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진보지식인의 일침 "이태원 명단 공개, 정의롭지 않아"

조철희 기자, 김수빈 전문위원 2022. 11. 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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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란 무엇인가] 글로벌 석학 인터뷰① - 엘리자베스 앵커 美 조지워싱턴대 교수

[편집자주] 새 정부의 국정철학 중 하나가 '자유'이지만, 우리 사회 저변에선 고민과 토론이 드물다. 반면 자유 사상의 발상지인 서구 사회에선 자유에 대한 논쟁과 새로운 모색이 끊이질 않는다. 이 시대엔 자유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자유의 가치와 이상을 실제 삶에서 실현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 글로벌 석학들과 인터뷰한 <자유란 무엇인가> 시리즈를 연재한다.


지난 수년 간 우리 사회 가치 담론의 중심에 '공정'이 있었지만 어느새 그 자리는 '자유'로 바뀌었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패권경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자유주의 진영과 독재주의 진영의 대결이 더욱 치열해져 우리는 자유를 더욱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대내적으로는 자신의 욕망을 숨기지 않는 젊은 세대들이 자유의 가치를 알기 시작했다. 정권이 자신의 주거, 투자 등을 제한할 때 자유를 빼앗겼다며 분노하고, 선거 때 투표로 응징한다.

지금 자유는 새 정부의 국정철학을 넘어 우리들의 앞날을 좌우할 시대정신이 됐다. 그렇기에 사회 저변에서 진지한 토론과 진전된 방향의 모색, 실질적인 실천 활동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런 것은 부진한 대신 때때로 용어 자체만 정쟁의 인질로 잡혀 본질과 의미가 오히려 변색되고 있다. 공정, 정의, 평등 같은 용어가 본래의 의미를 잃고 남용됐던 과거를 거울삼아 자유 담론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세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미국의 진보적 젊은 지성으로 손꼽히는 Elisabeth Anker(엘리자베스 앵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교 정치학·미국학 교수는 미국 사회가 추구해야 할 자유의 엄밀한 가치와 실천 방향을 세밀하게 연구, 올해 초 'Ugly Freedoms'(추악한 자유)를 출간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 역사에서 자유라는 용어가 지닌 의미와 가치가 어떻게 변천해 왔는지를 연구해 온 앵커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시민들이 자유와 같은 이상적 용어와 가치 개념들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앵커 교수는 머니투데이와의 인터뷰에서 "자유에 대해 누구의 생각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자유의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며 "자유의 개념은 특정한 국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사회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 형태를 만들어 간다"고 말했다. 또 '인권'이나 '언론의 자유' 등과 같이 지고지상하게 여겨지는 용어와 개념도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며 "누군가의 인권이 보호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의 인권은 짓밟히고 있는 것이 아닌지 항상 살펴보면서 인권이라는 가치와 이상이 특정 집단의 타락을 정당화하는데 쓰이지 않도록 잘 지켜내야 한다"고 했다.

앵커 교수는 최근 국내 매체인 더탐사·민들레가 책임 규명, 언론 책무 등을 이유로 들며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것과 관련해선 "특정한 행위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입을 것을 알고 있다면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며 "보도를 한 것이 정의 구현을 위한 의도라면 개별 유가족들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이 아닌 다른 대안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앵커 교수와 함께 이 시대의 자유란 무엇인가에 대해 본질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눠봤다. 다음은 앵커 교수와의 일문일답.

엘리자베스 앵커 조지워싱턴대 교수


- 최근 국제사회에서 자유주의 진영의 연대가 강조되고, 한국의 경우 대통령이 '자유의 확대'를 연일 강조하고 있다. 자유의 확대를 위해 가장 먼저 노력해야 할 점은 무엇인가.

