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현충원의 가짜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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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피그말리온이란 인물이 나온다.
그렇다고 모든 현상에서 피그말리온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이는 기적이지 피그말리온 효과가 아니다.
인간은 꽃을 사랑·존경 그리고 애도의 표시로 사용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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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에 피그말리온이란 인물이 나온다. 키프로스 섬의 조각가였던 그는 자신이 바라는 이상형의 여성을 조각했다. 그는 그 조각상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이 조각상을 닮은 여인을 제 짝으로 보내주십시오’라고 기도했다. 그의 진심에 감동한 여신은 그 조각상을 진짜 사람으로 만들어줬다. 간절한 믿음과 기대가 불가능한 일도 실현한다는 심리를 피그말리온 효과라 한다. 그렇다고 모든 현상에서 피그말리온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다. 죽은 사람을 살려달라는 기대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이는 기적이지 피그말리온 효과가 아니다.
서두부터 피그말리온 효과를 꺼낸 이유는 국정감사에서 믿기 어려운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올 10월24일 국방부 종합감사에서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충남 서산·태안)이 국립현충원에서 매년 1억5000만원씩 중국산 조화를 구입해 현충원에서 헌화하고 있는 실태를 비판했다. 성 의원의 지적처럼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영면한 묘역에서 중국산 조화 헌화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더욱이 한국전쟁 당시 중공군의 만행을 생각하면 중국산 가짜꽃으로 헌화하는 것은 국격에 어울리지 않는다.
환경오염 문제도 지나칠 수 없다. 조화는 플라스틱·철사·비닐 등으로 구성된다. 유해물질이 포함돼 있을뿐더러 폐기도 용이하지 않다. 수년 전부터 화훼업계와 환경단체가 문제를 제기했음에도 이런 관행을 지속했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설마 국방부가 이 조화를 현충원 묘역에 헌화하면서 중국산이 국산으로 변한다거나 조화가 생화로 살아나기를 기도하진 않았을 것이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기적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참에 조화든 생화든 현충원의 반입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생화도 2∼3일 지나면 시들고 부패하기 때문이란다. 지나친 주장이다. 우리의 본성에 반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꽃을 사랑·존경 그리고 애도의 표시로 사용하는 유일한 동물이다. 애경사 자리에 조화나 화환을 보내는 전통 역시 뿌리 깊다. 지인의 중대한 가족사에 보내는 조화나 화환은 존경하는 감정을 전달하는 수단이다.
사회적 관계를 떠나서라도 꽃은 나 자신을 위로해준다. 장미 한송이에 안개꽃 몇송이만으로도 분위기가 달라진다. 생화의 감촉과 향기만으로도 영혼이 정화되지 않는가. 그렇다면 현충원의 헌화 문화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최근 영국 왕실의 예가 시사점을 준다. 9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서거 후 수많은 추모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자 영국 왕립공원은 추모객들이 꽃다발을 지참한다면 플라스틱 포장재를 제거해달라는 요청의 안내문을 발표했다. “헌화할 때 지속가능성을 위해 포장하지 않은 꽃을 가져올 것을 고려해달라”며 “부득이 포장재를 제거하지 못하면 비치된 쓰레기통에 포장재를 버리고 꽃만 헌화해달라”고 했다. 플라스틱 포장재를 제거하면 꽃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월하게 퇴비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문에 쓰인 모든 꽃은 런던 켄싱턴가든에서 퇴비로 처리됐고 향후 왕립공원 전역 관목과 조경에 활용할 예정이다. 포장재는 혼합재활용센터에서 처리됐다.
이제 국방부가 현충원 묘원에 조화 반입을 금지하고 생화로 헌화하도록 방침을 바꾸었으면 한다. 아울러 생화는 퇴비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했으면 한다. 필시 환경도 지키고 우리나라 화훼산업 발전에도 이바지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믿음이 피그말리온 효과로 나타나길 간절히 바란다.
윤배경 (법무법인 율현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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