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제3의 김어준, 우후죽순 생겨… 정치가 장외에 끌려다니는 상황”

김아진 정치부 차장 2022. 11. 28.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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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진이 만난 사람] ‘이주의 전망’ 정세 보고서 8년간 낸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정치평론가 윤태곤씨가 25일 서울 여의도 한 카페에서 조선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이덕훈 기자

여의도에선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의 ‘이주의 전망’을 챙겨 읽는 정치인이 적지 않다. 의미 있는 분석을 꽤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윤 실장은 지난 8년간 설, 추석을 제외하고 매주 이 글을 써왔다. 2015년 1월 시작한 ‘이주의 전망’은 내년 1월 400회를 맞는다. 지난 25일 서울 한 카페에서 만난 윤 실장은 “정치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특히 더불어민주당이 나쁜 정치를 선도하고 있다. 지지층을 격동시키는 방식, 즉 ‘김어준식’ 정치에 빠지면서 정치가 제 역할을 못 하게 됐다”며 “제2, 제3의 김어준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정치인들이 장외에 끌려다니는 황당한 상황이 벌어졌고 그 힘이 너무 커져버렸다. 이 때문에 정치의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윤 실장은 최근 윤석열 정권 퇴진 집회에 나가거나 장외에 돌고 있는 ‘가짜 뉴스’를 공식적으로 언급하는 민주당 의원들에 대해선 “정치에 리워드(상), 페널티(벌) 구조가 완전히 무너져버려서 생기는 일”이라며 “국민이 나서서 책임 정치를 하도록 해줘야 한다”고 했다. 집권 초 지지율이 낮은 윤석열 정부에 대해선 “지지율은 중요하지 않다. 빨리 ‘무능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 8년간 ‘이주의 전망’을 써왔다. 한국 정치,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답은 딱 하나다. 잘해야 한다. 우리는 잘 사는 법을 다 안다. 좋은 음식 먹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술, 담배 안 하고 운동 열심히 하고 그러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그런데 그렇게 못 산다. 약 먹으면 잠깐 몸은 좋아지지만 그때뿐이다. 정치도 똑같다. 정당이 국민과 좀 더 밀착하고 리더십과 비전을 보여주면서 수권 정당으로 안정감을 주면 된다. 그런데 못 한다. 선거 지면 반짝 정신은 차린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제자리다. 그래서 답답하다.”

- 왜 이렇게 됐나.

“이주의 전망을 쓰기 시작한 2015년을 기점으로 생각해보자.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2년 대선 패배 후 다시 활동 폭을 넓힐 때다. 김어준씨가 그전에도 영향력이 있었지만 이때부터 원톱으로 올라섰다. 거의 신흥 종교 단체였다. 정치권에 있어야 할 유권자들이 김씨에게 가서 설교 말씀도 듣고, 헌금도 냈다. 정치인들도 우르르 몰려갔다. 김씨가 ‘저기 뒤에 의원님 오셨습니다’ 하면 일어나서 인사했다. 이해찬 전 총리 같은 사람은 ‘김어준만이 정론’이란 식으로 규정하며 힘을 실었다. 김씨가 가족 상을 당했을 때 ‘배지(국회의원)’들이 인산인해를 이뤘지 않나. 김씨는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정치는 그렇게 장외에 끌려다녔다. 그런데도 여전히 김어준이 되겠다며 나서는 ‘더탐사’ ‘민들레’ 등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가.

“과거엔 정치인들이 깃발을 들고 나섰다. 그러나 요즘 정치인들은 인터넷에서 뭘 떠드나 본 뒤에 그 여론을 따라간다. 민주당이 이런 나쁜 정치를 선도했다. 국민의힘도 ‘우리도 밀리면 안 된다’고 해서 유튜브 등에서 우파 전사들을 만들었다. 김어준씨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조국 전 법무장관 손을 들어주고 지난 대선 때는 이재명 대표 손을 들어줬다. 거기에 따라 민주당이 움직였다. 그런데 어떻게 됐나. 결과는 패배였다. 야권 지지자들에게 승리를 안겨주지 못했다. 이제 사람들도 다 알아버렸다. 이제 이런 정치도 끝물이다.”

- 국민들도 다 안다는 건 무슨 말인가.

“지지층을 격동시키는 것만으로 이길 수 없다는 뜻이다. 일례로 ‘조국 사태’ 때 조 전 장관을 옹호하는 서초동 집회에 100만명이 모였다는 말이 나왔었다. 민주당도 줄줄이 함께했다. 그랬더니 보수가 앞장선 광화문 집회에 더 많은 사람이 모였다. 전광훈 목사와 같은 편으로 몰릴까 걱정을 하면서도 조 전 장관 쪽 흐름을 꺾어버리기 위해 나간 거다. 침묵하는 다수, 중도층, 스윙 보터들이 이렇게 결정적인 순간에는 나온다. 이번 대선도 그런 흐름에서 봐야 한다.”