▶민주주의적인 측면이나 젠더 문제에선 자유가 확대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일례로 투표권의 경우 최근 60년래 그 어느 때보다 제한된 상황이다. 이런 걸 보면 자유가 자연히 확대되는 것만은 아니다. 자유에 대해서는 누구의 생각이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 자유의 영향에 주목해야 한다. 누가 이익을 얻고, 누가 손해를 보는지 살펴봐야 한다. 자유를 위한다는 주장만 듣고 특정한 사람이나 특정한 정책에 '프리패스'(free pass)를 주지 말고 그 전에 항상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최고경영자)를 예로 들면, 그는 트위터를 인수하면서 언론의 자유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언론의 자유가 아니라 언론에 대한 학대에 가깝다. 인종과 젠더에 대한 학대이며 힘없는 사람들을 해롭게 하는 것이다. 그저 언론의 자유라고 해서 프리패스를 줘서는 안된다. 머스크가 언론을 위한다고 거짓 주장을 하는 것에 프리패스를 줄 수는 없다. 해를 끼치는 형태의 자유에 대해서는 용기내 목소리를 높여 지적해야 한다.

- 최근 언론의 자유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는 한국에선 특정 매체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희생자 전체 유가족의 동의 없이 공개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정의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충돌인 것 같다.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쪽에선 정의 구현을 위해 정부의 더 많은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일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가족의 이름이 공개되는 것에 동의하지 않은 유족들에게 그것은 정의롭지 않은 것일 수 있다. 그들을 위한 정의도 있는 것이다.

어느 누구라도 특정한 행위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면 방법을 달리해야 한다. 보도를 한 것이 정의 구현을 위한 의도라면 개별 유가족들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이 아닌 다른 대안도 있었을 것이다. 실질적으로 영향을 받을 대상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거나, 공동체와 개인의 이해관계 사이에 균형을 맞출 대안을 고려하지 않은채 공동체 또는 개인 중 하나만 우선시할 때 충돌이 발생한다.

- 지고지상하게만 여겨지던 언론의 자유에 대한 비판적 관찰과 수용을 강조한 대목이 날카롭게 들린다. 한국 사회에선 특정 세력이나 집단이 자유 외에도 인권, 공정, 평등, 정의 같은 용어들을 남발했고, 그것을 비판적 판단 없이 수용하는 이들도 적잖았다.

▶인권이라는 말도 단지 인권을 주장한다고 해서 프리패스를 줘서는 안된다. 지금 누군가 말하고 있는 인권이 과연 자유를 위한 것인지, 혹시 다른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우리는 항상 물어야 한다. 누군가의 인권이 보호되는 동안 다른 사람들의 인권은 짓밟히고 있는 것이 아닌지, 누구의 권리는 보호되고 다른 사람의 권리는 침해당하고 있지는 않는지 항상 질문해야 한다. 인권이라는 가치와 이상이 특정 집단의 타락을 정당화하는데 쓰이지 않도록 잘 지켜내야 한다. 자유와 마찬가지로 인권이라는 말이 실제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 미국 역사에서 자유의 의미와 가치가 어떻게 변해 왔는지 연구해 온 당신은 최근 '추악한 자유'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어떤 의미인가.

▶자유의 의미에는 오랜 역사가 있다. 자유는 개인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것, 개인의 책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동등하게 사회에 참여하는 것, 억압에서 해방되는 것, 독재를 종식시키는 것이다. 자유는 이처럼 여러 가지로 정의되지만 최고의 정치적 이상 중 하나로 여겨져 왔다. 누군가 자유를 위해 행동한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선한 것, 긍정적인 것, 스스로와 사회를 위한 최선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른 나쁜 것일 수도 있는 자유조차 계속 이상적으로 간주되는 방식이 추악한 자유다. 특히 미국의 맥락에선 지배와 억압을 정당화하기 위해 말하는 자유가 추악한 자유다. 과거 미국에서 자유는 노예제를 정당화하는 용어이기도 했다. 백인들이 자신의 소유물로 여긴 노예들을 데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백인 주인들의 자유였다. 실제로 자유가 폭력과 만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용되는 것을 자주 목격한다.

추악한 자유는 '자유라는 높은 이상에 부합하니 괜찮다'고 하면서 프리패스를 준다. 자유라고 불리면서 프리패스를 받는 것, 자유라고 주장하지만 확인되지는 않은 것들, 다양한 형태의 만행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유라는 용어가 남용되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나는 추악한 자유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 추악한 자유의 구체적인 사례를 든다면.

