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길, 산티아고] 사랑의 감옥에 갇힌 돈키호테의 1대 300 결투

금기연 2022. 11. 28.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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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 시합 축제의 기원이 된 일화.

창 시합 축제의 기원이 된 일화

커브와 경사, 19개의 서로 다른 아치가 특징인 '푸엔테 데 오르비고' 는 스페인에서 길고 오래 된 다리 중 하나입니다. 돈키호테의 모델 격인 15세기 기사 '돈 수에로 데 키뇨네스'는 한 여인을 사랑했으나 응답을 받지 못하자 스스로 사랑의 감옥에 갇혔다며 매주 목요일 자신의 목에 쇠사슬을 걸었답니다.

그는 이 다리에서 창으로 결투해 300명을 이기면 쇠사슬을 벗겠다고 왕 앞에서 맹세했답니다. 창 대결은 실제로 한 달간 이어졌습니다. 판관이 한달간 이긴 것으로 봐서 충분히 300명을 이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인정해 결투는 끝을 맺었습니다. 두 개의 돈 수에로 원기둥 기념비가 있는 다리 옆 광장에서는 매년 창 시합 축제가 열립니다.

성모 발현 기념성당(무씨아) 내부

성모 발현 기념성당(무씨아) 내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세상 끝까지 가서 선교를 했지만 결과가 한심해 울고 있던 야고보. 돌로 된 배를 타고 마리아께서 나타나 위로하셨다는 바로 그 장소에 세워진 성당입니다. 특이하게 제단 정면 중앙에 성모님이 타신 작은 배가 있고, 2013년 벼락으로 소실되었던 천장은 말끔하게 단장되어 있습니다.

제단 옆으로 몇 척의 모형 배가 눈길을 끕니다. 성당 밖에는 2002년 좌초되어 침몰한 유조선의 해난 사고를 잊지 않기 위해 두 동강 난 배를 형상화한 기념물과 0.00km 표지도 있습니다.

공립 순례자숙소 입구

환영합니다

어느 공립 순례자숙소 입구에 붙어 있는 환영 표지입니다. 전 세계에서 많은 순례자들이 몰려오는 가운데 자랑스러운 우리 한글로 된 환영 문구를 보거나 K-pop 등 한류를 접하게 되면 저절로 어깨가 올라갑니다.

순례 도중 받는 질문 중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 "왜 한국 사람이 이렇게 많이 오느냐?"입니다. 한국 순례자의 수가 다른 아시아인 순례자 전체를 합한 것보다도 훨씬 많다는 통계도 있으니 그럴 만도 합니다. 종종 한국인을 만나면 정보를 나누고 같이 맛집을 가거나 함께 한국요리를 만들어 먹는 즐거움도 누립니다.

순례자 숙소 '알베르게'

순례자 숙소 '알베르게'

전형적인 공립 알베르게 내부입니다. 2층 침대가 여럿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코로나로 요즘은 거리를 띄워 침대수도 줄였다고 합니다. 선착순으로 침대를 선택하는 곳도 있고, 지정해 주는 곳도 있습니다. 통상 젊은 사람이 2층에서, 노인과 여성이 아래 충에서 지냅니다. 대개 취사공간과 도구가 따로 있습니다. 세탁기나 손세탁장, 샤워장도 있습니다.

꽤 좁거나 불편한 경우도 있습니다. 가끔씩 코골이의 피해도 입지만 상관없이 다들 곯아떨어집니다. 종일 걸었으니까요. 비용이 배쯤 되는 사립을 택하면 훨씬 쾌적해집니다.

완주 증명서

완주 증명서

도보로 100km 이상 걷거나, 자전거로 200km 이상 달려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한 것이 입증되면 라틴어로 된 완주 증명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본 콤포스텔라 대성당의 주교는 -중략- 순례자 ㅇㅇㅇ이 신성한 성당에 경건한 의도로 충심으로 방문하였음을 증명하고 전달한다'는 내용입니다.

별도 건물에서 발행하는 증서를 받기 위해 늘어선 줄이 엄청 길어 몇 시간씩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순례길에서의 시간이 그만큼 강렬한 추억으로 새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슈퍼마켓

슈퍼마켓

대부분의 시간 동안 인적이 드문 곳을 지나는 순례길에서는 원하는 때에 먹고 마실 것을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배낭 안에 최소 한 끼의 비상식량과 마실 것을 항상 예비로 준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특히 주말엔 문을 열지 않는 가게가 많으므로 유의해야 합니다.

그래서 무언가를 살 수 있는 곳을 만나면 정말로 반갑습니다. 더군다나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성해지는 슈퍼마켓에 들르면 그야말로 즐겁습니다. 시장 가기를 싫어하는 국내에서와는 달리 마트 표지를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순례길입니다. 한글로 된 슈퍼마켓 표지로 순례객 중 한국인의 위상을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월간산 11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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