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139] 축구장의 침묵 시위
축구에서만큼은 이란은 우리나라에 가장 까다로운 숙적이다. 국가대표팀 통산 전적에서도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열세를 기록하고 있으며 더욱이 이란 원정 경기에선 단 한 번도 이기지 못했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메시의 아르헨티나를 격침한 것보다 더 큰 이변은 이슬람 정부와 자신들의 종교에 대해 가장 강력한 일체감을 이루고 있는 듯 보였던 이란 대표팀이 잉글랜드와 치른 개막전에서 자신들의 국가 제창을 거부하는 침묵 시위를 보여준 것이다. 잉글랜드 대표팀은 또 그들대로 경기 시작 직전에 모든 선수가 한쪽 무릎을 꿇는 무릎 시위를 통해 주최국의 인권 이슈에 문제를 제기했다.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체포되었던 스물두 살 여대생 마흐사 아미니가 사망하면서 촉발된 반정부 시위를 강경 진압하는 가운데 이미 300명 이상이 사망했으며 수천 명이 체포되었다. 체포된 이란 국민 가운데에는 지금 대표팀의 전 동료인 부리아 가푸리와 호세인 마히니의 이름도 있다. 이란의 축구 영웅 아즈문은 정부의 처사를 비난하는 인터뷰를 했다가 월드컵에 참가하지도 못할 뻔했다.
스포츠에서 침묵 시위의 역사는 1968년 멕시코 올림픽 남자 육상 200m의 시상식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높은 시상대에 오른 미국의 흑인 육상 선수 토머스 스미스와 동메달을 딴 동료 존 카를로스는 미국 국가가 울려 퍼지자 검은 가죽 장갑을 낀 한 손을 하늘로 치들며 고개를 숙이는 침묵 시위를 통해 인종차별을 고발했다. 이들은 곧바로 올림픽 선수촌에서 추방되었고 그 후로 오랫동안 암살 위협에 시달렸다.
뉴욕 브루클린 출신의 재간 덩어리 레슬리 고어가 이 곡을 빌보드 차트 2위까지 올려 놓는 기염을 토했을 때가 아직 페미니즘이 대중화되기 직전인 1963년이었다. “당신은 나를 소유하지 못해요/ 난 당신의 많은 장난감 중 하나가 아니랍니다(You don’t own me/ I’m not just one of your many toys).”
자신의 삶을 살게 놔두라고 단호하게 얘기한 레슬리 고어는 이때 열여섯 살이었다. 마흐사 아미니와 많은 시위 희생자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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