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의 소리] 당신의 떡볶이는 안녕한가요

국제신문 2022. 11. 28.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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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하면 떠오르는 ‘내 인생 떡볶이 3대장’이 있다. 우선 어린 시절 할머니 댁에 가면 먹을 수 있었던 삶은 달걀이 열 개쯤 들어간 떡볶이. 두 번째는 빨간 국물이 종이컵에 넘칠락 말락 가득 차 있던 300원어치 컵 떡볶이. 마지막은 스트레스받는 날마다 시켜 먹는 눈물 콧물 쏙 빼놓는 매운 떡볶이. 아,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내 대학 동기가 즐겨 가던 단골집의 당구 큐대만큼이나 굵은 가래떡 떡볶이. 중학교 때 친구들과 일주일에 한 번은 꼭 들렀던 시장통 떡볶이도 빼놓을 수 없다.

하성란의 단편소설 ‘여름의 맛’에는 ‘추억의 음식으로 100명이 짜장면을 꼽는다 해도 그 이유가 100가지로 다 다를 거’라고 이야기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문장을 이렇게 써먹어도 되지 않을까. 추억의 음식으로 100명이 떡볶이를 꼽는다 해도 그 이유가 100가지로 다 다를 것이라고.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머릿속에도 떡볶이 한두 가지쯤은 떠오를 터다. 학창 시절 문턱이 닳도록 다녔던 단골 분식집의 외관이 눈앞에 선할지도 모르겠다.

내가 새삼 떡볶이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기록동아리 활동 덕분이다. 영도문화도시센터는 영도의 오래된 장소를 찾아 기록하는 동아리를 지원하고 있다. 나는 오래된 식당을 기록하는 동아리를 만들었는데, 첫 출발부터 우왕좌왕이었다. ‘오래되다’의 기준을 몇 년으로 할 것인가도 문제였지만, 어떤 음식을 파는 식당을 찾아가야 할지도 늘 고민이었다.

부산의 대표 음식, 전라도나 제주도 등 타지에서 영도로 이주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여러 지역의 식문화가 혼재된 음식, 섬이라는 특성과 관련이 깊은 음식 등을 우선적으로 다뤄야 할 것 같았다. 밀면 돼지국밥 빙장회 물회 고등어추어탕 등의 음식 목록을 작성하고, 그 음식을 파는 식당 중 업력이 20년을 훌쩍 넘는 곳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사실 내가 처음부터 기록 대상으로 점찍어둔 식당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분식집. 동삼 2동 하리마을에 두 점포가 나란히 있었으나 2020년 코로나 이후로 사라져버린 작은 떡볶이집이다. 해양대학교 학생들이 즐겨 찾는 곳이기에 여느 분식집과는 달리 술을 팔았다. ‘2통1반(막걸리 2, 사이다1)’에 떡볶이나 튀김을 안주로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이곳의 매력이었다. 인터넷을 찾아보면, 해양대학교 졸업생끼리 그곳의 추억을 곱씹는 글들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도 떡볶이는 떡볶이였다. 가래떡의 형태나 양념 비율이 다르다 해도, 돼지국밥이나 밀면, 제주식 물회, 포항식 물회에 비해선 이야깃거리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떡볶이. 그러다 보니 그 사라진 분식집에 대한 기록은 나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그러다 공릉동에 위치한 ‘소라분식’이 올해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받았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다. 서울여대 학생들의 단골집인 그곳이 미래유산이 된 맥락을 살펴보면 음식 외에도 특징이 있다. 1대 사장님부터 차례차례 구술 채록을 진행하는 동안 서울여대 육사생도 태릉선수촌 등 노원의 근현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개개인의 사연, 개별적인 기억이 분식집이라는 공간 안에 모여 응집되어 공통의 기억이 되면서 후대에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곳으로 인정받게 된 셈이다.

나는 여태 ‘식당’에 대한 기록을 ‘음식’에 대한 기록과 같은 것으로 착각했던 것 같다. 부산시도 동래파전 돼지국밥 밀면 등을 ‘부산미래유산’으로 지정했지만, 아직 특정 점포를 지정한 사례는 없다. 반면 서울시의 경우 시민이 제보한 미래유산 488건 중 50건이 ‘식당’이라고 한다.

식당은 단지 음식만을 파는 곳이 아니라 누군가가 머물렀다 가는 공간이다. 그곳을 채우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주목할 때 식당은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숨은 가치를 우리에게 내보여줄 것이다. 식당 하나가 사라지면 우리는 무수히 많은 이야기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니 묻고 싶어진다. 당신의 떡볶이는 안녕한지. 너무나 평범해 소중한 줄 몰랐지만, 당신이 먹었던 그 떡볶이가, 당신이 자주 가던 그 분식집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접시 하나 앞에 두고 울고 웃었던 당신 삶의 한 조각이, 어쩌면 후대에 전해져야 마땅할 보물일지도 모른다.

김미양 작가·‘입가에 어둠이 새겨질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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