▶미국 일부 지역에는 학교에서 인종차별의 역사, 성차별의 역사, 이성애를 넘어서는 성 정체성에 대해 교육해선 안된다는 법도 있다. 학생들이 상처를 받게 되고, 특히 학생들의 지식의 자유를 제한하기 때문이라며 금지한다. 플로리다주의 교육자유법은 부모의 자유를 근거로 이런 교육을 금한다. 부모들이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인종이나 성에 대해 가르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것을 가르치는 사람은 부모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교사가 그런 내용을 가르치면 부모가 교사를 신고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정작 소외되는 것은 아이들일 뿐이다. 이같은 추악한 자유는 아이들의 학습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미국 역사의 프로파간다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려는 시도다.

19세기 때의 법은 아내를 때릴 수 있는 것이 남편의 자유라고 했다. 아내에 대해 제약이 필요하다면 남편의 결정에 따라 그렇게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당시 믿기 어려울 정도로 추악한 자유는 아내의 외출을 남편이 물리적으로 제약할 수 있는 자유다.

- 개인도 자신의 이기적인 이익을 위해 자유를 정당화의 수단으로 삼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미국에서 코로나19 팬데믹 때 의무적인 마스크 착용이 논란이 됐다. 그것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할 자유가 있고 정부는 나를 강제할 수 없다'는 미국 개인주의의 오랜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개인의 자유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며 타인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은 자유를 올바르게 이해한 것이 아니다. 자유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마스크를 쓰는 것은 자유롭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를 위한 일이다.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는 이들은 자신이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여기거나, 마스크를 쓰는 것은 자신이 피해를 입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누군가 나 때문에 피해를 입지는 않을지 자문하지는 않는다. 자유의 확대에 대한 우려를 얘기할 때는 그 자유가 잘못된 것을 개선하는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악화시키는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이는 실질적인 자유에 대해서 항상 해야 할 질문이다.

따라서, 큰 틀에서 내 사상이 그렇지만, 자유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는 자유의 행사에 따른 영향이 무엇인지를 비판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자유를 말하는 것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그들을 제한하는 것이 될지, 차별을 더 심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차별에 더 맞서게 될 것인지를 말이다.

- 자유의 실질적인 확대를 위해 미국 사회에선 어떤 노력들이 이뤄지고 있는가.

하원은 통과했지만 상원에서 막힌 The Freedom to Vote Act(투표자유법안)이라는 게 있다. 자유의 확대를 위한 법안이다. 미국에선 선거일이 공휴일이 아니라 빈곤층 유권자들은 투표소에 가기 어렵다. 투표를 하겠다면 직장을 잃을 각오를 하거나 투표를 하는 대신 임금은 받지 못하는 선택지 뿐이다. 그래서 투표자유법안은 선거일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빈곤층 뿐만 아니라 소수자, 유색인종이 투표하기 어렵게 만드는 차별적인 제약들이 많아 투표자유법안은 어느 사회적 지위든, 어느 주에 살든, 해외에 살든, 차별은 모두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미국은 자유 국가다.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투표권이 최대한 확대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투표권 확대를 모색하는 시도는 정치적·사회적 발언권이 없다면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시민권 운동도 상징적인 사례다. 이 운동이 아니었다면 미국에서 흑인의 자유가 쟁취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투표권 확대를 비롯해 균등한 일자리 기회, 차별 철폐, 빈곤 퇴치 운동은 자유가 모든 사람들이 풍요로운 삶을 누리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미국에서 발전했던 자유 이념에 대해 최근 더욱 깊게 고민해야 하게 된 한국의 시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유는 많은 부분에서 실제로 초국가적인 성격을 띈다. 미국에서 강력하게 작용하는 자유의 개념은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국가뿐 아니라 1600년대 중앙아메리카 카리브해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노예해방 관련)에 관한 토론에도 등장한다. 그리고 카리브해에서의 개념이 아시아와 한국에서도 변형되고, 근본 개념들이 계속해서 서로 뒤섞이고 있는 형태다.

각국마다 고유한 역사가 있지만 한 국가에만 고유하게 또는 특정하게 적용되는 자유의 개념은 없다. 자유의 개념은 여러 측면에서 글로벌한 특징을 보인다. 자유의 개념은 늘 순환한다. 각기 다른 사회의 다양한 개념이 계속해서 매순간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그 형태를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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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철희 기자 samsara@mt.co.kr, 김수빈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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