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바다 위의 또 다른 위협, 음주운항

염창현 기자 2022. 11.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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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벌 규정 대폭 강화돼도 적발 사례 크게 줄지 않자 최근 강도 높은 법 또 발의
사고 때 막심한 피해 고려, 업계 스스로 악습 없애야

때때로 광안대교의 아름다운 야경을 떠올리는 사람이라면 몇 년 전에 일어났던 황당한 사고도 기억할 듯하다. 지난 2019년 2월 다리 아래를 지나던 러시아 화물선이 교각을 들이받았다. 앞서 이 선박은 용호만 선착장에서 유람선과 부딪친 뒤 계속 이동하다 사고를 냈다. 이 충격으로 광안대교 구조물에 구멍이 생기는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이 때문에 부산시는 차량 통행을 중단한 뒤 복구작업을 해야 했으며 5월이 돼서야 다시 개통됐다.

사고 원인을 조사하던 해경은 놀라운 사실을 확인했다. 선장을 대상으로 음주측정을 했더니 혈중알코올 농도가 무려 0.086%나 됐다. 만취상태에서 배를 몬 셈이다. 이 사고를 계기로 국회는 2020년 해사안전법과 선박직원법을 개정했다.

5t 이상 선박 운항자나 도선사가 음주 운항으로 적발됐을 때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혈중알코올 농도 0.03% 이상~0.08% 미만이면 징역 1년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 0.08% 이상~0.20% 미만이면 징역 1~2년 또는 1000만~2000만 원 벌금, 0.20% 이상이면 징역 2~5년 또는 벌금 2000만~3000만 원이 부과된다. 사회에서는 이를 ‘바다 위 윤창호법’, ‘광안대교법’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강력한 법이 마련됐으니 맨 정신으로 배를 몰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의원이 해양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18년부터 올해 8월까지 447건의 음주운항이 적발됐으며 이 가운데 432건(97%)이 형사처벌을 받았다. 연도별 적발 건수를 보면 2018년 83건, 2019년 115건, 2020년 119건, 2021년 82건이었으며 올해는 8월까지 48건이 적발됐다. ‘바다 위 윤창호법’이 만들어진 뒤에도 음주운항은 여전하다는 이야기다. 더 우려되는 바는 이전에 적발이 된 적이 있음에도 별다른 경각심 없이 같은 행위를 반복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8월 현재 음주 운항 재범률은 8.3%로 지난해의 2.4%에 비해 크게 높아졌다.

일부에서는 사법부의 대응이 아쉽다는 반응도 있다. 지난 8월 헌법재판소가 해사안전법 104조의2 제2항 중 ‘2회 이상 술에 취한 상태에서 선박의 조타기를 조작한 운항자’ 부분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한 평가다. 해당 조항은 술에 취한 상태로 두 차례 이상 배를 운항한 사람에게는 2~5년의 징역형 또는 2000만~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헌재는 음주운항 가중처벌 조항이 ‘책임과 형벌 간 비례원칙’에 어긋나는 과도한 법정형이라고 판단했다. 과거의 위반 행위가 상당히 오래전에 이뤄졌다면 그 이후 행해진 음주운항 금지 규정 위반 행위를 ‘반복적으로 사회구성원에 대한 생명·신체 등을 위협하는 행위’라고 평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런 가운데 최근 또 하나의 음주운항 규제 법안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윤준병 의원은 지난 16일 해사안전법 등 4건의 법률에 대한 일부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술을 마신 상태에서 선박을 모는 행위를 처벌하는 기준을 지금보다 더 세분화해 기존 법률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하는 것이 발의 취지다. 음주운항 여부를 현재의 기준인 혈중알코올 농도가 0.03% 이상으로만 단순하게 판단하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 윤 의원의 주장이다. 음주측정 거부행위에 대해서도 선박 5t 미만과 이상, 1회 거부와 2회 이상 거부 등으로 구체화해 처벌 수위를 결정하자는 내용도 담겼다.

물론 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헌재가 해사안전법의 일부 조항에 위헌 결정을 내릴 때 인용했던 것처럼 ‘강한 처벌이 국민 일반의 법 감정에 부합할 수는 있으나 반대로 면역성과 무감각이 쌓여 범죄 예방과 법질서 수호에 실질적인 기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음주운항이 사고로 이어지면 엄청난 생명 및 재산상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차가운 바다 날씨에 대응하고 체온을 높이기 위해, 또는 오랜 시간 승선에 지친 몸을 술로 달래는 게 선원들 사이 관습이라는 말은 더 이상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은 하나 같이 피해 규모 면에서 음주운항은 도로에서의 음주운전과 비교가 아예 불가능하다고 분명하게 못 박는다. 소형 여객선이라고 해도 탑승객은 최소 수 십명이다. 유조선이나 유독성 화학물질 운반선 등에서의 음주운항 사고는 선원뿐만 아니라 해양생태계에도 큰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선박 파손 등으로 적재물이 바다로 흘러들게 되면 그 피해 규모는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음주운항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국민의 전폭적인 공감을 받는 이유다.

염창현 세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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