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터치] 겨자씨의 믿음과 슬픔

국제신문 2022. 11.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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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전선이 쥐 죽은 듯 조용하고 평온하던 1918년 10월 어느 날 우리의 파울 보이머는 전사하고 말았다. 그러나 사령부 보고서에는 이날 ‘서부 전선 이상 없음’이라고만 적혀 있을 따름이었다’.

1차 세계대전의 상흔을 그린 EM 레마르크의 소설 ‘서부 전선 이상 없다’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지난 10월의 마지막 주말 밤, 3년여 만에 제대로 핼러윈을 즐기기 위해 도심의 한 골목으로 모여든 젊은이들이 있었습니다. 올라가고 내려오는 인파로 뒤엉킨 가파르고 좁은 골목에서 사고의 위험성을 직감한 여러 사람이 112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기민한 현장 대응은 없었습니다. 이상 없을 거라고 판단했던 걸까요. 몇 시간 후 그 골목에서 158명이 무참히 목숨을 잃었습니다. 사방으로 열린 도심의 한 복판에서 벌어진 사고였습니다.

비극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사고 현장의 참혹한 영상과 사진이 SNS를 통해 여과 없이 실시간으로 퍼져나가며 고인의 존엄과 부상자의 인격권을 침해했고, 무분별한 유포에 무방비로 노출된 많은 사람이 현장에 없었음에도 간접적인 집단 트라우마를 겪고 있습니다.

수잔 손택은 저서 ‘사진에 대하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이미지를 소모한다. 이미지는 현실을 소모시켜 버린다. 카메라는 일종의 약이자 병이며, 현실을 전유하고 쓸모없게 만들어 버리는 수단이기도 하다’. 고발보다 우선하는 것은 고통받는 이들입니다. 기록보다 중요한 건 사람입니다. 그 밤에 찍힌 많은 사진 속에는 고통과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렌즈 속에는 타인의 고통을 소비하고 관음하려는 그릇된 욕망만이 이 담겨 있었을 뿐입니다. 이상 없음으로 여겼던 112상황실과 관계 없음으로 여겼던 일부의 목격자들 모두 이 비극의 방조자이며 가해자입니다. 304명의 죽음을 목도하지 않았지만 침몰하는 배 사진만으로도 상황의 참혹성을 체험한 기억이 우리에게는 있습니다. 모자이크 처리 없는 사진과 숏폼 콘텐츠가 말해주는 진실은 없습니다.

겨자의 씨는 짙은 노란색으로 씨앗의 지름은 1~1.5㎜입니다. 머스터드 소스의 원재료이며 매운맛이 특징입니다. 겨자는 팔레스타인 북부, 갈릴리 지방에서 자생하는 십자화과 식물로 그 씨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아서 지극히 작은 것의 대명사로 흔히 쓰입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 할 것이 없으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 밤 겹겹으로 포개진 이들과 도움을 요청한 이들 모두 겨자씨보다 큰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겨자씨의 믿음을 묵살한 건 국가였습니다.

고타미는 최초의 비구니입니다. 병으로 어린 아들을 잃은 고타미는 아들의 시신을 껴안고 살려달라고 울부짖었지만 살려낼 방도는 없었습니다. 석가는 살려낼 수 있다는 말을 들은 고타미는 석가에게 달려가 애원합니다. ‘한 번도 장례식을 치른 적이 없는 집에 가서 겨자씨를 얻어오라. 겨자씨 대여섯 알이면 아들을 살릴 수 있느니라’. 석가는 말했습니다. 고타미는 마을을 돌며 겨자씨를 구하려 했지만 죽은 사람이 없는 집을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겨자씨의 믿음과 슬픔을 생각합니다. 가만히 있으라, 이상 없음. 우리는 국가의 말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을까요. 국가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겨자씨만한 믿음조차 사라질까 두려운 요즘입니다. 스스로를 신사라 부르는 어느 정치인의 블로그에서는 적나라하고 참혹한 참사 사진이 정권투쟁의 도구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는 겨자씨를 구하러 나가 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서너 관계만 넘어가도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겨자씨의 믿음과 슬픔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그날의 비극 속에서도 저는 무람없이 점심을 먹었습니다. 사태를 직시하지 못했고 제대로 애도하지 못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뒤늦게 깨닫습니다. 용서하지 마세요. 차마,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못하는 11월입니다.

강이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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