의 사전적 정의, 집시법 금지 조항의 입법 취지와 목적, 대통령 관저와 집무실이 같은 공간에 있던 입법 연혁 등을 고려해도 집무실이 관저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문언의 통상적 의미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판시했다. 법원은 다만 대통령실 인근이 교통정리와 경호 등을 이유로 “행진 구간은 최대한 신속히 통과해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경찰은 이후에도 대통령실 앞 집회 등에 금지통고를 내렸다. 법원은 그때마다 제기된 가처분 소송에서 집회를 허용하는 일을 반복했다. 이런 사례는 최소 7건 이상으로 파악된다. 법원은 몇차례 결정례가 쌓이자 당사자의 주장을 법정에서 직접 듣는 심리조차 열지 않았다. 양측이 제출한 자료만 검토한 뒤 ‘집회 가능’ 판단을 내렸다.
경찰은 지난 6월 약간의 입장의 변화를 보였다. 규모가 500명 이하이고 안정적인 집회 관리가 가능하면 대통령실 앞 집회도 허용한다는 것이다. 이 또한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인 ‘트랜스해방전선’이 지난 11월 20일 ‘트랜스젠더 추모의 날’을 맞아 녹사평역 이태원광장에서 출발해 대통령실 앞길을 행진하는 내용 등의 집회를 신고했다. 경찰은 ‘관저=집무실’이라는 이유를 들어 대통령실 바로 앞을 지나는 구간의 행진은 금지했다. 법원은 그러나 이 구간에서도 행진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행진 구간을 신속하게 통과해야 한다’는 조건조차 이번엔 없었다.
경찰은 그럼에도 본안소송의 결과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가처분 소송에서 법원이 일관되게 경찰의 논리는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본안소송에서도 경찰이 패소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경찰 입장에선 당장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를 막을 뚜렷한 방책이 없는 셈이다.
이런 와중에 경찰이 교통혼잡을 이유로 집회·시위를 금지할 수 있는 주요 도로를 재정비하려고 시도하면서 논란이 됐다. 집시법 제12조는 경찰이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 교통소통을 위해 집회·시위를 금지하거나, 교통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의 범위는 집시법 시행령에 담겼다. 현재 전국 20개 시·도의 88개 도로가 대상이다.
경찰청은 이번에 도로 16개를 추가 지정하고, 기존 도로 14개는 제외하려고 했다. 주목할 점은 새롭게 추가된 도로에 이태원로가 포함됐다는 것이다. 이태원로는 용산 대통령실 앞을 지나는 도로다. 경찰은 이런 내용의 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 11월 7일 국가경찰위원회 정기회의에 상정했다.
경찰위는 원안대로 통과시키지 않고 재상정할 것을 의결했다. 경찰위는 “상정안 내용은 국민의 집회·시위 자유를 제한하는 측면이 있으므로 담당 부서에서 제한하는 범위에 대한 기준이나 사유를 보다 상세하게 보강한 뒤 재상정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재상정 결정은 흔치 않다. 올해 들어 지난 11월 7일까지 경찰위 정기회의에 상정된 경찰의 주요 계획 및 법령안 87건 가운데 재상정 의결은 총 4건에 불과하다.
시민사회단체도 ‘관저=집무실’이라는 논리가 법원에서 막히자 우회로를 통해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를 금지하려는 ‘꼼수’라고 비판했다.
경찰청은 그러나 집시법 시행령 개정안은 대통령실 앞 집회·시위와는 무관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지방 시·도청에서 청사 이전 등에 따라 집회 장소도 변경돼 이런 현실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많이 받았다”라며 “개정 작업이 8년 만에 이뤄지고 대통령실 앞 집회 금지 여부가 논란이 되는 상황이 공교롭게 겹친 것일 뿐, 지난 1년 동안 검토해온 사안”이라고 말했다.
또 안건을 재상정한다고 해도 이태원로를 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이 관계자는 “최근 5년간의 집회·시위 건수, 평균 통행속도 등 2개 기준을 일관성 있게 적용한 결과”라며 “이태원로는 집회·시위가 많이 늘어 이런 기준에 부합한다”고 했다.
이번에 여야가 대통령 집무실도 100m 이내 집회를 금지하는 장소에 추가키로 합의하면서 이런 논란은 모두 정리될 것으로 예상된다. 집시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 시행되면, 법원에서 진행 중인 본안소송의 결과가 나오더라도 이미 대통령실 앞 집회가 불가능해졌기 때문에 실익이 없게 된다.
“집시법 제11조 폐지해야”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5월 퇴임 후 사저 주변에서 보수 유튜버들과 단체들의 시위로 고충을 겪었다. 마을의 다른 주민들까지 소음 등으로 인해 고통을 호소했다. 대통령 경호처는 지난 8월 문 전 대통령 사저 인근의 경호구역을 확장하면서 사저 주변 300m 이내에선 집회·시위가 금지되기도 했다. 김진표 국회의장의 건의에 윤석열 대통령이 호응하면서 내려진 조치다. 대통령경호법에 따른 경호구역 확장은 다만 본질적으로 집회·시위를 제한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어서, 이번 여야 합의에 따라 집시법이 개정되면 사저 주변에서 집회·시위를 금지할 수 있는 명확한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는 의미가 있다.
그간 시민사회단체와 국회에서는 집시법 제11조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던 상황이었다. 근본적으로 집회금지 장소를 두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은 2017년 6월 이재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6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바 있다.
참여연대는 2018년 1월 대통령 관저 100m 이내에서 집회를 무조건 금지하는 조항을 두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서울중앙지법도 그해 12월 같은 내용의 위헌법률심판을 헌재에 제청했다. 두 사건은 지금까지 한차례 변론도 열리지 않고 계류 중이다. 헌재는 “쟁점이 많고 사안이 복잡해 심층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또 ‘100m’라는 기준을 두고도 논란이 돼왔다. 근거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1962년 집시법이 처음 제정됐을 당시엔 주요 국가기관의 200m 이내에서 집회를 열지 못하게 했다. 1989년 4월, 200m가 100m로 축소됐다.
2020년 4월 29일 민갑룡 당시 경찰청장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위원들의 질의에 “100m 부분은 유래를 살펴보니까 투척 경기에서 세계기록 등을 감안해서 투척할 수 있는 거리가 100m이다. 창은 세계기록이 98m, 해머는 84m로 나온다”라고 답했다. 이어 “그래서 이런 위험한 물건을 던졌을 때 도달 가능한 거리가 100m쯤에 이르니까 이 정도는 이격이 돼야 한다는 점에서 100m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했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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