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모든 조가 죽음의 조가 됐다[월드컵 돋보기]
월드컵에서 ‘죽음의 조’는 대략 두 가지였다. 두 개 팀이 아주 강하거나 세 개 팀이 엇비슷한 경우다. 두 개 팀이 아주 강하면 다른 두 개 팀은 죽음을 맛본다. 전력이 엇비슷한 세 개 팀이 같은 조에 속하면 세 개 팀 누구나 탈락을 경험할 수 있다. 드물지만 전력이 비슷한 네 개 팀이 한 조에 묶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죽음의 조다.
월드컵 조편성이 결정될 때마다 어김없이 죽음의 조가 거론된다. 카타르월드컵 조편성 때에는 B조가 죽음의 조로 꼽혔다. 잉글랜드(5위), 미국(16위), 웨일스(19위), 이란(20위)이 한 조다. 잉글랜드 1강, 나머지 3중이다. 네 개 팀 FIFA 랭킹 합계는 60위로 여덟 개 조 중 최저다. E조도 죽음의 조라 했다. 일본(24위), 스페인(7위), 독일(11위), 코스타리카(31위)가 같은 조다. 스페인, 독일 2강에 일본, 코스타리카 2중. E조 FIFA 랭킹 합계도 73위로 무척 낮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죽음의 조는 극히 상대적 개념이다. 잉글랜드가 보기에는 B조는 희망의 조일 수 있다. 스페인, 독일도 자신들이 죽음의 조에 속했다고 여기지 않는다. 이들은 내심 조편성이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월드컵이 시작되자 상황은 완전히 변했다. 사우디아라비아(51위)가 아르헨티나(3위)를 꺾었다. 일본도 독일을 제압했다. 한국(28위)은 우루과이(14위)와 비겼다. 일본은 스페인에 0-7로 참패한 코스타리카에 졌다. 모로코(24위)는 벨기에(2위)를 2-0으로 눌렀다. 무난히 16강에 오르리라 예상된 다수 강호들이 주춤거린다. 모두 언더독에 한 방씩 얻어맞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월드컵에서 모든 조가 죽음의 조가 될 것 같다.
축구는 희소성이 높은 소수 골로 승부가 갈리는 종목이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슛이 골대를 몇 번 때리면 질 수도 있다. 시종일관 밀리다가 역습 한방으로 이길 수도 있다. 이처럼 축구에서 승부는 객관적 평가와 일반적 예상을 크게 빗나가는 경우가 적잖다. 그런 의외성이 축구가 다른 구기 종목에 비해 큰 편이다. 발로 공을 다루는 데서 나오는 원초적 불안정성, 언제 어디서나 볼을 빼앗길 수 있는 불안감이 재미와 긴장감을 더한다.
축구는 구기 종목 중 민주적인 편이다. 키가 크다고, 힘이 세다고 이길 확률이 높지 않다. 기본적으로 신장의 한계를 기량으로 극복하기 무척 힘든 농구, 배구와 다르다. 리오넬 메시와 같은 작은 선수가 큰 선수를 농락하는 걸 자주 본다. 몸집이 작은 선수들이 한 뼘이나 큰 선수들을 꺾은 경우도 적잖다. 약소국이 대국을 꺾을 수 있는 대표적인 단체종목이 축구다. 축구는 국토가 크고 인구가 많다고 경제적으로 풍족하다고 잘 할 수 있는 종목이 결코 아니다.
사람들은 왜 축구에 열광할까. 왜 축구장에 가려고 할까. 그건 누가 이길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팀도 불안하고 약팀도 희망을 잃지 않는다. 앞서고 있어도 초조하고 뒤지고 있어도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게 축구다.
카타르 월드컵이 조별리그 2차전을 마무리하고 있다. 3차전까지 마치면 절반은 돌아가고 절반만 남는다. 16강부터는 토너먼트다. 잔류한 16강도 잠시 연명했을 뿐 한 번만 지면 탈락이다. 토너먼트는 내용이 다소 투박하고 단순할 수 있지만, 긴장감은 더욱 크다. 아무리 강호라고 해도 일단 경기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반면, 약체는 잃을 게 없다며 모든 걸 걸고 무섭게 달려든다. 누가 이길지 도무지 알 수 없다. 언더독의 잇단 반란 덕분에 카타르월드컵이 무척 흥미로워졌다.
김세훈 기자 shkim@kyunghyang.com
Copyright © 스포츠경향.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스경X초점] “또 업계 평가?”…하이브, 내부문서 추가 유출설에 ‘발칵’
- 박수홍♥김다예, 신생아 촬영 직원 지적→삭제 엔딩…여론 의식했나
- 안현모, 이혼 후 심경 고백 “너무 좋아”
- 필라테스 강사 출신 배우 양정원, 사기 혐의 고소당해
- [스경X이슈] ‘나는 솔로’ 23기 정숙, 하다하다 범죄전과자까지 출연…검증 하긴 하나?
- 94년생 아니었다…‘93년생’ 한소희, 실제 나이 속였던 이유
- [공식] 김예지, 테슬라 앰배서더 됐다
- [스경X이슈] ‘흑백요리사’ 출연진, 연이은 사생활 폭로…빚투→여성편력까지
- 안영미, ‘젖년이’ 패러디→욕설 논란 후 의미심장 SNS…접시 위 얼굴
- 홍진경, 조세호 축의금 얼마했나 봤더니 “120만 원 이상” (차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