윤태곤 실장이 8년간 설, 추석을 제외하고 400회가량 써온 ‘이주의 전망’. /더모아 홈페이지

- 지금의 민주당은 어떤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억지로라도 비주류를 만들어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 6대4, 7대3의 비율로 관제 비주류까지 만들었다. 그래야 정당이 건강하다고 했다. 이재명 대표는 당대표 선거에서 77.7%를 얻었다. 반대로 말하면 20%의 반대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 20%가 의미 있는 비주류로 자리매김해서 이 대표를 견제하지 못하고 있다. 건강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 윤석열 정권 퇴진 집회에 나가는 의원들도 있다.

“자기 책임하에 정치를 하는 것이니 뭐라 할 수는 없다. 이런 의원들은 ‘중도 확장은 누군가가 하겠지. 어떻게 되겠지. 나는 내 뜻대로 할게’라는 마음으로 나가는 것 같다. 그러니까 청담동 술자리 의혹, 김건희 여사 조명 의혹 같은 게 공당에서 마구잡이로 제기된다. 큰 틀에서 보면 안 중요한 것들이다. BTS처럼 세계적 스타가 되려는 게 아니라 유튜브에서 먹방, 폭식하면서 인기를 끌려고 하는 것이다. 정말 열심히 의정 활동 하는 의원들이 전혀 주목을 못 받는다. 그러니까 ‘힘들게 일해봤자 티도 안 나는구나’ 하고 극단으로 가는 의원들을 따라간다. 그래서 국민들이 제대로 된 리워드, 페널티를 줘야 한다.”

-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어떻게 보나.

“민주당에선 김어준의 영향력이 상당히 떨어졌다. 일부 의원이 관성 때문에 그걸 붙잡고는 있지만, 지금의 문제는 이재명 대표다. 유력 주자는 원래 자기 대선만 생각하게 돼 있다. 정치인이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이 대표는 대선이 아니라 생존에 급급해보인다. 이 대표가 차기 대선을 신경 쓴다면 총선에서 이겨야 하기 때문에 다른 방식으로 정치를 할 거다. 그러나 생존에만 관심이 있다 보니 정진상, 김용 같은 측근들에게 당직을 주는 등의 좁은 정치를 한 거다. 안타깝다. 여론조사도 이 대표의 사건들에 대해선 싸늘하다. 방어벽도 하나씩 무너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가 최근 검찰의 수사를 ‘조작 수사’로 규정하는데, 스스로 정치적 부담을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169석 거야 대표이자 유력 주자에게 걸맞은 말은 아니다. 1년 전이었다면 이 대표에게 해줄 말이 참 많았을 텐데 지금은 법정에서 이기기 위해 노력하시라는 말밖에는 없다.”

- 윤석열 정부는 출범 6개월 만에 20~30%대 지지율에 머물고 있다.

“무능 프레임이 제일 무섭다. 이 프레임에 안 걸려든 정권은 재집권했다. 박정희, 전두환 정부도 독재였지만 무능하다는 얘기는 안 들었다. 노태우 정부도 비판이 많았지만 주택 200만호 등으로 경제가 올라갔고, 김대중 정부도 ‘경기가 망했다’는 평가는 없었다. 노무현 정부는 어땠나. 지금이야 평가가 다시 높아졌지만 당시 부동산 폭등 등 무능 프레임이 작동했다. 박근혜 정부는 말할 것도 없다. 문재인 정부 역시 40%대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지만 결국 무능 프레임으로 정권을 뺏겼다.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지지율이 낮기 때문에 지지층을 다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게 해법이 아니다. 결국 메시지다. 대통령실에서 주도하는 메시지는 거칠고 정제돼 있지 않다. 이번 이태원 참사도 국민 통합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세계적으로도 볼 때 9·11 등 대참사가 그런 길을 열어줬다. 하지만 이번엔 여기저기서 터지는 잘못된 메시지 탓에 그렇게 못 됐다. 아쉽다.”

- 지난 8년의 여야 정치를 총평하자면.

“정권이 바뀌는 이유야 많겠지만, 결국 여든 야든 외부 요인보다 내부 문제로 곪아서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때문에 무너졌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2014, 2015년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굉장히 건강한 당이었다. 청와대 눈치 안 보고 중도 보수의 길을 가려고 했다. 그래서 세월호 직후 선거도 이긴 것이다. 그랬더니 문제가 터졌다. ‘이제 맘대로 해도 되는구나’란 흐름이 생겼다. 친박, 비박 내부 충돌이 거세졌고 당이 엉망이 됐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조국 사태 때 ‘이러면 안 된다’고 모두가 얘기했지만, 청와대를 중심으로 이런 여론을 뒤집어버리려다 사달이 난 거다.”

-좋은 정치로 가는 해결 방법은 없는 건가.

“합의와 승복을 통해 교집합을 넓혀가는 게 좋은 정치,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지금의 정치에서는 합의와 승복을 배신이라고 생각한다. 역풍을 맞는다. 과거 세월호 때 민주당에선 유가족들에게 ‘쟁취해오겠다’고 약속했다. 여야가 합의했더니 ‘왜 굴복했냐’고 했다. 역풍을 맞고 사과했다. 이게 지난 정치의 트렌드였다. 결국 대화와 타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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